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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산책자 C Sep 25. 2024

성장하는 것은 사랑을 배우는 일

로제 마르탱 뒤 가르, 『회색 노트』

   로제 마르탱 뒤 가르의 『회색 노트』는 1922년에 발표된 작품으로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과 더불어 20세기의 대표적인 성장 소설입니다. 회색 노트는 두 소년 자크와 다니엘의 교환일기죠. 질식할 듯 엄격한 카톨릭 교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우정을 나누고 서로의 비밀을 털어놓는 통로였던 회색노트를 신부님에게 빼앗기자 두 소년은 가출을 감행합니다. 이때 아들의 가출에 대응하는 두 집안의 모습을 비교하며 읽다 보면 소설의 결말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자크의 아버지는 카톨릭 교도로 권위적이고 엄격한 인물입니다. 그는 자크가 가출하자 아들의 안위보다 자신의 체면과 사업에 대한 걱정이 더 큽니다. 형 앙투안은 아버지에 비해 합리적이고 따뜻한 인물이기는 하지만 어머니의 부재를 채워주지는 못하죠. 반면 다니엘의 부모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분위기의 신교도입니다. 비록 아버지는 아들의 가출에 관심조차 갖지 않는 난봉꾼이지만 어머니는 가출한 아들을 적극적으로 변호하며 아들에 대한 믿음을 잃지 않습니다. 이렇게 상반된 부모의 모습은 두 소년의 성장에 강한 영향을 줍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기술』에서 성숙한 사람을 이렇게 정의합니다.


“외부에 있는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으로부터 해방되어
내면에 그 모습을 간직한 사람”


   성장한다는 것은 부모로부터 독립하여 주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의미하지만, 어머니의 따뜻하고 무조건적인 사랑과 아버지의 차가운 이성과 양심이 균형 있게 내면화 될 때 비로소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여기서의 모성과 부성은 복잡한 현상을 추상적인 개념으로 분류하여 이해하기 위해 만든 이념형(개념적 구성물)으로 여성성과 남성성에 대한 전형과는 다른 관점으로 보아야 합니다. 즉, 양성에 대한 고정관념이나 당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각설하고, 이 관점에 따르면 자크가 권위와 질서에 거칠게 저항하며 정서적 안정을 찾지 못하는 것은 모성의 부재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또한 다니엘이 어머니의 모습에 감화되어 용서를 구하지만 가출 당시 성적인 유혹에 쉽게 굴복하는 모습은 이성과 양심의 모델이 되어야 할 부성의 부재 때문이라고 해석할 수 있죠.


   가출과 귀가라는 이 소설의 구조는 누가복음의 ‘돌아온 탕자’를 떠올리게 하지만 결말은 사뭇 다릅니다. 탕자의 아버지는 모성과 부성을 균형 있게 내면화한 성숙한 인격자로서 방탕한 아들을 포용하여 새 사람으로 거듭나게 했습니다. 그러나 자크의 아버지와 다니엘의 어머니는 각각 부성과 모성만을 강하게 가지고 있으며 다니엘의 아버지는 어느 한쪽도 갖지 못한 부도덕한 인물입니다. 특히 자크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데에는 탕자의 아버지처럼 자신을 포용해 주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원망이 가장 크게 작용했습니다. 이처럼 로제 마르탱 뒤 가르는 이 소설 속에 두 소년만이 아니라 그들의 부모와 사제들조차도 성장해야 할 미성숙한 인물들로 그려냈습니다.


<돌아온 탕자(Return of the Prodigal Son)>,  렘브란트, 1663년 - 1665년


   이들 중에서 성숙한 사람으로 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이가 다니엘의 어머니입니다. 그녀는 남편의 바람기에 고통 받으면서도 그의 사랑과 경제적 지원을 잃는 것이 두려워 현실을 외면해 왔죠. 그렇지만 아들의 방황을 지켜보며 남편이 아이들에게 나쁜 영향력을 끼칠 것을 우려해 단호하게 이별을 선언합니다. 에리히 프롬의 시각으로 보면 다니엘의 어머니는 이제 ‘젖’을 주는 어머니에서 ‘꿀’까지 줄 수 있는 어머니로 성장한 것입니다. 즉 자녀의 생명 유지를 넘어 삶에 대한 사랑과 행복까지 가르칠 수 있는 어머니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소설의 인물들이 그랬듯 성장한다는 것은 홀로 서는 법과 남과 더불어 사는 법을 동시에 배우는 일입니다. 그런데 홀로 서는 것이나 더불어 사는 것이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리고 이 관계맺음의 완성은 ‘사랑’이죠. 그렇다면 성장한다는 것은 모성과 부성이 내면에 균형 있게 자리하여 자기 자신을 사랑하고 타인을 사랑하는 일이라 할 수 있지 않을까요?



*이 글은 독서칼럼으로 일간지에 기고했던 글을 일부 수정하여 올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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