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3월부터 학교에서 사용할 새 역사 교과서가 지난달 30일에 공개되면서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교과서 발행 체제는 국정과 검인정으로 나뉩니다. 초등 1~2학년 통합교과와 1~6학년 국어 및 국어활동, 1~2학년 수학 및 수학익힘, 3~6학년 도덕 교과를 국정 교과서로 발행하고 나머지 교과는 검인정 교과서로 발행합니다. 교과서 발행 체제에서 가장 논란이 뜨거운 과목은 <역사>입니다. 박근혜 정부 시절 2015년 10월 국정으로 전환되었다가 1년 6개월 뒤 문재인 정부에서 다시 검정 체제로 복귀했죠. 그런데 검정 교과서 체제인 지금, 왜 역사 교과서 논란이 다시 벌어지고 있을까요?
그 이유는 교과서 검정을 통과한 역사 교과서들의 우편향 시각에 대한 우려 때문입니다. 9종 모두 민주주의라는 용어 대신 현 정부와 보수 학계가 강조하는 '자유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가장 논란이 된 것은 한국학력평가원(정부기관이 아님)이라는 곳에서 발행한 교과서입니다. 일본군 성노예(위안부) 문제를 단 한 문장으로 축소 서술하면서 성 착취에 대한 기술이 빠진 점, 식민 지배에 대해 '제국주의'의 '침략' 대신 '진출'이라고 표현한 점, 이승만 대통령의 '장기독재'를 '장기집권'으로, 유신체제의 목적이 '평화통일을 뒷받침' 하는 데 있었다고 기술한 점 등을 몇몇 언론과 야당이 크게 비판했습니다. 역사 교과서마저 색깔 논쟁이 벌어지다니 실망스러우신가요? 어찌 보면 색깔 논쟁은 어떤 역사서든 피하기 어려운 부분이기도 합니다. 나라에서 쓴다고 해도 특정한 관점을 배제하기 어렵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과연 역사는 무엇이고 우리는 이것을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史實과 事實 구분하기
역사는 사실(fact) 그대로를 서술한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그대로'라는 것은 사실 불가능한 것입니다. 이게 대체 무슨 얘기냐고요? '사실'은 한자로는 事實이라 씁니다. 실제로 있었던 일이라는 뜻이죠. 그런데 여러분이 일기를 쓴다고 생각해 보세요. 하루 동안 일어난 일을 모두 그대로 기록할 수 있을까요? 어떤 현상을 모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에 자신이 겪은 일 중에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중심으로 기록할 것입니다. 즉, 무수히 많은 사건들 중에 일부를 '선별'하여 기록할 수밖에 없는 것이죠. 역사서를 집필할 때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선별하는 기준이 무엇일까요? 역사서를 발행하는 주체에 따라 이 기준은 조금씩 다를 수 있습니다. 국가에서 편찬하는 역사서라고 하더라도 정권의 성향에 따라 선별 기준이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군사독재 정권 하에서 편찬한 역사서라면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상황을 아주 간략하게 축소하거나 아예 싣지 않을 수도 있죠. 이처럼 수많은 사실 중에 역사가에 의해 선별되어 역사서에 기록한 것을 사실(史實)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 수많은 사실(事實) 중 일부만이 역사적 사실(史實)이 되는 것입니다.
언어의 한계 인식하기
선별 외에도 역사서를 쓸 때 피할 수 없는 문제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언어'입니다. 어떤 현상이나 사건을 언어로 표현하기 때문에 벌어질 수밖에 없는 문제입니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라는 말을 들어 보셨나요? 알프레드 코르집스키라는 철학자가 현실과 인식의 차이를 언급하기 위해 쓴 표현입니다. 지도가 영토일 수 없듯 언어는 현실을 있는 그대로 표현할 수 없습니다. 사람마다자신이 가진 언어라는 도구로 현실을 거칠고 불완전하게 드러낼 뿐이죠. 거칠고 불완전한 도구이기 때문에 더 신중하게, 더 적확한 표현과 이해를 고민해야 합니다. 이러한 언어의 한계 때문에 역사서는 어감이나 용어가 조금만 달라져도 어떤 사실을 아주 다르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종군 위안부'라는 용어와 '성 노예'라는 용어는 가해자와 피해자의 입장에서 서로 다른 무게감을 느끼게 합니다. 쿠데타를 혁명으로 미화하려는 것이나 사태를 운동으로 승격시키려는 것처럼 어떤 의도가 '언어'를 통해 시도되는 것이 역사서의 성격이죠.
역사책 바로 읽기
따라서 역사서를 읽을 때에는 책에 쓰여진 사실(史實)에만 집중하지 말고 무엇이 누락되고 무엇이 선별되었는지 가늠해야 합니다. 또 같은 사건을 어떤 언어로 표현했는지 미묘한 차이를 읽어 내야 합니다. 이렇게 읽기 위해서는 책 한 권을 절대적인 권위를 가진 종교의 교리서처럼 대해서는 안 됩니다. 몇 권의 책을 비교해서 읽으며 어떤 것이 기록되고 어떤 것이 기록되지 않았는지, 어떤 용어와 어조로 표현하고 있는지 그 차이를 비교하며 읽어야 합니다. 이것이 역사 교과서를 검정 체제로 전환한 근본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역사책은 다른 어떤 텍스트보다 비판적으로 읽어야 합니다.
우리가 배우는 역사는, 비록 사실에 기초하고는 있다고 해도, 엄밀히 말하면 결코 사실 그것이 아니라 널리 승인된 일련의 판단들이다. -카, 『역사란 무엇인가』중 배러클러프 인용문
흔히 역사를 암기 과목이라 말합니다. 교과서에 나온 사실들을 암기하고 시험지에서 묻는 내용에 막힘 없이 답하면 역사 공부를 훌륭하게 완수한 것일까요? 이것이 사실(fact)에 집착하는 역사 읽기라면, 이제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야 합니다. 나라에서 펴낸 역사서라도 특정한 관점이 녹아 있고, 정권이 바뀌면 그 관점도 변하기 마련이니까요. 카는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역사란 역사가와 사실 사이의 상호작용의 부단한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역사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사실과 해석 사이에서 부단히 조율하는 과정이며, 과거의 사실을 현재에서 조망하는 것임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사실과 해석, 과거와 현재 사이의 부단한 상호작용을 통해서만 역사를 제대로 쓸 수 있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