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정원 일기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UMMER GARDEN Mar 15. 2024

[월말 결산] 2024년 02월

정원 일기 Gardening Log







2월은 짧고 휴일도 많았다. 그래서 3월이 왔을 때 앞으로 31일을 어떻게 다 보내나 걱정이 들더랬다. 2월 뒤에 3월을 맞는 게 처음도 아닌데, 영 아마추어 티를 못 벗는다.

등록률이 55% 이하로 내려가면 내 상담 방식을 재고해 보기로 자체 결정

시간은 훨훨 날고, 업무는 바쁘고 순탄하고, 어느덧 3월 중순이다. 그리고 늦게서야 정리하는 2월 결산 :)









이달의 표지


패딩이 무겁다. 조명 근처라서 덥기도 하다. 주섬주섬. 하며 전시 관람하고 있는 중. 이날 오전부터 새벽까지 정말 빡빡하게 놀았다. 그러고 나서 짝꿍도 나도 온몸에 독감이 알차게 퍼졌더라는 웃픈 이야기...









이달의 영화


이 작품이랑 ⟨5일의 마중⟩ 중에 고민했다. ⟨추락의 해부⟩에서 던지는 화두가 나의 삶과 밀접하고, 곱씹게 되는 인상적인 장면들이 있어서 요걸로 결정. 1월에 장예모 감독님 ⟨인생⟩을 선정하기도 했었구!









이달의 전시, 음반, 도서


전시는 워너 브라더스 하나만 봐서 다른 경쟁작이 없었다. 워너 브라더스 100주년 특별전이 뛰어난 전시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영화러버에겐 그저 빛... 저 영화 그렇게까지 안 좋아해요~ 하다가도 이런 전시 한 번 다녀오면, 나는 그동안 무슨 헛소리를 했던 건가 뚝배기를 쥐어박는다.


음반 기준이라서 류이치 사카모토 선택. 음원 기준이었으면 Keith Jarrett의 Encore From Tokyo를 선정했을 거다. 이름부터가 키쑤잘햇임. 이름이 이런 데 연주 못하면 반칙이라 안 됨.

https://youtu.be/FTwCzeoZdXA?si=H6MD9O8WkB7we8Y3


도서는 음독 모임에서 꾸준히 읽고 있는 ⟪우리 속에 있는 여신들⟫. 국내는 2003년 출간이지만 원서는 1984년 출간인 모양이다.

의과 대학 정신과 임상 교수이자 신경 정신과 전문의인 저자가 칼 융 이론을 바탕으로 그리스 신화 속 여신들의 원형을 분류한 글이다. 그리스 신화의 여신들은 가부장제의 영향력 아래서 나름의 방식으로 분투하며 정체성을 확립한다. 저자는 마찬가지로 가부장제 영향력 아래 놓인 현대 여성들이 다양한 여신 원형을 통해 자신을 비추어보면서 자아를 재정립하고 발전시킬 수 있다고 보았다.

나는 일곱 여신 유형 중에 '아프로디테' 원형이 가장 강력하다. '데메테르' 원형의 영향도 많이 받는 편. 어릴 땐 아르테미스 원형도 강했던 것 같은데, 회사 생활을 하면서는 오히려 아테나 유형이 발달했다. 정말 이해할 수 없었던 건 헤라 유형. 다행히 모임에 헤라 원형이 가장 강한 분이 있어서 이해의 폭이 넓어졌다. 나중에 책 내용을 정리해 봐도 재밌을 것 같다...!









이달의 공연, 음식, 문장


흠. 공연은 올해 내내 미선발일지도.


음식은 짝꿍이 데려간 곳에서 마지막 메뉴로 먹었던 콘육회. 아이스크림콘을 부셔서 육회랑 섞어 먹는 메뉴였다. 이게 뭐시람...! 했는데 의외로 맛있어서 한 번 더 뭐시람! 했던 메뉴. 짝꿍이 지인들이랑 종종 가는 가게라며 데려간 거라서 더 기억에 남기도 한다.


이달의 문장은 김경주 시인의 시집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인의 말'에 있는 문장이다. 잊을 수 없는 시인의 말들이 있다. 가령 신해욱 시인의 ⟪생물성⟫에 쓰인 문장 같은 것. ⟪나는 이 세상에 없는 계절이다⟫ '시인의 말'도 전문을 다 좋아한다. 간만에 손이 가서 펼쳤는데, 번번이 쓰러진다.


여기는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밤이라고 쓰고 거기는 지도를 만드는 사람들의 어두운 골방이라고 믿는다. 지난 몇 년 동안 나는 비정하고도 성스러운 이 세계 앞에서 경악했고 그 야설(夜雪)을 받아내느라 몸은 다 추웠다. 어두운 화장실에 앉아 항문으로 흘러나온 피를 닦으며 나는 자주 울었다. 나는 그것을 간직했다.

고백하건대 시는 내게 현기증 같은 것이었다. 현기증은 내 몸으로 찾아온 낯선 몸의 시간 같은 것이었다. 나는 그 사이를 오가며 서러워서 길바닥에 자주 넘어졌다. 그사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온 무사한 책들은 자살하지 않고 살아남았고 나는 여러 번 아버지가 되지 못했으며 눈이 외롭던, 기르던 강아지는 병으로 두 눈을 잃었다. 한 놈은 직접 내 손으로 버리기도 했다.

아들이 시인이 되었다는 소식을 듣고서 수술 전 자궁의 3분의 1만이라도 남겨달라며 의사를 붙잡고 울던 어머니가 생각난다. 비근한 삶에 그래도 무겁다고 해야 할, 첫 시집을 이제 잠든 당신의 머리맡에 조용히 놓을 수 있을 것 같다. 초대받은 적도 없고 초대할 생각도 없는 나의 창(窓). 사람들아, 이것은 기형(畸形)에 관한 얘기다.

2006년 여름









이달의 소비, 장소, 대화, 인물


냉장고 고장 난 김에 사지 말까 했는데, 있으니까 역시 삶의 질이 달라지구요. 짝꿍이 매번 냉장고에 탄산수 쟁여줘서 행복하다.


그리고 생애 처음으로 산부인과 검진을 받았다. 아주 동그란 혹이, 아주 좋은 자리에 있단다. 크기도 작아서 걱정할 거 전혀 없다고, 한 번씩 너무 커지지 않는지만 확인하면 될 거란다. 혹이라면서 자리가 좋다니. 별스러운 문장을 들었다.


사과받을 줄 몰랐던 일에 사과를 받아서 나는 그만 크게 소리 내어 웃고 말았다. 애당초 화가 나지도 않았었지만, 사랑하는 이가 이토록 마음을 써준다는 사실에 기뻐서 그만 무례할 만큼 활짝 웃어버렸다. 너가 아니면 누가 날 말리겠니. 괜찮아.


행정 선생님들과 제법 친해져서 더는 근무 시간이 삭막하지 않다. 이래저래 듣는 개인사들이 무척 귀엽고 사랑스럽다. 나는 같이 지내는 사람들이 별로면 스트레스를 매우 많이 받는 성향이라 지금 근무환경이 정말 복이라고 생각한다♥









이달의 OO


요 두 사진의 내용은 아마 에세이로 다루지 않을까 싶다. 반성만 짚고 넘어가자. 그만 먹어. 아님 좀 움직이던가...!









잔뜩 신나서 전시장 입구 의자에 가방 버려두고도 몰랐던 사람 사진으로 마무리.




Fin.



매거진의 이전글 [월말 결산] 2024년 01월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