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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여름정원 summer garden Oct 22. 2024

0.0 서른은 어떤 나이입니까? (1/2)

들어가며





열아홉의 여학생 두 명이 정수기 앞에서 떠들며 물을 마시다가 바닥에 물을 흘린다. “어? 흘렸다.” 둘은 뭐가 그렇게 웃기는지 까르르 웃고는 교실로 돌아버린다. 불과 1m 떨어진 인포 데스크에 앉아 있던 나는 순식간에 벌어진 이 상황이 당황스럽다. “선생님, 물 흘렸는데 혹시 휴지 있을까요?” “어떡해! 닦아야겠다!” 같은 반응이 상식적이지 않나? 그러나 아무리 기다려도 학생들은 돌아오지 않는다.


하기야, 어디 오늘뿐이었는가. 화장실 휴지걸이에 휴지가 다 떨어져도 손 닿는 곳에 마련된 새 휴지로 교체하지 않기. ‘남은 음료는 화장실에 버리고 쓰레기는 분리수거해주세요’ 안내문 위에 보란 듯이 먹다 남은 음료 두고 가기. 책상에 지우개 가루 고스란히 두고 하원하기. 두 발로 직접 계단을 걸어 올라왔지만(심지어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서!) 이곳이 2층인지 물어보기. 한두 명의 문제아가 있는 게 아니다. 수십 명의 학생이 무례하고 당혹스러운 행동을 한다. 다 같이 작당 모의하고 ‘트루먼 쇼’를 찍는 게 아니라면, 나는 열아홉이 어떤 나이인지 다시 정의해야 한다. 그들은 평균적으로 얼마만큼의 책임감과 배려심을 함양하고 있는가? 어느 정도의 혼란함과 논리력을 가지는가? 10대란 도대체 어떤 나이인가?


나의 10대 시절은 쓸 만한 비교군이 아니다. 10대부터 20대까지 꾸준히 비주류에 속했기 때문이다. 열여섯에 중학교 자퇴 투쟁. 그러다가 덜컥 예술고등학교 합격. 고시텔에 살면서 학교에 다니다가 8개월 만에 기어이 자퇴. 수학 교습소에 두 달 다닌 후 검정고시 패스. 그리고 3년간 와식(臥食) 생활. 천장을 보고 누운 시간이 하루의 대부분을 차지했던 사람이 ‘표준적인’ 10대 모습에 대해 무슨 이야기를 하겠는가. 학원 학생들의 성실도는 어떻게 해도 나의 10대 시절보다 높다. 내가 눈앞의 열아홉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건 기만이다.


예체능 입시 학원은 학생이 부모님 등쌀에 떠밀려 오는 경우가 극히 드물다. 자녀를 이기지 못한 부모님들이 떨떠름한 표정으로 들어오는 곳이 예체능 학원이다. 입시 상담사인 나는 학부모님을 설득하고 학생을 매료시킨다. 상위권 대학의 합격권을 흔들며 불안과 희망을 판매한다. 서로의 니즈가 맞아떨어지므로 거래가 성사된다. 그런데 왜 학생들은 열심히 하지 않을까? 매달 나가는 학원비가 저렴한 것도 아닌데. 하기 싫으면 애당초 안 오면 됐을 텐데. 나처럼 3년 정도 푹 누워 있어 보면 될 텐데.






상담에서 이렇게 얘기했다가는 학부모님 여럿 잡았을 것이다. 다행히 내가 뒷목을 잡게 만든 건 나의 엄마 미숙 씨가 유일하다. 미숙 씨는 지금도 종종 불만을 토로한다. “내가 그때 너한테 뒤통수를 얼마나 많이 맞은 줄 알아? 한 번도 아니야. 너는 때린 데 또 때리고 그랬어.” 맞다. 나는 수능에 응시하고서 입시 원서는 한 곳도 쓰지 않았다. 날름 수험표만 챙겨서 서울에 놀러 갔고, 다음 해도 탱자탱자 누워서 시간을 보냈다. 그러다가 갑자기 수능에 응시해서 실기시험을 보고 서울 소재 대학에 합격했다. 대학은 조용히 잘 다니는가 싶었으나, 마지막 학기에 올 F를 받고 휴학을 선택했다. 창원에 사는 미숙 씨는 별스러운 딸의 서울살이가 여러모로 조마조마했을 것이다. 그랬던 딸이 어느덧 서른이 됐다. 안정적으로 회사에 다니고, 멀쩡한 사람(엄마는 내가 이상한 사람을 만나서 저들끼리 좋다고 어느 산속에 살까 봐서 걱정이었다고 한다)과 연애를 한다. 미숙 씨의 불심(佛心)이 깊어질 수밖에 없는 이유다. 관세음보살.


미숙 씨의 안도감은 내가 사회에서 무탈히 1인분을 하고 있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하지만 서른의 미숙 씨가 나를 봤다면 뭐라고 생각했을까? 아이 둘을 낳고 회사에 다니며 생계를 꾸려나가던 그때의 미숙 씨 눈에도 내가 멀쩡해 보였을까? 사랑스러운 남자 친구가 있으면서도 가정을 꾸릴 생각은 어디 먼 외계의 일로 여기는 나를 책임감 있는 사회의 일원으로 봤을까? 내가 학원 학생들을 보며 고개를 내젓는 것처럼 의아한 눈빛을 하진 않았을까?


미숙 씨는 몇 년 안에 예순을 맞이한다. 서른의 미숙 씨가 생각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예순이 될 것이다. 환갑 잔치라며 2010년생 막내아들과 피자를 시켜 먹을지도 모른다. 은퇴는 고사하고, 남은 60년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머리를 굴리느라 골치가 아플 것이다. 시대가 변해도 너무 변했다. 예순의 나잇값이 무엇이 될지 미숙 씨는 모른다. 물을 곳도 마땅치 않다.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의 딸 여름 씨는 학원 인포에 앉아서 1인분에 대해 생각한다. 예의 없는 열아홉 학생도, 철없는 서른의 상담 실장도, 그 상담사의 엄마 미숙 씨도, 모두가 1인분을 위해 아등바등하고 있으므로.






(2/2)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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