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로(You Only Live Once)의 시대가 저물고 갓생(God+生)의 시대가 열렸다. 건강한 반동이라는 생각이 드는 한편, 괴로운 이들이 늘겠구나 싶기도 하다. 갓생이 그려내는 삶은 상당히 획일화된 모습이기 때문이다. 불렛저널, 미라클 모닝, 리추얼 등으로 이어지는 몇 년 간의 유행은 이름과 외피만 달라졌을 뿐 그 본질은 크게 바뀌지 않았다. ‘각자 할 수 있는 만큼’이라는 포용적이고 유연한 조건을 내건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요지는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통해 삶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규칙성이 높은 효율로 이어진다는 법칙은 모두에게 통하는 걸까? 그렇지 않다. 작심삼일은 고사하고 작심세시간쯤 되는 사람으로서 단호히 말한다. 세상에는 계획과 규칙이 체질적으로 안 맞는 사람이 있다. 마치 홍삼이 몸에 안 맞는 것처럼 말이다.
이나는 홍삼이 아주 잘 받는 사람, 즉 규칙대로 움직이는 게 매우 수월한 사람이다. 그는 따로 루틴을 만들려고 노력하지 않고도 규칙적인 삶을 산다. 나는 언제고 이나의 일상을 훤히 그릴 수 있다. 아침형 인간인 이나는 7시 반, 아무리 늦어도 8시 반에는 기상한다. 늦게 자서 피곤한 날에도 같은 시간에 깨고 만다. 한 번 깨면 좀처럼 다시 잠들지 못한다. 그는 첫 일과로 헬스장에 가서 1시간 반 정도 운동을 한다. 내가 일어날 시간 즈음에 ‘잘 자고 있니?’ 안부 연락을 하고, 밥을 먹고, 글 작업을 하러 나선다. 보통 작업 장소는 청년센터나 집 근처 카페다. 저녁 시간 전까지 원고 두 개 정도를 작업하고, 저녁 먹은 후에는 산책을 한 시간 넘게 한다. 그렇게 자정쯤 되면 비로소 잠자리에 드는 게 이나의 일상이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갓생이 뭐냐고 불만스럽게 투덜거리는, 그야말로 갓생러라고 하겠다. 심지어 이나는 연락 패턴도 일정하다. 늘 오던 시간에 연락이 오지 않는다면 떠올릴 수 있는 이유가 몇 가지 있는데, 백에 아흔아홉은 그 안에서 맞아떨어진다.
나는 이나를 보면서 루틴대로 산다는 게 얼마나 엄청난 관성을 가지는지 깨달았다. 한 번은 토요일 오전 근무 중에 이나한테 연락이 왔다. “여름아, 나 헬스장 왔는데 문을 안 열었어…!” “안내도 없이 문을 안 열었어? 이상하네… 기다리는 사람들 없어?” “아무도 없어!” 이나가 문 닫힌 헬스장 사진을 보내준다. 기껏 헬스장에 갔는데 영업을 안 한다는 소식에 내가 다 속이 상했다. 공원에서 하는 유산소로는 성에 안 찰 게 뻔했다. 그런데 왜 기다리는 사람이 아무도 없지? 나는 이나가 휴무 안내를 놓친 게 아닐까 생각했다. 받은 문자메시지가 없느냐고 물어보려던 차에 다시 연락이 왔다. “토요일은 늦게 연대!”
뭐, 흔한 실수다. 평일에만 다녔으니 주말 일정이 다르다는 걸 몰랐겠지. 자주 가는 카페도 매번 영업 여부를 확인하는 나 같은 사람이 더 드물 것이다. 하지만 이나의 진정한 ‘루틴인(人)’ 면모는 다음 주 토요일에 내가 문 닫힌 헬스장 사진을 한 장 더 받아보는 순간 드러난다. “아, 맞다! 토요일!” 주말이 왔는데도 평일의 관성을 벗기 어렵다니, 흥미로운 일이다.
우리 엄마 미숙 씨가 이나의 생활을 본다면 기립 박수를 칠 것이다. 어디 미숙 씨뿐이겠는가. 전국 대부분의 부모님은 자녀가 이나처럼 생활하기를 바라리라. 뭇 회사의 대표님과 인사 담당자들의 마음도 다르지 않겠다. “것봐라. 다 가능한 일인데 넌 왜 못하느냐.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냐. 의지박약이다.”라고 하신다면 나도 할 말 많다. 이나가 규칙적인 생활이 편한 ‘루틴인(人)’이라면, 나는 고등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이틀 이상 규칙적인 생활을 해본 적 없는 농도 100% ‘안티-루틴인(人)’이다. 잠은 자고 싶을 때 잔다. 밥은 먹고 싶을 때 먹는다. 그래야 행복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안티-루틴인의 삶을 살까? 만약 당신이 다음 네 가지 조건에 들어맞는다면, 당신 역시 안티-루틴인의 삶이 적합한 사람일 지도 모른다.
1. 반골 기질이 강하다. 2. 야행성이다. 3. 매우 민감한 사람이다. 4. 강박에 취약하다.
전사 캐릭터 키우는 사람한테 넌 왜 파이어볼 못 쓰느냐고 타박하면 억울하다. 특성부터가 다른데 남들 다 하는 거 왜 못하느냐고 묻는 잔혹한 이들은 들으라. 세상엔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