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님은 내 기질에 문제가 있음을 일찍 아셨다. 분명 머리는 좋은 것 같은데 공부하는 꼴 구경하기가 도통 어려웠으니 말이다. 아빠는 열한 살짜리 딸을 앉혀놓고 말했다. “사람은 하고 싶은 것만 하면서 살 수 없어. 산을 타는 거랑 비슷한 거야.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을 지나면 또 오르막이 나온다, 그치? 니가 좋아하는 내리막만 계속 다닐 순 없는 거야.” 아빠는 자못 엄숙하면서도 다정하게 말했다. 물론 나는 아빠 말에 동의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대거리를 하지도 않았다. 아빠가 나를 가르치려는 건지, 아니면 대화를 하려는 건지 알아차릴 정도의 머리는 있었다. 아빠는 전형적인 경상도의 가부장적 남성이었다. 말대꾸해봐야 통할 리가 없었고, 이래저래 좋은 꼴 보기는 어려울 터였다. 그래서 나는 입을 꾹 다물었다. 가슴 깊이서 타닥 불꽃이 튀었다.
불꽃은 나날이 커졌다. 학교에서 “오늘도 우리를 위해 열심히 일하시는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집시다”라고 하면, 어쩐지 죄송해서 눈물을 흘리면서도 ‘아니 근데, 내가 없었으면 일을 안 했을까?’하는 생각이 자연히 들었다. 애국가를 부르거나 국기에 경례할 때도, 묵념할 때도 마찬가지였다. 순국하신 분들이 떠올라 울면서도 ‘왜 우리 총에 맞은 사람들 이야기는 듣기 어려울까?’ 의아해했다. 한 번은 수학 시간에 숙제를 안 했다고 손등을 자로 맞았다. 정확한 사유는 ‘숙제를 해오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맞으면서도 억울했다. 약속은 서로 동의 하에 이루어져야 하는 거 아닌가? 난 약속한 적도 없는데 왜 멋대로 숙제를 내주고서는 약속을 어긴 사람으로 만드는 거지? 심지어 그게 때릴 이유가 되는 건가? 이렇게 맞으면 황당한 억지 약속도 잘 지키는 사람이 되는 건가? ‘웃기고 있다. 상대할 가치도 없어.’ 나는 그때도 입을 꾹 다물었다. 어른들은 입을 모아 학생의 본분이 공부라고 말했다. 하지만 나에게 그 명제를 납득시킨 어른은 아무도 없었다. 공부가 필요하다고 한들 그게 왜 학교에서 배우는 공부여야 하는지는 더더욱 납득시키지 못했다. ‘어른들이랑 시스템은 죄다 한 패야.’ 열네 살의 나는 가슴 가득 들어찬 불꽃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어른에 대한 신뢰는 이미 바닥이었다. 결국 나는 열여섯에 고등학교를 자퇴했다. 그때는 이미 내 삶을 내 뜻대로 할 수 없다는 분노가 우울로 번진 다음이었지만 말이다.
야행성 인간
세상 사람이 다 아침형일까? 그럴 리 없다. 저녁형 인간도 있고, 야행성 인간도 있다. 나는 10대와 20대 시절을 합쳐 근 6년을 누워 지냈다. 그런데 내 생체 리듬을 모르겠는가? 누구도 방해하지 않는다면 나는 새벽 6시쯤 잠들어서 13시쯤 일어나는 생활을 한다. 그때 하는 수면은 소위 말하는 골든타임(22~02시)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개운하다. 달리 말해, 밤에 자고 아침에 일어나는 생활을 지속하는 이상 나는 한평생 개운하게 자고 일어나기 어렵다는 뜻이다.
물론 세상에는 당사자의 말을 믿지 않고, 사람은 누구나 같은 생체 리듬, 그것도 해가 뜨면 일어나고 해가 지면 자는 리듬을 가지고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존재한다. 그들은 나에게 수면위상지연증후군(원하는 시간에 잠들지 못하고, 이상적인 수면 시간대가 뒤로 밀리는 증상)이 아니냐고 의심의 눈길을 보낼지도 모른다. 단지 습관이 들지 않았을 뿐이라고, 석 달 정도만 지속해 보면 익숙해질 거라고 격려할 수도 있다. 하지만 10시에 출근하고 19시에 퇴근하는 회사를 1년 반 동안 다니면서도 생체 리듬은 바뀌지 않았다. 물류 팀에서 종일 고된 일을 해도 밤이면 눈이 말똥해졌다. 생체 리듬을 바꿔보려고 밤을 새우고, 고된 운동을 하고, 카모마일 차를 마시고, 별 난리를 다 쳐봤다. 하지만 그 노력을 비웃듯 몸의 관성은 변함없이 밤을 각성의 시간으로 지정했다.
신데렐라 타입의 사람을 한 번 떠올려보자. 그들은 자정만 되면 쏟아지는 졸음을 참지 못한다. 마취침을 맞은 것처럼 급격히 눈이 풀린다. 그런데 이 신데렐라 사람 중 한 명이 평행 지구로 넘어가고 말았다. 그 평행 지구는 야행성 인간에게 모든 게 맞춰져 있었다. 9 to 6가 아닌 15 to 24가 기본값인 세계였던 것이다. 신데렐라는 근무 막바지마다 졸음과 싸워야 했다. 회식 날은 숙취해소제가 아니라 에너지 드링크부터 샀다. 온몸이 바스러질 것처럼 피곤한데도 7시면 잠이 깼다. ‘또 4시간밖에 못 잤구나. 더 자지 않으면 오늘 근무도 힘들 거야.’ 신데렐라는 억지로 잠을 청했다. 하지만 노력할수록 잠은 더 멀리 달아났다. 차라리 일찍 일어나서 공부라도 해보려 했지만, 도저히 집중이 되지 않았다. 결국 이전보다 수면 시간은 길어졌으나 수면 질은 훨씬 나빠졌다. 숙면이 어려웠으므로 자연스레 건강도 나빠졌다. 만성 두통과 피로를 달고 살았다. 운동이라도 해야 했지만, 퇴근 후 새벽 1시, 2시에 운동을 하는 건 꿈같은 얘기였다. 맞다, 꿈. 언젠가부터 계속 악몽을 꾼다. 잠이 얕아진 탓일까. 스트레스 때문인가. 출근 전에 일찍 운동을 하면 어떨까. 하지만 이미 엉망이 된 몸은 좀처럼 마음대로 움직여주지 않았다. 신데렐라는 자신이 이렇게 의지박약인 사람이었나 자책했다. 근무 성취도와 삶의 만족도는 나날이 낮아졌다. 우울과 무기력이 신데렐라의 마음을 지배하기 시작했다.
이게 오늘날 야행성 인간이 겪는 삶이다. 6시에 자고 13시에 일어나도 됐으면 나도 규칙적으로 살았지. 이 세상은 야행성 인간의 입장을 지나치게 헤아려주지 않는다. 떳떳해지자, 올빼미들이여. 오늘도 아침부터 출근하는 당신들이 챔피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