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존재하는 사람은 81억 명, 그중 대한민국에만 5천만 명이 넘는다. 이 속에서 나라는 존재는 얼마나 작고 미미할까. 수많은 사람들 속에 섞여, 마치 이름 없는 들꽃 하나처럼 살아가는 내가 남긴 자취는 쉽게 잊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생각을 품고 숲길을 걷던 날, 하얗고 앙증맞은 작은 꽃이 눈에 들어왔다.
그때 나는 무심코 그 꽃을 망초라 생각했다. 작은 꽃잎들이 소박하게 피어 있던 그 모습이 어디선가 본 듯 익숙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가까이 다가가 꽃을 보니, 그것은 망초가 아닌 야생국화였다. 이름 하나 알지 못한 채 모든 들꽃을 비슷하게 바라본 내 무심함이 느껴져 문득 부끄러워졌다. 그렇게 그날 나는 이름을 부르는 일에 담긴 의미를 조용히 곱씹었다.
예전에 아이들과 숲 속에서 자연을 탐험하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작은 손을 잡고서 나도 함께 풀잎이며 꽃잎을 바라보았던 그때, 우리는 무심히 지나치던 것들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며, 각자가 가진 이름의 특별함을 처음 알게 되었었다. 이름을 부르는 일은 그 대상을 단순히 확인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그 존재의 고유함을 인정하고, 소중히 마음에 새기는 일이다. 우리가 꽃의 이름을 기억할 때, 그 꽃은 그저 지나치는 풍경이 아니라 내 마음속에 남는 하나의 빛이 된다.
시인이 노래한 구절,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줄 때 나는 비로소 꽃이 된다”는 말이 새삼 다가왔다. 나 역시 야생국화의 이름을 정확히 알지 못했을 때, 그것을 단순히 흔한 들꽃으로 여기고 지나쳐 버렸다. 하지만 이름을 알고 불러주는 순간, 그 존재는 나에게 작지만 완전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이름 하나에 담긴 무게가, 그 생명의 고유함이 그제야 느껴졌던 것이다.
숲 속에 홀로 피어난 야생국화처럼 우리 모두에게도 그 이름이 있다. 우리를 부르는 이름은 마치 존재의 닻처럼 우리를 흔들림 없이 붙잡아준다. 야생국화의 이름을 알고 불러준 그 순간처럼, 나 또한 누군가가 나를 부를 때, 나라는 존재의 고유함을 느낄 수 있다. 이름을 불러주는 행위는 단순히 호명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가진 빛을 발견하고 그것을 존중하는 행위이다.
세상에서 우리는 쉽게 사라질 수 있는 존재이지만, 누군가 나의 이름을 불러주는 순간, 나는 비로소 한 사람으로서 자리 잡는다. 야생국화의 이름을 불러준 일이 그저 작은 사건에 지나지 않을지라도, 그 이름을 통해 내가 비로소 그 존재의 고유함을 마음에 새긴 것처럼 말이다.
이름을 불러주는 일이야말로 사소한 듯 보이지만 그 자체로 한 존재의 빛을 밝혀주는 고요한 행위다. 이름이란, 서로를 기억하고, 존재를 존중하며, 그 안에 깃든 빛을 발견하는 가장 아름다운 방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