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눈 속에 잠긴 언어

녹아내리는 말들

by 너라서러키 혜랑


똑똑 부러지는 말들

하늘과 땅을 나누고

아침과 밤을 정한다.

각자의 빛으로 선명하던 말들

소복이 내려앉은 눈 아래 무더기로 쌓여

제자리만 맴돈다



시작과 끝

서로 다른 이름을 가졌을 뿐

하나의 선 위에서 돌고 돈다.

그 흐름을 어찌

단편의 필름으로 잘라

하나하나 낱낱이 설명할 수 있으랴.



삶은 끝을 향해 시작된다지만,

나는 문 밖으로 나아가

내 몸속으로 스며드는 자연에 안긴다

바람의 결, 나뭇잎의 흔들림 속에서

내가 완성되어 가는 것을 느낀다



어제 흩어진 말들 위로

순백의 눈이 내려와 세상이 변했다.

모든 언어는 사라지고

자연의 고요 속에서

다시금 하나가 되려 한다.


이제야 깨닫는다

사람들의 말조차 자연을 닮아가고,

함초롬이 쌓인 눈 속에

고요히 녹아내린다는 것을

keyword
이전 28화무안이여 안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