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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bincent Dec 08. 2020

갤러리 n/a. 나인수. 19년 1월.

갤러리 엔에이.  ANGIE'S FIRST MARRIAGE.

네이버 블로그 https://blog.naver.com/bincent_kim/ 2019. 1. 13. 0:10 작성.



어릴 때부터 sns와 친하지 않았다. 중학교 때 싸이월드는 가입했지만 드문드문 1촌평을 남기는 정도, 고등학교 때 페이스북을 가입했지만 팔로우라는 개념도 익숙하지 않고 적응이 안돼서 결국 하지 않았다.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문자를 했고 그게 아니라면 전화를, 더 중요한 얘기는 만나서 했다.


정말 남기고 싶은 장면, 추억이 있다면 사진을 찍어서 보관하는 것 보다 카메라를 드는 시간에라도 더 마음에, 기억에 새기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어쩌다 찍은 사진들도 다시 본 적이 거의 없는 것 또한 굳이 남길 필요성을 못 느끼는 이유이기도 하다. 더욱이 그런 추억을 다른 사람과 공유하고 싶은 생각도 별로 없다. 좋으면 좋을수록 내 마음 속에 혼자 간직하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런 내게 인스타그램에 전시 리뷰를 한다는 것, 거기서 블로그로 옮겨와 무언가를 포스팅한다는 것은 큰 도약이었다. 자꾸 기억 속에서 사라지는 좋은 전시와 작품들을 잡아둘 수 있는 것도 좋고 비슷한 관심을 가진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는 것도 좋다. 아직 규모가 작아 소통의 의미는 거의 없지만 첫 번째 이유만으로도 큰 즐거움이다.


갤러리 입구. 작은 것에서도 변주를 주고 싶었던 듯, 오픈 요일 순서를 바꾸어 써놓은 것이 인상적이다.


그런데 한 달 전 쯤 이 계정으로 메일이 한 통 왔다. 조금 바쁘기도 했고 당연히 병원이나 쇼핑몰 따위의 광고라고 생각해서인지 굳이 메일함을 열어보지 않다가 얼마 전 별 생각없이 클릭했는데 갤러리 오픈 전시 초대였다. 그 분이 어떤 기준으로 초대장을 보냈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나의 글을 보고 이렇게 오프라인으로 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는 것이 고마웠고 내겐 큰 의미로 다가왔다.


갤러리의 첫 층으로 들어서는 계단


이곳은 을지로4가역 뒷 편의 조명가게가 늘어선 골목에 아주 조용하게 자리하고 있다. 그렇게 찾기 어렵진 않은 듯 하다. 좋은 점은 갤러리 겸 카페다 보니 밤 11시까지 오픈한다는 것이다. 어떤 이유로 모던한 인테리어와 투박한 느낌이 공존하는데 그것이 색다른 느낌을 자아냈다.




갤러리 n/a의 첫 전시 『ANGIE’S FIRST MARRIAGE』는 나인수 사진작가가 미국 유학 시절 가족들의 일상을 카메라에 담은 사진을 보여준다. 15년 ELLE 인터뷰에 소개된 내용에 따르면 작가는 처음엔 철학적인 내용을 담은 개념미술을 하고 싶었으나 본인의 특기, 멘토의 조언 등을 통해 상업사진을 추구하게 되었다고 한다. 또한 평소에도 ‘가족’이라는 주제에 대해 고민하고 그것이 담고 있는 여러 사연들에 관심을 갖는다.

 

(출처: ELLE YOUNG AND TALENTED VIII, 사진 저널리스트 나인수와 김혁, 15년 10월, http://m.elle.co.kr/article/view.asp?MenuCode=en010402&intSno=14144)



이번 전시는 제목부터 특이했다. 요즘 세상에 재혼이 그렇게 이상한가 싶긴 하지만 어쨌든 결혼에 ‘첫번째’라는 수식어를 붙이는 게 자연스럽진 않다. 거기다 달달하거나 부드러운 디퓨저가 아닌 어딘가 불안한 느낌을 주는 향과 무겁고 숙연한 음악이 묘한 기분을 자아낸다. (그래도 청각적, 후각적 자극이 조금만 부드러웠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이런 분위기와는 상반되게 정작 사진 속의 이미지는 너무 평범하다. 마당, 피크닉, 캠핑카, 주택 등 그냥 우리가 생각하는 미국 가정의 전형 같은 모습이다. 그래서인지 전시에 대한 설명을 차분하게, 첫 번째 층에서는 1번 설명을, 두 번째 층에서는 2번 설명을 ‘순서대로’, ‘꼼꼼하게’ 읽어보길 권장하신다. 글을 읽고 거기에 대한 추가적인 설명까지 듣고나면 어느 정도 궁금증이 해소되고 전시의 목적, 작품에 얽힌 이야기들 연결되면서 새롭게 다가온다. 



그렇게 다가온 사진은 더 이상 평범하지 않다. 아이의 눈에서 처음에는 볼 수 없었던 슬픔과 우울함이 스치고 푸근하게 보였던 할아버지는 매정하고 섬뜩하게 보인다. 숨겨진 배경에 따라 작품이 이렇게 달라보이는 경험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Mia and Alex, 2009


정말 고맙게도 초대 해주신 분께서 계속 붙어 다니시며 전시와 갤러리, 그리고 후속 전시에 대한 설명까지 친절히 해주셔서 더 편하고 쉽게 감상할 수 있었다. 덕분에 대화를 나눌 기회도 있었는데 사진은 '기록'에 '아름다움'이 더해진 것이라는 말이 인상 깊었다. 아름다움의 정의는 사람마다 다르고 조금 더 생각해보아야 할 문제이지만 사진과 친하지 않은 나에게는 어느 정도 와닿은 이야기였다.



사실 사진엔 관심이 거의 없다. 마치 아직 좋은 와인을 마셔도 뭐가 좋은지 잘 모르는 것처럼 잘 찍은 사진을 봐도 내 핸드폰으로 찍은 사진과의 차이를 잘 모르겠다. 좀 흥미를 붙여보려해도 작품의 매끈한 표면과 사실적인 이미지를 보면 정이 잘 가지 않는다. 그리고 (물론 회화도 판화가 있긴 하지만) 언제든 찍어낼 수 있는 것이 사진이고 그래서 희소성에 대한 의구심이 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까르띠에 브레송, 기 부르댕, 김용호 등 기억에 남는 작가들, 기억에 남는 사진들은 있고 가끔 괜찮은 전시가 있으면 보기도 한다. 그런 사진들을 보면 확실히 사진도 아름다움으로든, 그 속에 담고 있는 의미로든, 생각할 거리를 제공하고 감동을 주는 것 같다.


Cartier-Bresson, Jean-Paul Sartre, Paris, 1946 © 2018 Henri Cartier-Bresson/Magnum Photos, courtesy Fondation Henri Cartier-Bresson, Paris


GUY BOURDIN, Charles Jourdan, Spring 1978, chromogenic print, flush-mounted on plexiglas, printed later, 61 x 98.4cm, signed by Samuel Bourdin, Executor, number '6/18' in ink and Estate copyright credit, CHRISTIE'S


김용호, 우아한 인생, digital chromogenic print, 126.7 x 190 cm, 2012, 류화랑


갤러리는 두 개 층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공간이 아주 크진 않지만 매력적으로 꾸며졌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사진전을 시작으로 이어지는 전시에는 회화 작품도 계획 중이라고 하시는데 기대가 된다. 



갤러리 이름을 n/a로 지은 이유가 궁금했는데 그 사전적 의미처럼 무언가로 정의할 수 없음을 뜻한다고 한다. 내 생각을 조금 덧붙이면, 정의될 수 없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가능성을 갖고 어떤 장르나 제약에 얽매이지 않은 채 유지될 수 있는 공간이라는 뜻이 아닐까 한다. 운영 시간이 밤 11시까지인 만큼 밤 시간에는 술도 같이 할 수 있는 것은 또 다른 장점인 것 같다. 여러 예술을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거듭나 자주 찾아 올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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