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정아, 최정화, 타티아나 트루베, 에르빈 브룸 등 30명
요즘 그림 보러 다니는 걸 잊을 만큼 운동에 너무 빠져 있었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공을 가지고 놀며 자연을 즐기는 것은 인생 최고의 즐거움 중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전시에서는 느낄 수 없는 승부욕과 땀을 흘리고 난 뒤의 개운함은 분명 큰 매력이다. 하지만 작품이 주는 감동과 평화로움,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 심미적 충족은 예술이 우리에게 주는 대체 불가능한 가치라고 생각한다.
오랜만에 그런 가치를 찾아 청담동으로 향했다. 쾨닉 갤러리는 2002년 베를린에 설립된 현대미술 갤러리로서 아트 바젤, 프리즈 아트 페어와 같은 유수 박람회와 카셀 도큐멘타, 비엔날레 등 명망 있는 전시에 참여하며 입지를 다져왔으며, 올 4월 청담동 MCM HAUS 5, 6층에 개관했다. 베를린 본점과 런던의 두 번째 지점에 이어 서울에 세 번째로 오픈했다는 것이 우리나라의 미술 시장에서의 입지가 어느 정도 생겼다고 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이번 전시는 개관전이라는 것에 의미를 두어 '쾨닉 스펙트럼의 단면을 한자리에 보여'주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고 한다. 그래서 30명에 이르는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을 한 자리에서 감상하며 '쾨닉'이라는 브랜드의 정체성을 느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또한 신작들이 많아 최근 현대미술 트렌드를 어느 정도 체험할 수 있는 것도 좋았다.
다만 너무 많은 작가, 너무 많은 작품, 심지어 재료, 주제, 장르까지 제각각인 작품들을 보며 중구난방이라는 생각이 들었으며 익숙하지 않은 작가와 작품들에 대한 설명은 자세하지 않아 복잡한 느낌이 든다. 전시 소개 속 한 구절 정도로 소개되는 두 세 작가의 설명을 따라가며 보기에도 벅차다. 캡션은 모두 숫자로 되어 있어 깔끔한 느낌을 주지만 이런 구성이라면 차라리 작가와 작품명 등을 바로 옆에 써놓는 것도 좋은 가이드가 되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딱히 인상적인 작품은 없었다.
6층은 옥상인데 탁 트인 하늘과 곳곳에 놓여있는 작품들이 잘 어우러져 작은 조각 공원 같은 느낌이 든다. 한 군데씩 비틀어 놓은 벤치, 뇌 형상의 밧줄... 모양의 녹... 이 슨 금, 특이한 조각 등 재미있는 것들이 많다.
Jeppe Hein, Mirror Angle Fragment, High Polished Steel (Super Mirror), Aluminum, 220 x 100 x 100cm, 2008
(좌) Michael Sailstorfer, Brain Z, Bronze Patinated Gold, 30 x 33 x 35cm, 2020
(우) Alicja Kwade, Trans-for-Men (Fibonacci) 5, Branco Granite, Stainless Steel, Stone, Bronze, Petrified Wood, 107 x 75 x 311.6cm, 2020
(좌) Erwin Wurm, Kastenmann, Bronze, Patinated, 200 x 60 x 55cm, 2017
(우) Anderas Schmitten, Wartende, Bronze, Lacquer, Corten Steel, Sculpture : 120 x ∅ 51cm, Plinth : 97 x ∅ 63.5cm, 2020
그중 아무래도 사람들의 관심을 가장 많이 끈 것은 최정화 작가의 숨 쉬는 꽃. 재작년 국립현대미술관 현대차 시리즈에서 최정화 작가의 많은 작품들을 보았는데 일상에서 쉽게 소비되는 접근성이 좋은 것이라면 무엇이든 재료 삼아 작업을 하는데 이는 고급화된 예술과 대중과의 경계를 허무는 것이라고 한다. 개인적으로 소쿠리, 냄비, 고무장갑 등으로 만든 예술 작품이 썩 매력적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어쨌든 이 작품은 작가의 시그니처 작업물 중 하나인데 천이나 비닐 같은 인공물로 꽃이라는 자연을 표현한다. 속에 모터를 달아 꽃이 피고 지는 모습을 연출하는데 재생과 순환과 같은 의미를 담고 있다. 보통 빨간색, 노란색 등으로 작업을 하는 줄 알았는데 이렇게 새까만 색으로 된 것은 처음 보았다. 크기도 큰 데다가 천천히 수축했다 갑자기 펴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생명이 숨 쉬는 느낌보다는 지옥에서 느낄법한 그로테스크함이 엄습했다.
조각도 조각이지만 옥상에서 느낄 수 있는 시원한 공간 자체도 좋다. 워낙 번화가라 공기가 깨끗하거나 자연경관이 아름다운 것은 아니지만 빽빽한 도심을 바라보며 잠깐의 여유를 즐기기엔 충분하다. 북쪽으로 보이는 기아차의 BEAT 360은 그 자체가 하나의 작품이라고 볼 수 있을 만큼 유려하고 역동적이다. 2018년 iF, 레드닷, IDEA의 세계 3대 디자인상을 모두 수상하며 그 아름다움을 인정받았다고 한다.
개관전 이후 좀 더 정돈된 모습으로 관객과 소통할 수 있는 좋은 전시를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앞으로 쾨닉 서울이 SNS에서 핫한 분들에게 단순 소비되어 버리는 공간이 아닌, 예술을, 현대미술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그런 공간이 되길 바란다.
#쾨닉서울 #최정화 #M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