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천재의 순간
어린이집에서 나무반이 있다면 새싹반 정도의 나이,
독수리반이 있다면 병아리반 정도의 나이,
코끼리반이 있다면 다람쥐반 정도의 나이 아이는 자기 자신의 감정 상태를 정확히 인식하지 못할 때가 있다.
화가 나 있는데 자기가 화가 나있는 것을 모른다고 할까.
분노가 아이에게는 상대적으로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감정에 관련 유아책을 보면,
이런 감정을 구현화하여 조절하는 방법을 알려준다.
예를 들어,
화가 둥! 둥! 둥! 이란 책을 보면,
화가 난 상태를 마음속에 있던 평온한 파란 고릴라가 난동 부리는 빨간 고릴라로 변하는 것으로 표현한다.
말이 아직 안 통할 아이에게,
“지금 마음속에 빨간 고릴라 둥둥둥거리고 있어”
그리고 다양한 방법으로 감정을 해소하고 조절이 되면
“고릴라 다시 파랗게 돼서 쿨쿨 자고 있네”
라며 감정을 고릴라로 치환하여 조절에 대해 교육하곤 했다.
성인인 나도 이런 화가 납니다 상태일 때 떠오르는 이미지가 하나 있다.
빨간 고릴라 대신에 포도송이가 떠오른다.
“배고픈 사람들의 영혼 속에는 분노의 포도가 가득해지고, 가지가 휠 정도로 열매를 맺는다”
존 스테인백의 소설 <분노의 포도>에 나오는 대목이다.
머릿속에서 화를 다스리기 위해 이미지 트레이닝을 할 때,
이 포도들 수확하거나, 말라비틀어지는 상상을 하며 화를 다스린다.
물론 단지 상상으로 되지는 않는다.
음악이 도구가 된다.
잠깐 화장실이나 산책을 하며 주머니에서 이어폰을 꺼낸다.
귀에 꽂고 노래 한 곡을 선택해서 삼각형 아이콘을 누른다.
음악 리스트에 여러 가지 선택지가 있지만,
가장 효과적인 노래는 유희열의 피아노 소품곡 앨범 여름날에 있는 <공원에서>이다.
나의 음악 플레이리스트를 찬찬히 보자면,
40%는 10대에 들었던 것,
40%는 20대 초에 들었던 것,
나머지 20%는 20대 중반부터 현재까지 추가된 것이다.
음악 취향이란 게 쉽게 변하지 않고 어린 시절 가장 좋아했던 곡은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진다.
순간순간 필이 꽂히는 노래들이 플레이리스트에 추가되지만,
유행 따라 쫓는 노래들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 자연적으로 도태된다.
보통 나이 먹은 후 새로운 노래들은 플레이 리스트에 오래 남는 경우가 없는 것 같다.
갑자기 필이 꽂히는 노래도 많이 없고 말이다.
하지만,
딱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 태어난 후 전후해서 들었던 노래들은 꾸준히 플레이 리스트에 남아있다.
삶 속에 감정적으로 충만한 경험들과 당시 들은 음악들이 서로 얽혀 내 취향에 새로운 지층을 형성한 듯하다.
앞서 말했듯 산부인과를 다닐 때 들었던 유희열의 공원에서,
아이가 태어나길 기다리면서 들었던 McFly의 <All about you>.
All about you는 당시 탄생을 테마로 한 정수기 광고 배경으로 나왔었는데,
바이준의 <통조림>과 이지수의 <flying petals>는 아이 100일, 돌잔치 영상에 내가 넣었던 곡이다.
한참 아이를 유모차에 태워 산책했을 때는 버스커 버스커의 1집 전집을 끊임없이 들었다.
신기하게도 아이가 태어난 후,
사랑 관련 노래를 들으면 가사들이 아이에 대한 사랑으로 변환돼서 들린다.
마치 연애 시절에 모든 사랑 노래가 우리 노래 같이 들리듯,
자식에 대한 사랑에 관한 노래로 들린다.
아이가 태어나기 직전의 설레는 순간,
아이가 태어나는 놀라운 순간,
아이가 태어난 후 경이로운 순간은 영상이나 사진으로 촬영할 순 있어도,
당시 터져 나오는 감정을 담을 순 없다.
그 감정을 재생하는 것은 적절한 노래에 그 느낌을 꾸준히 증착시키는 것이다.
보통 열심히 촬영 감독이 되려고 하나,
정작 중요한 것은 훌륭한 음악 감독이 되어야 한다.
뇌 속에서 격렬하게 연주하는 도파민, 세로토닌, 옥시토신의 배합은 촬영 감독은 잡아낼 수 없는 영역이다.
오로지 음악 감독만이 흩날리는 순간을 음악 속에 잡아 둘 수 있다.
훌륭한 음악 감독이 되었다면,
몇 년 후에도 그 음악을 들을 때면,
다시 그 순간의 호르몬 배합을 불러낼 수 있으리.
출산을 기다리신다고요.
빨리 훌륭한 음악 감독이 되시기 바랍니다.
당신 속에 있는 우주가 탄생하는,
빅뱅의 순간은 오로지 음악으로만 잡아낼 수 있으니까요.
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