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혜연 Mar 15. 2022

3화. 내가 없는 아빠의 완벽한 결혼식

내가 없어야 아빠와 그 여자의 결혼은 완벽할 수 있었다.





모두가 분주하게 움직이던 주말, 미국에 계시는 삼촌까지 와서 아빠의 결혼식을 축하해주었다. 그날은 사람들이 몹시 많았고 집으로 찾아오는 친척들이 많았기에 설레기도 하고 기쁘기도 했다. 개인적으로 미국에 있는 삼촌을 좋아했는데 항상 친절한 웃음과 미소로 나를 대해 주었기 때문이다. 몇 번 만날 수 없긴 했지만 만날 수 있을 때는 최선을 다해 나를 예뻐해 주고 귀여워 해 주었기 때문에 삼촌을 너무나 좋아했다.


아직도 기억나는 아빠의 정장 모습과 새엄마의 웨딩드레스 모습이다. 친엄마가 보고 싶을 때 할머니가 한숨을 쉬며 아주 오래된 비디오테이프를 넣어 틀어준 적이 있는데 그때 다소 좁아 보이는 결혼식장에서 친엄마와 아빠의 결혼식 현장을 간접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었다. 분명 아빠도 좋아했고 낯선 친엄마의 얼굴에선 경직된 표정이 보였지만, 행복한 듯 보였다.


그때보다 아빠의 미소는 더 올라간 것처럼 보여 내심 슬픈 마음이 들기도 했다. 아빠는 지금의 결혼이 몹시 만족스럽고 행복한 듯해 보였다. 이상한 마음도 들었고, 내가 아닌 새엄마가 옆에 있는 모습을 보니 어색한 마음까지 들었다. 왠지 순위에서 밀려난 기분이 들기도 했지만 내가 바꿀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리고 분명 나는 결혼식장에 내 자리가 있을 줄 알았는데 내 자리는 없었다. 갑자기 결혼식이 시작할 무렵인지 주변의 pc방에서 사촌들과 놀고 오라는 친척의 이야기가 있었고, 결혼식이 진행되는 동안 pc방에서 열심히 게임을 했다. 그때 유행하던 땅따먹기 게임은 정말 재밌었지만 그날만큼은 보고 싶은 장면을 볼 수 없어서였는지 재미를 느낄 수 없었다.


"이제 가자"


나보다 몇 살 더 위인 친척 언니는 이제 돌아가자고 이야기하여 게임을 멈추고 결혼식장으로 돌아갔다. 이미 식은 끝났고, 모두가 포토타임을 가지는 시간이 되었다. 나는 왠지 모를 위축감이 들었고, 그 사진에 결코 끼어선 안될 인물이라는 것을 직감하게 되었다.


이럴 거면 할머니는 그 예쁜 옷을 왜 사다 주었을까 원망스럽기도 했다. 아침부터 한껏 들떠서 결혼식장에 간다고 몇 주 전부터 예쁜 옷을 사다주신 할머니였다. 처음에는 무지개 원피스였지만, 사이즈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다시 점잖은 옷으로 바꿔와 주셨는데 그 옷도 이제까지 본 옷 중에 가장 예뻤다. 그렇게 예쁜 옷을 입고 한껏 멋을 내고 아빠의 결혼식에 갔는데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었다는 걸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나는 초대받지 못한 손님이구나..'


아빠와 새엄마는 저 멀리서 사진을 찍고 있었고, 아빠의 친구들과 엄마의 친구들이 모두 모여 활짝 웃고 있었다. 눈앞에서 식장의 하얀색 문이 살짝 닫혔는데 마음이 허전했고, 그때부터 외톨이가 된 기분이었다. 그렇게 어떻게 끝난지도 모를 예식장에서 아빠와 새엄마와는 인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신혼여행을 떠났다는 말만 전해 들었고 다시 할머니 집으로 돌아오게 되었다.


분명 즐겁고 행복하고 들뜬 결혼식이 될 줄 알았다. 나는 아빠의 딸이기 때문에 그 자리에 앉아있을 자격이 충분하다고 느꼈지만, 어른들은 나의 존재를 꺼려했고 새엄마의 가족들에게 내 존재를 보여주지 않기 위해 급급했다. 괜히 서럽고 슬펐다. 나는 그토록 그 여자와 아빠의 결혼을 환영했는데, 돌아온 것은 냉대뿐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 사람을 좋아해도, 그 사람은 나를 좋아해 줄 수 없고 그 사람의 배에서 나온 친자식이 아니기 때문에 결코 가족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조금 늦게 알게 되었다. 진작 철들었다면 상처받을 일도 없었을 테지만 모든 실연을 겪고 나니 그 또한 상처라는 것을 나중에서야 알게 되었다.


11살의 나는 아직 생존법을 알지 못한 채 파도가 출렁이는 바다를 항해하는 어리석은 뱃사공과도 같았다. 그렇게 오는 파도들을 피할 새도 없이 맞이했고, 진퇴양난인 상황 속에서 온 몸으로 맞서 싸웠다. 사실 싸운 것이 아니라 계속 맞기만 하였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고, 상처는 더욱 깊숙이 파고들어만 갔다. 언젠가 잠잠해지길 기다리면서...





매거진의 이전글 2화. 그 여자 이름은 '새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