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에 서 있다 보면 많은 사물과 공간들을 경험하게 됩니다. 단편적으로 보이는 부분은 그저 하얀 구름이 떠 있는 푸른 하늘, 위에서부터 아래로 흘러 내려가는 계곡물과 청량하게 지저귀고 있는 산새 소리에 불과하겠지만 나름의 삶을 안고 업을 지탱하고 또 업을 이으며 살아가는 것이겠지요.
어찌 보면 단편적인 것만 바라보는 것은 그저 허상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듭니다. 마냥 흘러가는 물을 보며 그저 돌고 돌아가는 그 물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게 되고, 산새 우는 소리가 구슬프게 들리는 때도 있습니다. 방울방울 달려있는 토마토 익어가는 모습이 마치 처량하게 느껴지기도 하고, 아래서부터 뜯다 만 상추의 앙상한 뼈대가 가엽게 보이기도 하지요. 혹은 갈색으로 변해버린 마른 옥수수수염에서 미묘한 감정이 솟구쳐 올라오기도 하고 너무 넓게 퍼져버린 깻잎을 보며 괜스레 무상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혹은 지금 밟고 서 있는 땅에서 기어올라오는 곤충의 움직임에 경건해지기도 하며, 혹여 개미를 밟지는 않을까 긴장되는 마음으로 살포시 걸음을 옮겨 보기도 합니다.
오늘은 누군가 상추를 따다 주었습니다. 제가 산속에 살 때는 직접 농사지어 먹고살던 일이 평범한 일상의 연속이었지만 도심에 살다 보면 미처 농작물을 재배할 여유가 없어지기도 합니다. 어쩌면 그 사이 도심이라는 핑계와 명분을 구실 삼아 제가 게을러진 것 일수도 있겠지요. 도심이라도 농작물을 재배하는 사람들은 자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며, 일상과 농사를 병행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치 부모가 어린아이의 하루하루를 생각하듯 오늘의 날씨를 알기 위해 미리 일기예보를 확인하는 수고로움을 마다하지 않고, 가뭄이 오래 지속되면 일부러 물을 주어 마른땅에 물을 흠뻑 적셔줍니다. 조금이라도 목이 마를까 싶어 세심하게 관찰해보는 노력까지 더해줍니다. 바람이 세게 부는 날에는 끈으로 묶어주기도 하며 아이들의 키가 커질수록 버티는 힘이 사라지기 때문에 막대기를 꽂아놓기도 합니다.
그렇게 오늘 하루 고마우신 분이 따다준 상추에 밥을 곁들여 먹으며 상추를 음미해 봅니다. 하나하나 따다 주신 그 손이 고맙고, 그분의 마음이 감사하고 상추 몇 장, 밥상까지 올라오게 해 준 많은 분들이 노고가 생각되는 어느 날의 아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