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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슨트 춘쌤 Feb 05. 2023

마음 산책 1. 종묘(1)

시작을 고민할 때


좋았다.

어릴 때는 말이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작을 한다는 것. 

하지만 

나이가 든다는 것은

시작을 싫어한다는 말과 동의어다. 



 시작은 

두려움과 설렘이 공존한다. 

미래를 알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은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순간이다. 

그 공존이, 교차가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지금의 평온을 깰 것 같은 불편함. 



사실,

시작과 끝은 뫼비우스 띠처럼 반복된다. 

무엇 하나가 끝나면, 새로운 시작을 알린다. 

반면, 시작은 끝을 전제로 한다. 



그래서 시작은 끝과 이어진다. 

간단하게 말하면

머리가 복잡하단 뜻이다. 


이럴 땐  몸을 써야 한다. 

현실을 점검하고, 미래를 예측하며 산다는 것은 

꽤나 머리 아픈 일이다. 

차라리 몸에 주도권을 주자. 


그리고 걷자. 


종묘로!


종묘는 우리나라 최초의 세계유형문화유산이자, 기록문화유산과 무형문화유산을 

포괄하는 문화적 가치가 뛰어난 한국을 대표하는 신전이다. 


나는 새로운 시작을 고민할 때, 

이 종묘를 찾는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도 그랬다. 

고려를 끝내고, 새로운 나라를 건국했을 때,

그는 수도를 새롭게 정하고, 

종묘를 가장 먼저 건축했다. 


끝을 청산하고, 시작을 알리는 건물이자 

왕조의 심벌이기 때문이다. 


왜 종묘일까?

종묘는 왕실의 시작과 끝이 담긴 공간이자 기억의 산실이다. 

역대 왕과 왕비들의 혼을 모신 사당이자 최고의 신전!

그 나라의 근본이 담긴 건축물. 

그렇기 때문에 종묘는 그냥 짓지 않는다. 

그 나라의 방향성이 담겨있어야 한다. 


좌묘우사(左廟右社)

왕이 남쪽을 바라보는 것을 기준으로 

동쪽은 종묘, 서쪽은 사직단(곡식과 땅의 신전)을 세운다. 

유교의 고대 경전 <주례> 고공기에 있는 내용이다. 

태조는 아니, 정도전은 이 원칙에 충실했고

종묘를 완성했다. 


시작을 할 때는

원칙을 세워야 한다는 것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황량한 한양의 빈 공터에

정도전과 이성계는 종묘를 세우면서 왜 <주례>를 참고해야 했을까?


시작에는 

원칙이 중요함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시작을 할 때 반드시 원칙을 세워야 한다. 

그 원칙이 될 기준을 잡아본다. 

근거를 찾아본다. 

내가 어떤 사람이 될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이 무엇 일지를 가늠하게 될 망원경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이 땅에 있었던 국가들과 원칙을 다르게 설정했다. 

자연 지세에 맞춰 수도와 궁궐, 종묘를 구성했던 원칙을 버렸다. 

성리학을 원칙으로 삼고, 

조선의 미래를 그려나갔다. 

그 첫 시작이 

종묘였던 것이다. 


성리학의 나라, 조선은 그렇게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1392년, 고려의 멸망과 조선의 건국이 

형식적인 시작이었다면, 

1395년, 종묘의 완공이 본격적인 조선의 시작을 알리는 기점이라 할 수 있다. 


종묘는 그렇게

유교의 원칙에 의해 

조선의 수도, 한양의 탄생을 알렸다. 


종묘를 시작으로 

경복궁이 들어섰고, 한양 성광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한양은

조선왕조 500년의 수도가 되었다. 


시작을 알린 

종묘의 건설. 


그 시작은 종묘공원의 시작인 하마비에서부터다. 

하마비는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왕 포함) 말에서 내린다는 것이다. 

왕의 선조를 만날 종묘이기 때문에 겸손하라는 의미이다. 


그렇다. 

무엇인가 새로운 시작을 할 때,

마음은 이와 같아야 한다. 

하마비를 마음속에 담아둬야 한다. 

겸손한 마음을 미래를 바라보며, 기대하며 마음속 교만에서 

내려와야 한다. 

급한 마음에는 잠깐 쉼표를 선물한다. 

그것이 하마비의 존재이유다. 

그리고 천천히, 

금천교를 건넌다. 


속세와의 단절을 뜻하는 금천교. 

신성한 금천교를 지나며

마음을 가다듬는다. 


마음속 가졌던 복잡한 생각을 내려놓는다. 

온전히, 

순수하게 종묘만을 바라보며 걸어간다. 


그렇게 흙길을 걷다 보면, 

만나는 종묘의 정문. 

창엽문(혹은 외대문)

나는 외대문보다 창엽문으로 부르는 것을 좋아한다. 

정도전이 이름을 만들어 줬다는 창엽문. 

창엽(蒼葉). 

푸른 잎사귀가 뻗어나가듯 조선왕조의 번영을 바랐던 정도전. 

창업자 중 한 사람으로서의 마음가짐이 담긴 이름이다. 


그렇다. 

원칙을 세웠다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그 희망을 담은 흔적을 곳곳에 남겨야 한다. 

정도전이 그러했듯. 


창엽문은 기존의 정문과 다른 형태이다. 

화려하지 않고 단아하다. 심플하다.

경복궁의 광화문이 주는 웅장함과 창덕궁의 돈화문이 주는 편안함과 

다르다. 

종묘라는 이름에 걸맞은 정제된 정문. 


시작은 이렇게 심플해야 하는구나!

번거로움을 제하고,

목적에 맞는 심플함만을 가지는 것. 



시작할 때 가져야 할 준비상황이다. 

억지로 할 필요가 없음을 알려준다. 

무리할 필요가 없다. 

있는 만큼. 


중요한 것은 규모와 양이 아닌 

목적에 맞는 수준을 명확하게 아는 것이다. 



종묘의 정문 창엽문은 

단아하다. 그래서 더 빛난다. 


종묘의 목적에 맞게 설계되고 한치의 낭비를

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청은 화려하지도 않다. 

묵묵하다. 

왕들의 혼이 들어갈 홍살문 형태의 창살을 만들어 

종묘의 목적을 드러냈다. 


창엽문의 존재 자체가 

사람이 아닌, 왕의 조상들을 위해 만들어졌음을 

분명하게 보여준다. 


그 창엽문의 지나면

어떤 모습들이 날 반길까?


물 한 병값 

1000원을 내고, 

종묘의 품 안으로 들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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