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새로운 시작을 위해

우리는 함께 산다.

by 도슨트 춘쌤

[#1. 애완동물이 아닌 반려동물]

▶혼자서 삶이라는 바다를 건널 수 없다. 함께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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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낭만주의 화가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의 「배 위에서」입니다. 인생은 항해와도 같습니다. 결국, 삶이란 여정 속에서 우린 모두 인생이란 배를 타고 있습니다. 혼자서 항해하기란 너무 어려운 일이죠. 온갖 힘든 파도와 풍랑이 바다에서 우릴 기다리고 있으니깐요. 그럴 때 이 두 남녀처럼 꼭 손을 잡아 줄 수 있는 대상이 필요합니다. 그 대상이 바로 여러분들입니다.


냥:그렇다면 함께 인생이란 바다를 헤쳐나가는 동료로 우리를 받아줘야 하는 것 아닌가요. 상품이 아니라요.


그렇습니다. 여러분들은 상품이 아닙니다. 그래서 ‘애완동물’도 아닙니다. 애완동물은 동물을 사육하면서 느끼는 인간의 즐거움을 강조한 용어입니다. 장난감을 만질 때 느끼는 감정과 유사하죠. 반면 ‘반려동물’은 더불어 사는 친구를 강조하는 용어입니다. 여러분들은 나와 우리 인간의 반려동물입니다. 함께 사는 존재라는 의미이죠.


개: 반려동물…. 좋은 말이에요. 그리고 우리를 상품과 장난감이 아닌, 하나의 존재로 본다는 점이 더욱 좋네요. 그런데, 과거 인간의 역사에서 보듯이 이것 또한 소리 없는 메아리로 끝나지 않을까 싶어요. 실천 없는 행동은 공허한 법이죠.


다행스럽게도 인간에게는 자신의 잘못을 보면, 점차 바꾸고 노력하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법’이라는 형태로도 나타납니다.

그림은 장 오귀스트 도미니크 앵그르의 「제우스와 테티스」입니다. 제우스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최고 신이죠. 테티스는 강물의 여신이며, 아킬레우스의 어머니입니다. 그런 그녀가 제우스의 수염을 만지며, 간절히 무엇인가를 부탁하는 그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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냥:제우스가 매우 권위적으로 묘사된 그림이네요. 반면 테티스는 매우 간절한 부탁을 할 그건가 봐요. 거의 노골적인 저자세에요.


티테스는 자기 아들 아킬레우스가 죽지 않도록 간청하고 있습니다. 이것만 보면 모성애를 그린 그림이라 볼 수 있지만, 사실 그림 속에서는 남성우월주의적 시선이 가득합니다. 이 그림을 이야기한 것은, 인간의 역사 속에 인간을 차별했던 순간들이 꽤 많았다는 점을 이야기하고 싶어서였습니다. 사실, 여성은 인간의 대접을 받지 못했죠. 고대에는 여성을 인구수에 포함하지 않았을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여성은 끊임없이 투쟁한 결과 점차 인간으로 인정받았고, 영국의 경우 1928년이 되어서야 남자와 동일하게 선거권을 부여받을 수 있었죠. 여성이 인간으로 인정받은 것은 100년이 안 된 일이라고 할 수 있어요. 수천 년간 여성의 권익은 존중받지 못했던 것이죠. 그런데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여성이 인권을 인정받았으나 자신과 다른 피부를 가진 ‘종족’들은 인간으로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특히 백인은 황인종과 흑인을 인간이 아닌 존재로 봤으며, 신학적 논쟁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그림을 보세요. 그림은 조지프 말로드 윌리엄 터너의 「노예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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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도 인간이었다.


개:배가 풍랑을 만났는지 가라앉고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그림 제일 끝에 보면, 쇠사슬이 발에 묶여 있는 것이 보여요.


터너는 당시 횡횡했던 흑인 노예선의 실상을 그림으로 그렸어요. 1783년 아프리카에서 자메이카로 갔던 영국 노예선이 가라앉게 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러자 선장은 노예들을 바다에 던져버리죠. 이렇게 되면 노예 보험이 적용되어 보상금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상품 취급을 받았던 흑인들은 끊임없이 투쟁하며, 차별을 극복하기 시작합니다. 1965년, UN에서는 모든 형태의 인종차별을 철폐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존중하기 위해 인종차별 철폐 협약을 채택하게 됩니다.


냥:인간은 자기들끼리도 구분을 짓고 있었군요. 결국, 인간은 끊임없는 문제 제기와 노력을 통해 인간의 권리를 확대해 나갔네요.


인간은 자신의 과오를 이렇게 개선하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그나마 다행이죠. 그렇게 수천 년간 이어져 오던 차별은 개선되고 있습니다. 물론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는 다양한 형태로 차별이 남아있어요. 여기서 주목할 것은 차별을 철폐하기 위해 노력이에요. 크게 두 가지였어요. 한가지는 인식의 전환, 다른 한 가지는 제도적 전환을 통해서 말이죠. 이 두 가지 변화는 차별 없는 세상을 만드는 데 매우 중요한 키워드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여러분에게도 이 두 가지를 통해 그동안 받았던 차별들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개: 인간들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저지르고 있는지 먼저 ‘인식’해야 고칠 수 있는 존재군요. 또 인식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기 때문에 ‘법’적인 조치도 필요하고요. 이 두 가지는 어떻게 할 수 있나요?

[#2. 우리는 함께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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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산다는 것, 그것은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에서 시작된다..


결국, 인간은 모든 생명체와 함께 지구에 살고 있다는 인식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지구의 주인이 ‘인간’이 아니라는 생각도 함께해야 하죠. 이 그림을 볼까요? 그림은 마르크 샤갈의 「나와 마을」입니다.


냥: 평화로운 마을 같아요. 몽환적인 색채는 황홀할 지경이에요. 또 남자와 소가 얼굴을 마주하는 모습이 인상적이기도 하고요.


샤갈은 유대인이었어요. 그래서 많은 핍박을 받았죠. 스스로 이름을 바꿔야 할 정도였으니깐요. 하지만 그는 자신이 유대인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림에 반영했죠. 그리고 자신만의 색깔을 드러내며 유명한 화가가 됩니다. 도리어 자신이 차별받는 이유였던 ‘유대인’의 사상과 생각을 내세워 독보적인 화풍을 만들어 냈던 거에요. 샤갈이 인정받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냈다는 겁니다. 샤갈의 그림처럼 우리는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공존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자세가 인식변화의 첫걸음이기도 하고요.


개: 존재를 인정한 다라. 그렇다면 인간들은 우리 개와 고양이를 같은 동격으로 봐야 한다는 말씀인 거죠? 그런 인식변화가 이뤄질 수 있을까요.


인간은 그동안 지구의 주인으로 행세했죠. 하지만 그 결과 지구는 빠르게 황폐해지며, 자연 생태계는 파괴되고 있어요. 의도치 않은 자연의 변화는 인간을 당황하게 하고 있습니다. 전염병이 발생하면서 인간들은 자신의 과오를 인식하기 시작했거든요. 이제, 인간은 지구의 주인이 아닌, 일원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간 중심주의에서 탈피해서 ‘종차별주의’를 벗어나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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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가스는 이미 자신과 트럼프라고 불렸던 개를 동일시 했다.


모든 지구 생태계 속 인간과 동물은 고귀하며 동등하다는 사고방식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이러한 정신을 잘 보여준 그림이 있습니다.


개: 우리 개와 인간이 나란히 그려져 있어요. 동등하다는 뜻을 담은 그림인 것 같아요.


그림은 영국의 유명한 판화가였던 윌리엄 호가스의

「자화상」이예요. 자화상 속 호가스는 자신이 사랑했던 반려동물 ‘트럼프’와 함께 있는 모습을 그렸죠. 호가스와 트럼프 모두 동등한 모습과 크기로 그려졌다는 것이 중요해요. 서로를 동등하게 대우한 호가스의 마음가짐이 느껴지는 그림이죠.


냥: 이 그림을 보니, 고양이를 사랑했던 몽테뉴의 말이 생각나네요. “내가 고양이를 노는 것이 아니라 고양이가 나를 가지고 는 것은 아닐까” 라고요. 사실 그 말이 맞거든요. 우리는 놀고 싶을 때 인간과 노는 것이거든요.

몽테뉴도 호가스와 같이 동물들을 동등하게 바라봤던 인간인 것 같네요. 인간들이 자신과 동등하다고 생각할 때, 항상 변화는 찾아옵니다. 왜냐하면, 상대방의 마음에 공감하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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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은 마음을 서로 나누는 것이다.


인식의 변화는 공감을 가져옵니다. 공감은 인간과 동물이 서로의 존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어요. 상호작용적인 감정적 현상이죠. 공감하기 위해서는 동물들도 인간처럼 감정을 가진 존재임을 알아야 하죠.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랑으로 관찰하고 공부해야 하는 이유이기도 해요. 알아야 바라볼 수 있고, 바라봐야 공감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이 미술관은 그러한 목적에서 설립된 것이기도 하고요. 브리턴 리비에르의 「공감」은 동물과 인간이 공감하고 있음을 잘 보여줍니다.


개: 개와 어린 소녀가 머리를 맞대고 있어요. 어린 소녀가 걱정하고 있는 것 같은데, 개는 걱정하지 말라고 하는 것 같아요. 서로를 이해하며 공감하고 있는 것이죠. 이 그림처럼 인간이 우리 동물들과 공감하기 위해 인식의 변화를 가져가고 있다는 것이 고무적이에요.


냥: 하지만 인식의 변화만 하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요. 더 근본적인 대책이 필요하죠.


실천이 수반되어야 해요. 먼저 자신의 반려동물을 사랑해야 하죠. 그리고 알아야 해요. 또 버리면 안 됩니다. 유기는 모두의 마음에 상처를 줄 뿐이에요. 그리고 동물을 희생해서 만든 물건이나 용품은 사용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요. 개와 고양이 여러분이 오늘 미술관의 주인공이기 때문에 여러분만 이야기했지, 사실 인간은 돼지, 소, 닭, 말 등 여러 동물도 많은 학대와 착취를 당했어요. 이 동물들에게서 착취하는 생산물들을 소비하지 않도록 실천해야 합니다.


개:개와 고양이뿐 아니라 모든 동물이 인간으로부터 동등한 대우를 받아야 하죠.


이러한 실천을 기반으로 법적 규제도 함께 이뤄져야 해요. 동물공장에서 개와 고양이 등의 동물을 ‘상품’으로 생산하지 못하도록 동물보호법을 강화해야 해요. 동물을 인간과 동등한 존재로 보게 되면, 동물권을 법적으로 논의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냥:동물권은 인권과 같은 개념이라고 볼 수 있는 거죠?


인권이 법으로 제정되면서 사회적으로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았듯, 동물권도 법으로 제정되어야 합니다. 슈바이처는 “모든 생명체는 생존 의지를 가졌기 때문에 모두 똑같이 존중받아야 한다.”라고 말했죠. 슈바이처의 말대로 동물권도 인권과 동일한 차원에서 법적인 논의를 진행해야 합니다.


개:우리나라도 동물권에 대해 법적으로 다룬 적이 있나요?


1991년 동물보호법 제정이 공포되었어요. 하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의 개념보다는 애완동물의 개념이에요. 재산으로 취급되어 있기 때문이죠. 반면 스위스에서는 1992년 헌법에 동물의 존엄성을 명시했어요. 동물권을 헌법으로 제시한 사례라 할 수 있어요. 독일도 동물 보호의 국가적 목표로 설정하면서 동물권을 법제화시키고 있습니다. 인간은 이처럼 법을 통해 동물의 권리를 존중하고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위해 노력하기도 합니다. 모든 인간이 나쁘다는 생각을 가지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냥:그렇군요. 나쁜 인간도 있지만 좋은 인간도 있어요. 그리고 인간들이 우리 동물들에게 관심을 가질수록 인간들의 삶도 더 나아질 거예요.


개: 동물에게 잔인한 인간은 다른 인간에게도 그럴 수 있어요. 우리 동물을 대하는 태도를 보고 그 인간의 본성을 알 수 있죠. 이 지구에 사는 이상, 인간이든 동물이든 함께 배를 탄 동지라는 것을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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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손잡고 춤을 추는 그 순간, 우리 모두의 공존이 이뤄진다.


우리는 함께 살아가는 친구이자, 동료예요. 이 그림이 미술관의 마지막 그림입니다. 마티스의 「춤」입니다. 죽기 전에 꼭 봐야 할 미술품 중 하나로 꼽힌 작품이에요. 저는 이 작품을 볼 때마다 함께 손을 맞잡고 뛰어야지만 제대로 춤이 이뤄진다는 것을 생각할 수 있었어요. 지구도 마찬가지예요.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 인간이 계속 생존하기 위해서라도 동물과 함께 손을 맞잡아야 하죠. 춤을 출 때, 내 옆에서 여러분들이 제 손을 잡고 함께 췄으면 좋겠네요. 그동안 도슨트의 설명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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