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 부다페스트의 밤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 200
성당을 뒤로한 채 국회의사당을 향해 걸었다. 평화로운 길이었다. 가는 길에 메모리얼 파크 같은 곳이 있었는데 소비에트 전쟁의 희생자를 기리는 곳인 것 같았다. 도시 한복판에 이런 공원이 있다는 것도 놀라웠고 관광객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각자의 방식으로 애도를 하는데 현지 젊은이들인지 엄청 신나게 떠드는 모습을 보이길래 그 모습 또한 되게 놀라웠다. 이들에게 이 공원이 갖는 의미는 무엇일까? 궁금했다.
구글맵이 알려준 길이 아닌 그냥 이름 모를 골목으로 들어왔다. 느와르 영화에 나올법한 거리였는데 걷다 보니 마차시 성당과 도나우강이 한 프레임에 들어오는 것이 너무 아름다웠다. 뉴욕은 안 가봤지만 뉴욕 브루클린 덤보만큼 멋진 곳이었다. 때마침 트램이 지나가길래 셔터를 눌렀다. 어떻게 나올지는 알 수 없으나 이왕이면 잘 나오길 바랐는데 예상보다 더 분위기 있게 나왔다. 역시 자연광이 필름 카메라와 제일 잘 어울린다.
해가 질 때쯤 도나우강에 가게 된 것은 꽤나 좋은 선택이었다. 그곳의 분위기와 지는 노을이 참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국회의사당은 참 정교하게 만들어졌는데 이런 건물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은 매일 출근 시간이 기다려질 것 같았다. 아닌가 막상 일을 하다 보면 다르려나.
가만히 서서 노을을 즐기기 좋은 날이었다.
도나우강을 따라서 걸었다. 한인마트에 가서 저녁으로 먹을 음식들을 사기로 했기 때문이다. 계획이 없어 다니는 여행이어서 그런지 동선이 완전 꼬였다. '즉흥적인 것이 인생의 묘미니까'라고 스스로 위로를 해본다. 물론 꼬인 동선 덕분에 부다페스트 시내는 지도 없이도 다닐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날은 해가 노랗게 졌다. 도나우강과 노을이 한 프레임에 담기는데 너무 아름다워서 가던 길을 자꾸 멈추게 만들었다. 이 노을은 나만 보기 너무 아쉬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왜 이 도시가 야경의 도시라고 칭해지는지, 나는 부다페스트를 노을의 도시라고 말하고 싶다.
해가 거의 지고 달이 뜨기 시작했다. 개와 늑대의 시간이었다. 겔레르트 언덕 위로 초승달이 떴는데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한참을 보고 있었다. '과연 필름 카메라로 달과 노을이 잘 담길 수 있을까', 반신반의하며 찍었는데 현상된 것을 보니 너무 잘 나와줘서 감동이었다. 휴대폰으로 찍은 것보다 더 아름다웠다. 이런 것이 필름 카메라의 묘미지 않을까. 내가 필름 카메라를 잃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다.
두 손에는 마트에서 장 본 것들이 한가득인데 하늘이 너무 예뻐서 사진을 계속 찍게 되었다. 감도 200짜리 필름이라 자칫 잘못하면 흔들리게 되어서 숨도 참아가면서 열심히 셔터를 눌렀다. 이렇게 흔들리지 않는 컷이 나오면 얼마나 뿌듯한지 모른다. 밤에 촬영을 하게 되면 보통 같은 장소에서 2~3장 정도 찍는데 그중 한 장 정도는 흔들리지 않았다.
우리 삶도 그런 것 같다. 안 좋은 상황에서 여러 번 도전하다 보면 한 번쯤은 괜찮을 때가 있다.
부다페스트로 여행을 간다고 했을 때 아빠는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가더라도 절대 유람선은 타지 말라고 덧붙였다. 아빠가 아는 부다페스트는 그때 그 사고가 전부이기 때문이다.
세체니 다리를 건너면서 도나우강을 바라보니 왜 사람들이 그때 유람선을 타고자 했는지 알겠더라. 내 가족에게, 친구에게, 연인에게 더 가까이에서 더 좋은 풍경을 보여주고 싶어서였을 것이다. 야경이 너무 아름다워서 참 씁쓸했다.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명복을 기리며 다리를 건넜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곡을 꼽으라면 RM의 <Moonchild>라는 노래를 이야기할 것이다. 다른 도시들과도 잘 어울렸지만 유독 부다페스트와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We're born to be sad, sad, sad, sad, Suffer to be glad, glad, glad, glad'라는 가사가 왜인지 아름답지만 씁쓸한 이 도시의 야경과 참 잘 어울렸다.
왜인지 이 도시의 야경을 보고 있으면 울컥하는 것들이 올라온다. 도나우강에 슬픔이 있어서 그런 것인지 아니면 <글루미 선데이>의 도시여서 그런지 모르겠다. 여러 빛들이 모여 장관을 이루고 그것에서 오늘도 위로를 받지만 내일 아침이면 또 사라져 버릴 것을 알기에 더 그런 건지 모르겠다. 아마도 우리의 여행 끝을 향해가고 있어서 아마 더 그런 마음이 드는 것이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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