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일 차 : 부다페스트를 걷다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 200
햇볕이 참 잘 드는 집이었다. 급하게 에어비앤비 통해서 예약한 집인데 위치도 가격도 좋았다. 제일 좋았던 것은 호스트였다. 전날 근처 식당에서 술 한 잔 하고 집에 와서 씻으려고 보니 샴푸가 없었다. 마트도 다 닫았는지 검색해도 안 나오길래 호스트에게 연락을 취했다. 그러자 그는 '주소가 어떻게 되냐며, 본인이 아파트를 11채나 가지고 있다'라고 했다. 늦은 밤에 샴푸와 함께 웰컴 기프트라며 초콜릿을 들고 그가 왔다. 집을 둘러보니 안내문 같은 곳에 이런 글이 있었다. 몇 번 스트릿에 있는 카페에 자기 이름을 대고 공짜 커피를 마시라고. 부에서 오는 여유로움이란. 앞으로 내 롤모델이다. 저런 사람이 되어야지.
일단 환전을 하러 데악역 근처로 이동하기로 했다. 대중교통 3일권 티켓을 끊었지만 걸어야 그 도시를 잘 알 수 있으니 '걸어서 부다페스트 속으로'를 찍어보기로 했다. (사실 대중교통을 이용하기엔 여러 번 갈아타야 해서 귀찮아서 걷기로 했다) 강한 햇살을 받으며 도나우강을 따라 걸으니 천국 같았다. 날씨가 이렇게 좋을 수 있나. 행복했다.
세체니 다리까지 한 20분 정도 걸었다. 아침부터 운동하는 사람이 꽤 있었다. 아침 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 함께 걸으니 여행자보다는 동네 사람이 된 기분이었다. 한강 산책할 때랑 비슷한 느낌이었다. 오랜만에 햇빛을 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프라하나 빈과는 건물 형태도 많이 달라서 확실히 새로운 곳이라는 느낌이 강했다. 햇빛도 강해서 노란기가 강했는데 그게 이 도시의 가장 큰 매력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프라하는 빨간색, 오스트리아는 파란색으로 정의한다면 부다페스트는 노란색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 같다. 정감 가는 따뜻한 느낌이 강한 도시다.
언젠가 한강에 있는 다리를 전부 건너는 것이 삶의 목표일 때가 있었다. 혼자서 한강 다리를 걷다 보면 강바람이 나를 감싸는데 그 느낌이 참 좋았기 때문이다.
어느 겨울 밤 아홉시? 열시쯤 됐었나. 퇴근하면서 마음이 공허하길래 마포대교를 혼자 걸었다. 그때 그 다리 위에서 어느 노부부를 만났다. '여자 혼자서 야심한 밤에 한강 다리를 건너는 것은 너무 위험하니 웬만하면 하지 말라'라고 하셨다. 걱정 감사하다고 인사를 나누고 그들이 걸어온 길로 걸었다. 이왕 걷기 시작한 거 다 건너야 마음이 정리될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곳에서 생을 마감하려고 하던 사람을 만났다. 119를 부르고 구급차가 오는 그 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도 나지 않았다. 혼자 걷는 것은 위험하다던 그 노부부의 말만 떠올랐다. 그리고 그 이후 한강 다리를 걷지 않았다. 두려워서.
세체니 다리를 건너면서 그때 생각이 많이 났다. 이 다리에도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겠지. 이 강에도 누군가의 눈물이 담겨있겠지.
부다페스트의 아침은 강렬한 햇빛으로 기억이 될 것이다. 선글라스를 캐리어 안에 두고 가지고 나오지 않은 내 자신이 원망스러울 정도로 햇빛이 너무 강했다. 덕분에 예쁜 사진이 많이 나와서 좋았다. 서울에서는 해가 떠 있을 때 돌아다닌 적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이렇게 햇빛이 사진에 담길 때마다 행복하다. 뷰파인더로 햇빛을 바라볼 때마다 나 자신이 찬란히 빛나는 뜨거운 청춘처럼 느껴진다.
부다페스트는 우리나라만큼 성격이 급하다고 했다. 그걸 관람차를 보고 알 수 있었다. 내 생에 이렇게 빠른 관람차는 처음 봤다. 유일하게 타는 놀이기구가 관람차인데 보통은 천천히 계속 돌지 않나. 근데 이 부다페스트 아이는 멈춰있다가 엄청 빨리 돌고 또다시 멈추더라. 사람이 없을 때 운행을 안 하는 것인지는 안 타봐서 잘 모르겠으나 정말 특이한 관람차였다.
환전소에서 돈을 환전하고 블로그 검색에서 찾은 맛집을 갔다. 방송에도 몇 번 나왔던 집인데 그 글에 부모님이랑 왔는데 너무 입맛에 잘 맞고 맛있어서 부모님이 두 그릇을 싹싹 비웠다고 했다. 부모님이 동남아 분이셨나. 코코넛 향을 엄청 좋아하셨던 분이신가 보다. 내 입맛에는 맞지 않아 거의 다 남긴 채로 나왔다. 다시 한번 느꼈다. 입맛은 사람마다 너무 다르고 나는 미리 검색해보지 않고 그냥 들어가는 집과 잘 맞는다는 것을.
어젯밤에 집 근처 레스토랑에서 먹은 굴라쉬가 너무 먹고 싶었다.
입가심할 겸 커피를 마실까 해서 들어간 카페에서 젤라또를 팔고 있었다. 한국에서는 아이스크림을 잘 안 먹었는데 왜인지 이번 여행에서는 하루에 꼭 한 번씩 젤라또를 먹었다. 결과는 존맛탱. 색깔은 까매도 체리맛인가 라즈베리인가 암튼 그런 베리류의 맛이었는데 정말 맛있었다. 체스키 크룸로프에서 먹었던 딸기맛 젤라또가 1등이라면 이건 2등을 줄 정도로 맛있었다.
걷다 보니 성당 앞에 크리스마스 마켓이 열려있었다. 크리스마스 마켓에 온 김에 오늘도 핫 와인을 먹을까 하다가 상큼한 젤라또 먹었으니 이번에는 달달한 것을 먹어보자 해서 핫 초콜릿을 시켰다. 럼을 넣어주겠다고 했다. 술 안 먹고 싶어서 괜찮다고 했는데 판매하는 분이 럼 조금만 넣으면 엄청 맛있다고 자꾸 꼬시길래 넣었다. 안 넣는 게 더 맛있었을 거야. 하하. 내 소신대로 살아야겠다.
크리스마스 마켓을 둘러보다가 딱히 할 게 없어서 그 앞에 있는 성 이스트반 성당에 들어갔다. 때마침 오르간 연주 시간이었나 보다. 처음에는 직접 연주하는지 모르고 음악을 참 크게 틀어놨네라고 생각했었는데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가니 위층에서 누군가 연주를 하더라. 정말 멋있었다. 그렇게 황홀했던 연주는 처음이었다.
이름부터 대성당이어서 그런지 성당이 엄청 컸다. 그리고 기도하는 곳(정확한 명칭을 잘 모르겠다.)에 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고 있었다. 사람들은 연약한 존재라서 누구나 자신이 기댈 수 있는 존재를 만드는 것 같다. 겉으로는 강해 보이는 사람도 불완전하다는 걸 이 기도하는 사람들을 보고 깨닫게 되었다. 내가 나약한 것도 나 자신이 강한 존재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걸 이들을 보니 알겠더라.
그래서 나도 속으로 기도를 했다.
이곳에서 기도하는 당신들의 소원이 이루어지길, 그리고 우리가 행복할 수 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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