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차 : 빈에서 부다페스트로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 200
아침 해가 밝았다. 이제 조금 시차 적응이 되어서 새벽에 한 번 깼다가 다시 잠들면 해가 뜨는 8시쯤 눈이 떠진다.
부다페스트행 버스는 오후 3시. 빈에서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했다. 동네 산책 좀 하다가 밥을 먹고 부다페스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전날 저녁으로 한식을 먹긴 했으나 저녁에 갔던 레스토랑은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에 타깃이 맞춰진 곳이었다. 짜고 양도 적고 비싸서 좀 아쉬웠다. 맛있는 한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폭풍 검색을 해보니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인에게 유명한 한식당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빈에서 마지막 장소는 한식당으로 정해졌다.
이제는 트램도 익숙하다. 첫날 어버버 하게 트램 탔던 거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금세 익숙해졌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더 머물면서 못 가봤던 레오폴트 미술관도 가고 벨베데레 하궁 전시도 보고 싶었다. 빈의 물가가 조금만 쌌더라면 부다페스트 일정을 바꿨을 것이다.
트램 내려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한식당이 있었다. 처음 오는 동네인데 동네가 참 조용했다. 추워서 그런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 관광객이 없는 것 보니 관광지도 없는 것 같았다. 넓은 땅에 인구가 적은 것은 이런 느낌일까. 한적함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날 먹은 한식 진짜 맛있었다. 누가 빈에 간다고 하면 여기 추천하고 싶은데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난다. 힝.
부다페스트행 버스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역 근처에 버스 터미널이 있기 때문이다. 호텔이 역 근처여서 매일같이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가려고 하니 아쉬웠다. 마지막 타는 트램도 아쉬웠다. 마지막이란 늘 아쉬움이 남는 걸까. 개인적으로 프라하보다 빈이 좋았어서 더 큰 아쉬움이 남았다.
3시 버스라 2시 즈음 갔는데 버스터미널이 우리가 알던 그런 터미널이 아니고 그냥 버스 정류장 수준이었다. 눈도 오고 바람도 엄청 부는데 대기할 장소가 야외밖에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시내에서 카페도 가고 놀다가 오는 것인데.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미리 알아보지 않으니 몸이 고통받나 보다. 너무 추워서 허벅지가 베이는 것 같았다.
버스는 정말 칼 같이 3시 되기 5분 전쯤부터 탑승하게 해 줬다. 정말 칼 같은 나라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잠도 안 오고 딱히 할 게 없길래 여행 동안 촬영했던 영상으로 브이로그를 만들었다. 아니 브이로그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고 그냥 영상 기록물 정도로 정의되는 영상을 편집했다. 업이 이런 거라서 여행하는 동안에는 일하고 싶지 않았는데 찍은 영상 날 것 그대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양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대충 어플 다운 받아서 편집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니 노을이 예쁘게 지고 있었다. 노을을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언젠가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찬란히 빛나는 해가 언제 그리 뜨거웠던 적이 있었냐는 듯 멀리 사라지고 마는 그 하루가 우리네 인생과 흡사하다고. 그러나 해는 다시 뜨지만 인생은 그러지 않는다고. 그 방송을 볼 때는 그 말이 왜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근데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나도 노을을 보며 내 과거를 회상하고 슬픔에 젖을 때가 있으니까.
중학생 때 장래희망이 뭐냐는 말에 어떤 친구가 자기 꿈은 방송국 PD라고 했었다. 뭔가 그 모습이 되게 멋있어 보였다. 당차보이기도 하고. 그날부터 내 꿈도 PD가 되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방송국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상이 내 것 같았던 날도,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던 날도 있었다. 쉴 틈 없이 지금까지 달려오고 나니 남는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도 나빠지고 성격도 안 좋아지고 주변 친구들도 없어지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다 이루고 나니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저 노을은 내일 또 다른 해로 떠서 찬란하게 빛나겠지만 나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니 밤이 됐다. 켈렌폴드 역에서 내렸는데 주위에 아무것도 없고 너무 어두워서 좀 쫄아있었다. 날도 많이 춥기도 했다. 역으로 들어가서 교통권을 끊으려고 했는데 한 5-6명쯤? 젊은 이들 무리들이 티켓 부스 앞에서 소리를 치고 장난을 치고 있어서 더 쫄았다.
티켓을 사고 구글맵으로 숙소까지 가는 길을 검색하고 트램을 타러 찾아가는데 저 달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달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언제나 외롭고 힘들 때마다 저 달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김지수 님의 <여기는 달>을 들으며 숙소로 향했다.
부다페스트는 빛을 참 잘 활용한 도시였다. 왜 사람들이 야경을 보러 이 도시에 오는지 트램 타고 오는 동안 알게 되었다. 관광 명소 하나하나 잘 보이게끔 조명을 엄청 설치해뒀더라. 계속 감탄을 했다. 현재의 조명을 비춰서 과거를 빛나게 한다는 것이 참 아름다웠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OST도 생각이 났다. 실제로 부다페스트에 와보니 이 도시와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잔잔하지만 애절한 그 노래와 같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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