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살, 필름카메라와 함께한 무계획 동유럽 여행기 07

6일 차 : 빈에서 부다페스트로

by 잔물결

CAMERA : Rollei Prego90

FILM : Kodak Colorplus 200


1.jpg #굿모닝_빈

아침 해가 밝았다. 이제 조금 시차 적응이 되어서 새벽에 한 번 깼다가 다시 잠들면 해가 뜨는 8시쯤 눈이 떠진다.


부다페스트행 버스는 오후 3시. 빈에서 마지막 날을 어떻게 보낼까 고민을 했다. 동네 산책 좀 하다가 밥을 먹고 부다페스트로 이동하기로 했다. 전날 저녁으로 한식을 먹긴 했으나 저녁에 갔던 레스토랑은 한국인보다는 외국인에 타깃이 맞춰진 곳이었다. 짜고 양도 적고 비싸서 좀 아쉬웠다. 맛있는 한식이 너무 먹고 싶어서 폭풍 검색을 해보니 호텔에서 멀지 않은 곳에 한국인에게 유명한 한식당이 있다고 했다. 그렇게 빈에서 마지막 장소는 한식당으로 정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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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램

이제는 트램도 익숙하다. 첫날 어버버 하게 트램 탔던 거 생각하니 웃음이 났다. 금세 익숙해졌는데 오늘이 마지막이라니 아쉬웠다. 마음 같아서는 하루 더 머물면서 못 가봤던 레오폴트 미술관도 가고 벨베데레 하궁 전시도 보고 싶었다. 빈의 물가가 조금만 쌌더라면 부다페스트 일정을 바꿨을 것이다.



2.jpg #조용한_거리

트램 내려서 걸어서 20분 정도 거리에 한식당이 있었다. 처음 오는 동네인데 동네가 참 조용했다. 추워서 그런가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거의 없더라. 관광객이 없는 것 보니 관광지도 없는 것 같았다. 넓은 땅에 인구가 적은 것은 이런 느낌일까. 한적함이 쓸쓸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이날 먹은 한식 진짜 맛있었다. 누가 빈에 간다고 하면 여기 추천하고 싶은데 이름이 기억이 잘 안 난다. 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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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역으로

부다페스트행 버스를 타기 위해 중앙역으로 갔다. 역 근처에 버스 터미널이 있기 때문이다. 호텔이 역 근처여서 매일같이 다녔는데 마지막으로 가려고 하니 아쉬웠다. 마지막 타는 트램도 아쉬웠다. 마지막이란 늘 아쉬움이 남는 걸까. 개인적으로 프라하보다 빈이 좋았어서 더 큰 아쉬움이 남았다.


3시 버스라 2시 즈음 갔는데 버스터미널이 우리가 알던 그런 터미널이 아니고 그냥 버스 정류장 수준이었다. 눈도 오고 바람도 엄청 부는데 대기할 장소가 야외밖에 없어서 헛웃음이 났다. 이럴 줄 알았더라면 시내에서 카페도 가고 놀다가 오는 것인데. 머리가 나쁘면 몸이 고생한다고 미리 알아보지 않으니 몸이 고통받나 보다. 너무 추워서 허벅지가 베이는 것 같았다.


버스는 정말 칼 같이 3시 되기 5분 전쯤부터 탑승하게 해 줬다. 정말 칼 같은 나라다.



6.jpg #굿바이

버스를 타고 가면서 잠도 안 오고 딱히 할 게 없길래 여행 동안 촬영했던 영상으로 브이로그를 만들었다. 아니 브이로그라고 하기엔 좀 거창하고 그냥 영상 기록물 정도로 정의되는 영상을 편집했다. 업이 이런 거라서 여행하는 동안에는 일하고 싶지 않았는데 찍은 영상 날 것 그대로 친구들에게 보여주기엔 너무 양이 많아서 어쩔 수 없었다.


대충 어플 다운 받아서 편집을 하다가 고개를 돌리니 노을이 예쁘게 지고 있었다. 노을을 보니 기분이 싱숭생숭했다. 언젠가 방송에서 그런 이야기를 본 적이 있다. 찬란히 빛나는 해가 언제 그리 뜨거웠던 적이 있었냐는 듯 멀리 사라지고 마는 그 하루가 우리네 인생과 흡사하다고. 그러나 해는 다시 뜨지만 인생은 그러지 않는다고. 그 방송을 볼 때는 그 말이 왜 무슨 뜻인지 잘 몰랐다. 근데 지금은 조금이나마 알 수 있다. 나도 노을을 보며 내 과거를 회상하고 슬픔에 젖을 때가 있으니까.


중학생 때 장래희망이 뭐냐는 말에 어떤 친구가 자기 꿈은 방송국 PD라고 했었다. 뭔가 그 모습이 되게 멋있어 보였다. 당차보이기도 하고. 그날부터 내 꿈도 PD가 되었다.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방송국에서 일을 하면서 많은 일들이 있었다. 세상이 내 것 같았던 날도, 내 편은 아무도 없는 것 같았던 날도 있었다. 쉴 틈 없이 지금까지 달려오고 나니 남는 게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건강도 나빠지고 성격도 안 좋아지고 주변 친구들도 없어지고 그렇다고 돈을 많이 버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목표만 바라보고 달려왔는데 막상 이룰 수 있는 것들은 다 이루고 나니 어디로 달려가야 할지 모르겠더라.


저 노을은 내일 또 다른 해로 떠서 찬란하게 빛나겠지만 나는 그렇게 될 수 있을까.




7.JPG #달

부다페스트에 도착하니 밤이 됐다. 켈렌폴드 역에서 내렸는데 주위에 아무것도 없고 너무 어두워서 좀 쫄아있었다. 날도 많이 춥기도 했다. 역으로 들어가서 교통권을 끊으려고 했는데 한 5-6명쯤? 젊은 이들 무리들이 티켓 부스 앞에서 소리를 치고 장난을 치고 있어서 더 쫄았다.

티켓을 사고 구글맵으로 숙소까지 가는 길을 검색하고 트램을 타러 찾아가는데 저 달이 우리를 보고 있었다. 달을 보니 조금은 안심이 됐다. 언제나 외롭고 힘들 때마다 저 달이 곁에 있었다는 사실이 생각이 났다.


김지수 님의 <여기는 달>을 들으며 숙소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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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다페스트의_밤

부다페스트는 빛을 참 잘 활용한 도시였다. 왜 사람들이 야경을 보러 이 도시에 오는지 트램 타고 오는 동안 알게 되었다. 관광 명소 하나하나 잘 보이게끔 조명을 엄청 설치해뒀더라. 계속 감탄을 했다. 현재의 조명을 비춰서 과거를 빛나게 한다는 것이 참 아름다웠다. 영화 <글루미 선데이>의 OST도 생각이 났다. 실제로 부다페스트에 와보니 이 도시와 정말 잘 어울리는 음악이었다. 잔잔하지만 애절한 그 노래와 같은 도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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