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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라데이션 Feb 16. 2020

소소한 취미로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까지

파란학기 [피티빵빵]


01 고딕체에 기본 디자인의 템플릿



"이거 도형 색깔 어떻게 바꾸는지 모르겠어"


내 주변에 국한된 것일 수도 있고, 어쩌면 편견일 수도 있지만 공대생들은 피피티를 만드는데 재능이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나는 주로 팀 프로젝트나 공모전에서 피피티 제작과 발표 부분을 맡았기에 자연스럽게 피피티 제작의 기회가 많았고, 그렇기에 단 한 번도 어려움을 겪었던 적이 없었다.


어느 날 카페에서 함께 과제를 하던 친구가 물어봤다. 피피티에 도형 색을 바꾸려고 하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했다. 모를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도와주고 그동안 모아둔 괜찮은 템플릿을 몇 개 보내주니 친구가 "템플릿 이쁜 건 진짜 많은데 이걸 어떻게 써야 할지 잘 모르겠어. 내가 손 대기만 하면 못생기게 바뀌는걸?"이라는 말을 했다.


사실 공대생들은 피피티를 만들어야 할 일이 생각보다 많다. 그러나, 디자인을 세세하게 고민한다거나 어떤 배치를 했을 때 가독성이 좋은지에 대한 고민을 할 기회는 많이 없다고 생각한다. 교수님이 발표하는 자료만 해도 10년 전부터 사용했을 것 같은 디자인에, 가독성이라고는 하나도 없고 그저 공부를 위한 용도 정도라고 생각하면 편하다. 우리가 발표를 해야 하는 경우에도, 교수님은 이쁜 피피티에는 신경을 쓰시지 않는다. 물론 잘 만들면 좋겠지만, 피피티를 잘 못 만든다고 해서 지적을 했던 교수님은 많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디자인을 전공한 사람은 아니지만, 포토샵이나 일러스트를 활용하거나 각 발표에 맞는 템플릿을 직접 만들어서 사용하는 것을 좋아하는 소소한 취미가 있었다.



02 우리 학교만의 학점 설계 프로그램



"파란학기에서 이런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 학교에는 '파란학기'라는 학점 설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한 학기가 시작되기 전, 1인 이상의 학생들이 모여 도전 과제의 목표를 설정하고 그 과제를 통해 어떤 것을 배울지에 대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낸다. 그리고 16주의 커리큘럼을 직접 구성하고, 이를 한 주씩 해나가는 과정을 경험할 수 있다.


나는 대학 졸업 전 한 번 정도는 파란학기에 참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마침 얼마 전 피피티 제작에 어려움을 겪는 공대생 친구와의 대화 덕분에 무엇을 하면 가장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고민을 쉽게 할 수 있었다. 그렇게 같은 과 동기들 중에서 나와 비슷한 관심사를 가지고 있고 어려움에 대해서 인지하고 있는 친구들을 모아서 파란학기에 지원하게 되었다. 아래는 지원서 중 지원 동기의 일부분이다.




모든 대학생들은 파워포인트를 활용할 상황이 무척 많습니다. 특히 저희는 그 필요성을 공대생들에게 더 가중치를 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희가 공대생이기도 하고, 인문대생들에 비해 공대생들이 피피티 제작 시 어려움을 많이 겪는 경우를 많기 봤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교내 팀 프로젝트부터 다양한 공모전, 캡스톤 프로젝트, 보고서 제작, 패널, 포트폴리오 등 발표에 활용될 뿐만 아니라 자신을 나타내는 상황, 그리고 다양한 보고서를 가독 성 있게 제작하는 곳에도 활용됩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지식과 인사이트를 이러한 툴에 반영하는 방법에 대해서 잘 알지 못합니다. 단순히 파워 포인트를 만드는 방법이나 어디서 어떤 정보를 가져와야 할 것인지에 대한 지식 또한 부족합니다. 어떤 목적에 맞는 파워포인트를 제작 시 어느 정도의 양이나 어떤 글을 어디에 배치해야 할지, 그리고 목차는 어떤 식으로 설 정해야 할지 등에 대한 내용적인 측면에 대해서도 알아보기가 쉽지 않은 것이 공대생들의 현실입니다. 교내에 다 양한 프로그램이 있기는 하나 참가할 시간이 없기도 하고, 참가하더라도 그 범위가 무척 기본적인 것이 대부분이라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또 다른 문제는 기존에 작성한 파워포인트 문서들(캡스톤 프로젝트 나 여러 전공 관련 공모전 등)에 대해서 접근하기가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해피캠퍼스와 같이 보고서를 위주로 올리는 웹사이트는 운영 중이나, 분석해 본 결과 학과별로 자세하게 정보를 얻기에는 무리가 있었습니다. 또한, 블로그에서 많은 템플릿들이 공유되고 있지만 한 번에 필요한 정보를 얻기에는 부족할뿐더러 공대생들이 원하는 피피티의 목적과도 일치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피피티를 활용해야만 하는 경우는 무척 많습니다.


기존에 존재하는 웹사이트 및 도서, 프로그램들과 차별화되면서 SNS를 통해 이를 확산할 수 있는 방안과, 우리들도 파워포인트 제작과 웹사이트 운영, 그리고 이를 사업 모델화 시키는 방법에 대해서 직접 운영해보고 배워보 기 위해 파란 학기를 신청하게 되었습니다. 최초 사용자층은 주로 아주대학교 공대생들을 타깃으로 할 것이고, 이 를 기반으로 오프라인 행사와 온라인 홍보를 통해 인지도를 확신시키는 경험을 하고자 합니다. 또한, 웹사이트 구 축과 웹디자인, 콘텐츠 제작과 배포+홍보+공유의 장을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전반적으로 운영이 우수하다면 전국 규모로 활용할 수 있도록 확산할 것이며, 크라우드 펀딩 등의 제도를 활용하여 우리의 플랫폼 활용 자금을 마련해보는 기회도 가져보고자 합니다. 단순 학과 수업에서 이론으로 배웠던 개발 과정과, 콘텐츠 유통 과정과 마케팅에 대해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잡을 기회를 꼭 가지고 싶습니다. 전문성이 없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우리 는 그러한 편견을 파란 하고, 도전하고자 합니다.




03 만들고, 나누고, 알리고



"우리 페이지를 더 알릴 방법이 없을까?"


우리의 프로젝트 목표는 '사용하기 쉬운 템플릿을 만들고, 이를 만드는 팁을 페이스북에 업로드하고 최종적으로는 웹사이트를 제작해서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하자!'였다. 그렇게 만들어진 우리의 팀명은 [피티 빵빵]이었다. 브랜드 컬러는 노란색과 민트색이었고, 피피티 제작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모든 대학생들이 막힘없이 피피티를 제작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피티 빵빵 페이스북 페이지 배경


프로젝트를 시작할 때 우리는 총 다섯 가지의 목표를 가지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처음부터 무언가를 기획하고 브랜딩화 시키고 운영해보고 결과를 도출했던 첫 번째 경험이 아니었나 싶다. 취미를 누군가의 니즈와 접목시킬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에 시작했던 파란 학기였지만, 나름 진지한 자세로 임했다. 일주일에 두 번 이상은 회의를 진행하고, 콘텐츠를 만드는 팀원은 처음으로 포토샵을 활용하여 카드 뉴스를 제작하기도 했고, 웹 상으로 우리의 페이지를 구축하고 디자인하는 경험도 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도, 나 또한 내 필요에 의해 만드는 피피티 템플릿이 아니라 누군가가 쉽게 사용할 수 있는 템플릿을 제작하는 과정이 무척 가치 있었다. 아래는 우리가 가지고 있었던 다섯 가지 목표였다.




1. 공대생들을 위한 콘텐츠 공유 웹사이트 제작

여기에는 두 가지 목표가 있습니다. 저희 팀이 콘텐츠팀과 개발팀으로 운영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는 콘텐츠 제작을 공부하고 경험한 정보를 함께 공유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웹사이트 제작 및 운영 경험을 해 보고 싶다는 데 있습니다. 학과 내에서 두 가지를 깊이 있게 공부하기에는 교과목의 한계가 있고, 외부에서 이러한 경험을 하기에도 사실 시간이 부족하다는 점이 있기 때문입니다. 학기 중에 우리가 타깃으로 하는 공대생들이 실제로 필요한 콘텐츠를 제공함으로써 효과를 극대화시키고자 하는 것도 목표입니다.


2. 공대생들이 제작 혹은 참가했던 정보들 공유의 장 마련

단순히 콘텐츠 제작만 하고 공유만 한다면, 차별성이나 경쟁력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사용자 유입을 하는 과정에서 그들이 제작한 콘텐츠들을 우리 웹사이트 상으로 공유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 이는 ‘쿠폰 제도’를 통해 꾸준히 사용자들을 활성화시키고자 하는 목표를 가지고 있습니다. 콘텐츠 하나를 올리게 되면 쿠폰 1개를 부여하는데, 이것은 다른 사용자가 업로드한 콘텐츠를 다운로드할 수 있도록 하는 용도로 사용하 할 것입니다. 이는 추후 쿠폰을 구매하거나, 추가 프리미엄 자료를 활용할 때 금액을 지불하게 하는 등의 용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3. SNS를 통한 웹사이트 홍보 사용자 구축 단계 경험

여러 프로젝트를 통해 설문조사를 실시한 적은 있으나, 서비스를 체험해보고 사용자들의 의견을 장기간 분석해 보는 경험은 없습니다. 앞으로의 수강 과목에서 그 부분에 대한 기회가 없다는 점이 무척 아쉬웠기 때문에, 우리는 20대 초반을 공략한 SNS를 활용하여 웹사이트 홍보 및 사용자 구축 단계를 경험해보고자 합니다. 더 나아가, 추후 사업 모델화가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을 때 소비자와 소통할 수 있는 장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4. 사업 모델화 및 적용

우리의 최종 목표는 사용자들이 마음껏 콘텐츠를 공유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을 만들고 난 다음, 프리미엄 서비스를 제공하여 이를 기반으로 수익 모델을 구성하는 것입니다. 4주 차가 지난 후 우리는 우리가 제작한 플랫폼의 규모에 따라 크라우드 펀딩에도 도전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마련한 자금을 기반으로 초기 사용자층을 구축해보고자 합니다.


5. 공대생도 콘텐츠 제작이 가능하다는 도전

이 프로젝트를 처음 진행한다고 했을 당시, 주변에서는 “굳이 그걸 공대생이 해야 하나?”라는 질문과 “그런 컨텐 그들은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지 않나?”라는 질문을 했습니다. 저희는 그러한 편견을 깨고, 실제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주제로 높은 퀄리티의 콘텐츠를 제작하기 위해 주중 스터디 시간을 투입할 것이며, 페이지 사용자들과 의 끊임없는 소통과 피드백을 통해 그러한 능력을 향상하고자 합니다.




프로젝트를 알리는 방법으로는 온라인 마케팅과 오프라인 이벤트가 있었다. 페이스북의 수익 구조에 대해서 잘 알지 못했지만 콘텐츠와 페이지를 홍보하면서 우리의 페이지를 구독하는 예비 사용자들은 어떤 특징을 가지고 있는지에 대해서도 고민할 수 있었고, 오프라인 이벤트를 진행하면서 우리의 프로젝트가 타인에게 어떤 부분에서 매력적으로 느껴질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알아볼 수 있었다.


두 차례의 오프라인 이벤트와 평균 주 1회의 콘텐츠 제작을 진행했고, 팔로워는 그 당시 약 6천 여명에 달할 정도로 성공적이었다. (지금은 약 9천 명 정도가 된다.) 가장 기억에 남았던 이벤트는 어느 정도의 팔로워가 생기고 난 다음, 여태 제작했던 템플릿과 소스들을 한꺼번에 공유했던 것이다. 유료 홍보를 얼마 하지 않았음에도 순 좋아요 수와 공감 수는 상상을 초월했고, 거의 3일 만에 팔로워가 3천 명 이상은 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제작했던 템플릿과 폰트, 픽토그램을 함께 나눠주었던 이벤트


좋은 취지로 시작한 프로젝트이기는 하나, 우리의 페이지를 필요로 하고 좋아해 주고 응원해주는 것은 무척 뿌듯한 경험이었다. 오프라인 이벤트 또한 즐겁게 참여할 수 있었다.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필요한 피피티 템플릿이 무엇인지 알아보기도 했고, 여태 제작한 콘텐츠 중 어떤 것이 가장 도움이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기도 했다.


가장 보람찼던 것은, 이 프로젝트를 하면서 함께 콘텐츠를 제작했던 동기는 사실 포토샵이나 피피티 제작에 완전히 문외한인 학생이었다. 하지만, 16주의 기간 동안 함께 콘텐츠를 만들어나가면서, 눈에 띄게 콘텐츠를 제작하는 실력이 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래의 포스터도 첫 번째는 내가 제작한 것이지만, 두 번째는 그 친구가 제작한 것이다. 지금도 가끔 그 친구는 피티 빵빵 프로젝트에 참가할 수 있어서 너무 좋았고, 본인이 만든 포스터나 피피티를 보여주며 "예전보다 많이 늘었지?"라며 자랑을 하기도 한다.


오프라인 이벤트 때 사용했던 포스터



04 전공자는 아니지만 의미 있는 나눔



"무료로 이런 나눔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피티 빵빵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비록 학기가 끝나고 웹사이트는 더 이상 운영하지 않고 있고, 페이스북 또한 예전만큼 활발하게 운영하고 있지는 않지만 나는 여전히 종종 시간이 날 때마다 피피티를 제작해서 페이스북과 개인 블로그에 무료로 업로드하고 있다.


나는 앞에서도 말했지만, 디자인을 전공한 학생이 아니다. 오히려 완전무결한 공대생에 가까운 감성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피피티를 잘 만들지 못하는 학생들이 피피티를 쉽게 만드는 방법에 대한 공감대 형성만큼은 자신 있었던 것 같다.


아직도 블로그를 통해 무료로 템플릿을 공유하고 있어서인지, 매일 템플릿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게 해 줘서 고맙다는 댓글을 보고 있다. 나의 취미였던 소소한 템플릿 제작이 누군가에게 소중한 발표 자료, 보고서 자료로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은 늘 나의 큰 자부심이다.


파란 학기 중 제작해서 무료로 나눔 했던 템플릿 일부





파란 학기를 하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그저 발표가 있을 때마다 나만을 위한 템플릿을 만들고 있었을 것이다. 나눔은 무척 즐거운 일이다. 대가를 바라지 않아 기대를 하는 것도 없고, 도움을 받은 사람들이 고맙다는 말을 할 때마다 옳은 일을 하는 것 같아 뿌듯하기도 하기 때문이다.


니즈가 있는 곳에는 서비스가 필요하고, 그 서비스가 사용자에게 도움이 된다면 그것은 지속적으로 사용할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나에게 피티 빵빵은, 그리고 피티 빵빵을 좋아해 준 사용자들에게는 아마 그러한 서비스가 바로 파란 학기에서 우리가 이뤄낸 쾌거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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