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여정 18일째, 퍼스에서의 3일째 여정이 시작되는 날이다. 오늘은 신이 만든 또 하나의 걸작 웨이브 락과 슬픈 전설이 전해 내려 오는 원시 동굴을 둘러볼 예정이다.
오늘 여정은 최종 목적지인 웨이브 락까지(336km) 약 4시간을 차로 이동해야 하는데, 여정 중 요크(York)와 코리진(Corrigin)이라는 소도시를 방문하게 된다. 장거리 여행이다 보니 이른 아침(7시)에 여정을 시작했다.
차를 타고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첫 번째 목적지인 요크에 도착했다. 요크는 서부 호주에서 첫 번째로 조성된 내륙 도시로 퍼스에서 약 97km 떨어져 있다.
요크의 입구에 위치한 타운홀
요크라는 도시의 이름은 1830년 9월 이 곳을 탐험하던 영국인 제이에스 클락슨(JS Clarkson)이 자신의 고향(영국의 요크)과 자연환경이 비슷하다는 이유로 요크로 명명했다고 전해진다.
19세기 호주 내륙에 최초로 건설된 도시인 요크의 주요 산업은 농축산업이었다. 이후 주변 지역에서 금광이 발견되면서 그곳으로 향하는 중간 기착지로 인파가 몰리게 되었고, 그 결과 식당, 호텔과 같은 서비스업이 발전하였다. 탄광업이 시들해지자 마을도 침체기에 접어들었는데 근래 들어서는 고풍스러운 옛 건축물과 다양한 축제로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있다.
요크 마을 입구에 진입하자 가장 먼저 시청 건물이 시선을 끌었다. 특히 건물 상단에 새겨진 ‘1911’이라는 숫자를 보는 순간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900년 초반 도시로 여행을 온 것 같았다. 시청에서 출발해 마을을 가로지르는데 낯익은 무언가를 발견하게 되었다. 그것은 바로 영국에서 보았던 빨간 공중전화 박스였다.
1921년 영국 우체국이 도입한 K1 (Kiosk No.1)은 콘크리트로 만들어졌고 이후 업그레이드되면서 재료를 철재로 바꿔 k6 모델까지 만들어졌다. 이 공중전화 박스는 영국은 물론 영국령이었던 호주와 뉴질랜드에 고유한 디자인으로 설치되었다. 호주의 영국령 당시 유물을 우연히 발견하게 되니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다.
요크에 설치되어 있는 빨간 전화박스
빨간 공중전화 박스를 둘러보고 마을 옆을 흐르는 강가로 나갔다. 한적한 강가에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을 밝혀준 성화가 머물렀던 성화대 기념 조형물이 위치하고 있었다. 회사 업무로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프로젝트에 몸을 담았던 터라 성화대 기념 조형물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의 성화 봉송 기념비
앞으로 먼 길(240km)을 가야 하기에 요크에서 짧은 관광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를 향해 출발했다.
얼마 동안 도로를 달리자 우리가 탄 차량이 농장 지대에 들어서자 도로 양 옆으로 끝없이 펼쳐진 목초지대로 진입했다. 한국에서는 바다에 가서 지평선을 보았는데, 호주에 오니 초원에서 지평선을 보게 될 줄이야... 지평선을 보고 있으니 2014년 남아공에서 차량을 이용해 종횡단 여행을 할 때 고속도로를 직진으로만 100km 넘게 달렸던 여정이 떠올랐다.
끝이 보이지 않는 초원 지대
한참을 달려(요크에서 133km 떨어진) 코리진(Corigin)이라는 마을에 도착했다. 코리진에 들린 이유는 이 곳에 조성된 개 공동묘지(Dog Cemetery)를 둘러보기 위함이었다.
1974년 패디 라이트(Paddy Wright)는 자신이 기르던 반려견 스트라이크(Strike)의 매장지를 물색하게 된다. 이때 코넬리(Connelly)라는 마을 주민이 패디 라이트에게 마을에서 5km 정도 떨어진 모래 공터를 추천했고, 그는 이 곳에 스트라이크를 매장하게 된다. 이후 동네 사람들 사이에 반려견의 묘지로 알려지면서 무덤 수가 200여 기에 달하게 된다.
반려견 공동묘지 입구에 위치한 개조각상
이후 반려견을 위한 공동묘지가 있다는 소식은 호주를 넘어 전 세계적에 알려지게 되면서 이곳은 웨이브 락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필수 관광 코스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묘지에 도착한 후, 자유 시간이 주어져 묘지를 한 바퀴 둘러보았다. 묘지 입구는 앉은 자세의 개 조각상이 놓여 있었고 조각상 뒤로 이 곳에 처음 묻힌 스트라이크의 묘지가 눈에 띄었다. 스트라이크의 묘지에 묵념으로 예를 표하고 다른 묘지를 살펴보았다. 각각의 묘지에는 세상을 떠난 반려견에 대한 메시지와 꽃 그리고 생전에 가지고 놀던 인형 등이 놓여 있었다. 반려견을 위하 묘지 크기는 사람들의 그것과 차이가 크지 않았다. 앞서 이야기했듯 호주의 광활한 토지가 있어 가능하겠지만 거기에 더해 반려견을 가족과 같이 아끼는 호주인들의 정서가 반영된 것 같았다.
반려견 공동묘지의 시작이 된 스트라이크 묘지 (사진 맨 오른쪽)
반려견 공동묘지에서 출발해서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웨이브 락으로 출발했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이동해서 웨이브 락이 위치한 하이든(Hyden)에 도착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우선 웨이브 락의 예고편 격인 하마 바위(Hippo Rock 또는 Hippos Yawn)를 보러 갔다. 숲길을 따라 들어가자 일행은 탄성을 질렀다. 입을 크게 벌린 하마 모양 바위가 우리 앞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11.6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하마 조각상(?)을 배경으로 기념사진을 촬영했다. 나는 우선 인파가 몰려 사진 촬영은 뒤로 미루고 하마 바위 주변을 살폈다.
하품하는 하마 바위
그러다 또 다른 ‘특별한 바위’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원숭이 한 마리가 웅크린 듯한 모양의 바위였다.(개인적으로 원숭이 바위라고 명명) 다른 사람들이 하마 바위에 몰려 있을 때 홀로 원숭이 바위 주변에서 시간을 보내다가 다시 하마 바위 주변으로 가서 사진 촬영을 했다.
원숭이 모양 바위
하마와 원숭이 바위 투어를 마치고 관광안내소 건물로 돌아와 점심 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치고 웨이브 학으로 출발하기 전, 안내소 내에 위치한 군인 미니어처 박물관(Miniature Soldier Museum)을 관람했다. 미니어처 박물관의 문을 열고 들어가자 10,000여 개의 소형 병정들이 역사적인 전쟁 상황(나폴레옹, 줄루, 태평양, 러시아 전쟁 그리고 세계 1,2차 대전)을 재현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걸작은 엘리자베스 2세의 대관식(1953년)을 재현한 미니어처였다. 당시 퍼레이드에 참여한 경찰, 군인, 일반인, 군악대, 시민들의 모습을 담아 총 6m에 걸쳐 세밀하게 묘사했는데, 이는 조선시대 왕들의 행차도를 떠올리게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미니어처 전시물에 별도의 가림막(유리나 아크릴) 없어 전시물의 훼손 및 도난 위험성이 커 보였다.
나폴레옹, 줄루, 태평양, 러시아 전쟁 그리고 세계 1,2차 대전의 주요 장면이 생동감 넘치게 전시되어 있다.
미니어처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일행과 함께 웨이브 락으로 이동했다.
관목들 사이를 지나 시야가 트이는 곳에 다다르자 신이 직접 빚은 듯한 아름다운 곡선의 ‘웨이브 락’이 모습을 드러냈다. 웨이브 락은 높이 15m, 길이 110m에 이르는 화강암 절벽으로 약 2억 7천만 년 전에 생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참고로 호주 원주민들은 웨이브 락을 호주 신화의 창조주인 무지개 뱀, 쿠나피피(Kunapipi)가 스쳐 지나간 흔적이라고 여겨 신성시하고 있다.
이번에도 관광객들이 한꺼번에 몰려서 우선 근처 산책로(Wave Rock Walk Circuit)를 돌아보고 와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기로 마음먹었다. 총 거리 3.6km에 원형 코스로 이뤄진 산책로는 웨이브 락과 이어진 화강암 지대였다. 안내판을 따라 길을 걷다 보니 다양한 형태의 화강암 바위들이 조각품처럼 트레킹 코스 주변에 놓여 있었다. 30분 만에 트레킹을 웨이브 락으로 돌아가니 예상한 대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형태의 바위들이 산책로 주변에 조각처럼 놓여져 있다.
유구한 시간동안 자연에 의해 그려진 명작 웨이브 락
이때부터 나 홀로 자연의 경이로움을 사진기에 담기 시작했다. 한참을 사진 촬영에 몰두하고 있는데, 한 쌍의 노부부가 다가와 사진 촬영을 부탁했다. 수 십년 만에 이 곳을 다시 찾았다는 노부부는 “자신들은 백발이 되고 주름이 깊어졌지만, 웨이브 락은 예전 모습 그대로다.”라고 말하며 웃음을 지었다. 두 분의 이야기를 듣고 있자니 동서양을 막론하고 인생의 무상함을 느끼는 건 공통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길어야 100년인 우리네 삶에서 그저 작은 일에 감사하고 행복하게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섬뜩한 전설이 깃든 고대 뮬카의 동굴
웨이브 락을 둘러보고 또 하나의 신비로운 공간으로 향했다. 그곳은 바로 뮬카(Mulka) 동굴로 호주 원주민들의 전설이 얽힌 장소다.
뮬카의 동굴 입구
아주 먼 옛날 한 원주민 여성이 결혼이 금지된 한 남자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사랑의 결실을 맺어 아기를 낳게 되는데, 그의 이름이 뮬카였다. 금지된 사랑이 저주로 뮬카는 눈이 가운데로 몰린 사시로 태어난다. 그의 신체는 거인에 가까울 정도로 장성했지만 눈의 장애 때문에 무기를 조준을 제대로 할 수 없어 당시 남성들의 본분인 사냥을 할 수가 없었다. 그 결과 부족 내에서 왕따를 당했고 이에 격분한 뮬카는 부족의 어린아이들을 죽여 인육을 먹었다.
뮬카의 어머니는 이런 아들의 악행을 막기 위해 그를 동굴에 가둬 사람들과 격리시켰다. 동굴에 갇힌 뮬카는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동굴의 벽에 자신의 손자국과 그림을 남긴다.
그러던 중 그는 어머니를 살해하고 남쪽으로 도주하게 된다. 뮬카의 폐륜적인 행동에 부족 대표는 추적대를 보내서 결국 하이든에서 남서쪽으로 156km 떨어진 덤블영(Dumbleyung)에서 뮬카를 찾아 처단한다. 이때 온갖 악행을 저지른 그의 사체를 개미들에게 던져서 법을 어긴 자들의 본보기로 삼게 했다. 일행이 방문한 뮬카 동굴은 앞서 이야기한 전설 중 뮬카가 격리되어 있던 동굴이라고 전해지는 곳이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동굴 안에 들어섰다. 입구 반대편에 뚫린 공간으로 햇살이 들어왔지만 동굴 안은 어두워서 뮬카의 흔적이 잘 보이지 않았다.
그때였다. 가이드가 손에 쥐고 있던 라이트를 켜자 동굴 천정과 벽면 여기저기에 뮬카의 손바닥 문양이 모습을 드러냈다. 붉은색, 분홍색, 주황색, 흰색이 어우러진 손자국은 너무 선명해서 얼마 전에 찍어 놓은 것처럼 보였다. (참고로 동굴을 탐색했던 학자들의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뮬카 동굴 안에는 총 452개의 손바닥 자국 및 그림이 남겨져 있고, 총 7가지 색깔이며, 손바닥 자국의 왼손과 오른손 비율은 3:2라고 한다.)
전설이지만 너무나 생생하게 남이있는 뮬카의 흔적
생생한 손자국 벽화를 보며 가이드가 들려준 전설을 떠올리니 마치 뮬카가 동굴 한 구석에서 우리를 노리고 있을 것 같은 싸늘한 기운이 느껴졌다. 흥미진진했던 뮬카 동굴 투어를 마치고 퍼스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퍼스로 돌아가는 길에 하이든 거리 조형물(Hyden Street Scape Art)에 잠깐 들렀다.
1970년에 만들어진 조형물은 부서진 농기구와 부품을 재활용해서 12명의 지역민이 협업을 통해 만들었는데 하이든의 역사를 한눈에 알아볼 수 있게 만들어 이 곳을 방문한 사람들이 돌아갈 때 꼭 들리는 명소가 되었다.
지역민이 부서진 농기구로 만든 조형물
웨이브 락 관광을 마치고 퍼스로 돌아가기 위해 버스에 올랐다. 쾌청하던 날씨는 두꺼운 구름이 드리워지더니 오래지 않아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빗 속을 뚫고 4시간 여를 달려 다시 퍼스로 돌아왔다. 빗줄기는 새벽까지 잦아들지 않고 창문을 두드렸다. 뮬카에게 희생당한 아이들이 한 맺힌 울음을 흘리는 것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