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_18

피나클에 깃든 슬픈 전설

by Sang Hyuk Choi

[호주 여행 17일 차] 17일째, 호주 야생동물들과 실제 만남, 샌드 보딩, 랍스터, 피나클

퍼스에서 2일 차 여정을 시작했다. 이날 목적지는 퍼스에서 191km 떨어진 ‘사막 위의 조각품 피나클(The Pinnacles)’이었다. 여정 사이사이에 케이벌스햄 동물원(Caversham Wildlife Park), 샌드 보딩 체험, 랍스터 양식장 관람을 하고 최종적으로 피나클에 도착하는 일정이다.

앞서 이야기한 다양한 일정을 소화하기 위해 아침 7시 30분에 집결지로 나갔다. 그곳에 아담스(Adams)라는 회사명이 래핑 된 대형 버스가 도착했고 일행은 버스에 올랐다. 장거리 여행을 위해 제작된 최신형 버스라 좌석이 넓어 승차감이 편했고, 좌석에 USB 충전기가 설치되어 있어 카메라와 휴대폰 사용이 많은 나에게는 최적의 차량이었다. 기분 좋게 하루를 시작하니 앞으로의 여정도 순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퍼스에서의 두번쨰 날 여정은 편안하게 시작했다.

첫 번째 목적지인 케이벌스햄 동물원에 도착했다. 퍼스의 화이트맨 공원(Whiteman Park)에 위치한 이 공원은 캥거루, 코알라, 주머니쥐, 왈라비, 태즈메이니아 이블, 웜뱃 등을 볼 수 있는데, 특히 동물들과 만나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는 곳으로 유명했다.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사료를 들고 왈라비와 캥거루 무리가 있는 케이지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왈라비들은 사료를 먹기 위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매일 사람들과 만나다 보니 능숙하게(?) 포즈를 취하는 모습이 귀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길들여진 것 같은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런 안쓰러움도 잠시 셀카를 찍기 위해 포즈를 취한 나에게 한 녀석이 다가와 볼에 입을 맞춘 순간, 입가에 웃음이 번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내게 다가와 볼에 입을 맞춘 왈라비

왈라비와 행복한 한 때를 보내고 가이드의 안내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생전 처음 보는 귀엽고, 못생기고, 뚱뚱한 녀석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녀석의 이름은 웜뱃(Wombat)으로 호주의 토속 동물 중 하나다.

방문객들은 한 명씩 웜뱃의 옆에 앉아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익살스러운 표정을 짓고 웜뱃과 기념사진을 찍고 건물 밖으로 나오는데 사육사가 네모난 모양의 뭔가를 주며 ‘초콜릿’이라고 전해주었다. 그가 건넨 ‘초콜릿’을 받아 들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의심스러운 눈으로 사육사를 바라보자 그는 그것이 ‘웜뱃의 변’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순간 일행은 웃음을 터뜨렸다. 웜뱃과 유쾌한 시간을 갖고 다음 장소로 이동했다. 참고로 웜뱃은 2cm 정도 크기의 변을 매일 80~120개 정도 배설하는데, 사각형으로 배변을 하는 이유는 잘 굴러가지 않는 변을 활용해서 영역 표시도 하고 이성을 유혹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호주의 특이한 동물 중 하나인 웜뱃과 함께
영역표시, 구애에 사용하는 웜뱃의 배설물, 잘 굴러가지 않게 사각형을 띄고 있다.

이번에는 코알라 한 마리가 작은 유칼립투스 나무에 매달려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코알라들은 사육장 안에서 졸고 있는 걸 봐서는 순번을 정해 한 마리씩 나와서 사진을 찍는 듯했다. 마지막으로 코알라와 사진 촬영을 마치고 샌드 보딩을 위해 버스에 올라 랜 슬린(Lancelin)으로 향했다.

코알라와 기념 사진 한방

퍼스에서 127km 떨어진 랜 슬린은 600여 명이 살고 있는 소도시로 샌드 보딩과 해양 스포츠를 즐기는 관광객들이 자주 찾는 곳이다. 버스로 한 시간 반 정도 달려 랜 슬린의 하얀 모래 언덕에 도착할 수 있었다. 도착 후, 일행은 두 개 그룹으로 나뉘어 첫 번째 그룹은 샌드 보딩을 즐기고 두 번째 그룹은 특수차량을 타고 모래사장 드라이브를 진행했다.

첫 번째 그룹에 속한 나는 샌드 보드를 지급받고 보딩 방법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남아공에서 이미 샌드 보딩을 경험했기 때문에 설명이 끝나자 거침없이 언덕에 올라 맨 먼저 보딩을 시작했다. 하얀 모래를 타고 빠른 속도로 언덕을 내려가자 일행들이 환호성과 박수로 반겨주었다.

수 차례 모래 언덕을 오르내리며 샌드 보딩을 즐기다 문득 주변을 둘러보았다. 새하얀 모래 언덕과 새파란 해변은 마치 하얀색 도화지에 파랑 물감을 뿌려놓은 듯했다.

보딩을 한참 즐기고 있는데 모래 언덕에 특수 차량이 모래사장 드라이브를 마치고 도착했다. 이번에는 우리 그룹이 특수 차량을 타고 드넓은 모래사장을 누비기 시작했다.

특수 제작한 차량은 장갑차를 연상하게 하는 묵직한 몸체와 커다란 바퀴가 인상적이었다. 처음 차량이 출발할 때는 왜 이런 육중한 차량이 필요한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런데 광활한 모래사장으로 진입하고 고속으로 모래 언덕을 넘나드는 순간, ‘이 차가 아니면 안 되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육중하 차체는 차량이 안정적으로 진행될 수 있게 도왔고 커다란 바퀴는 높은 모래 언덕도 거뜬히 거슬러 올랐다. 모래 언덕에서 고속으로 내려올 때는 롤러코스터를 타는 것 같이 스릴이 넘쳤다.

롤러 코스터를 타는 듯한 모래 사장 드라이브 전용 차량

랜 슬린에서의 흥미로운 샌드 보딩과 드라이빙을 마치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랍스터 양식장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랍스터 쉐크(Lobster Shack)로 향했다.

랍스터 샤크에 도착해서 식사 전 양식장 투어를 진행했다. 가장 먼저 홍보 영상을 관람했고 이어서 랍스터의 성장 정도에 따라 분류해 놓은 양식장을 차례대로 둘러보았다. 조그만 랍스터가 마지막 과정에서 커다란 랍스터로 성장하는 모습을 한 번에 볼 수 있는 흥미로운 투어였다.

랍스타를 들어 보여주는

투어를 마치고 식당에서 랍스터 요리를 먹었다. 랍스터 반 마리를 튀겨 프렌츠 프라이드와 함께 제공하는 요리였는데, 비싼 가격(AUD 43)에 비해 먹을 게 없었다. 그나마 다행인 건 여행 중 허기질 때를 대비해 준비해 놓은 육포와 과자가 있어 허기를 달랠 수 있었다.

뭔가 허전했던 랍스터 요리
여행 중 배고프면 화나는데 이날은 화났다.

뭔가 부족한 식사를 마치고 오늘 여정의 최종 목적지인 피나클(Pinnacles Desert) 사막이 위치한 남붕국립공원(Nambung National Park)으로 향했다. 공원에 도착해 사막 쪽으로 나아가자 신기한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노란 모래 위에 셀 수 없이 많은 석회암 기둥들이 서 있었는데 작은 건 1m가 채 되지 않았고 그중 가장 큰 건 3.5m에 이르고 생긴 형태도 각양각색이다.

사막에 솟아 있는 사암기둥들의 모양은 각양각색이다.

자연이 만든 걸작품인 피나클의 생성 이유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가설이 있는데, 그중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학설은 수십 만년 전 바다의 어패류 잔해가 쌓여 석회암이 생성되고 이후 암석이 지상으로 융기하여 오랜 시간 침식, 풍화 작용을 거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앞서 이야기한 과학적인 가설보다 피나클 사막에 대한 호주 원주민들의 전설이 보다 흥미로웠다. 전설의 내용은 아래와 같다.

아주 오래전, 호주 원주민들에게 이 곳은 출입이 금지된 신성한 장소였다. 이에 주술사는 피나클 사막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기심이 컸던 몇몇 원주민들은 주술사의 경고를 무시하고 피나클 사막에 진입하게 된다. 이들이 피나클 사막에 진입한 순간 그들은 돌기둥으로 변했다. 이런 사실을 모르는 원주민들은 끊임없이 ‘금지된 지역’으로 향하게 되고 그들이 돌기둥이 되어 결국 지금의 피나클 사막이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다.

원주민의 전설을 바탕으로 석회암 돌기둥들의 정체를 상상해 보면 더 재미있는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앞에서 이야기했듯 돌기둥은 1m에서 3.5m까지 크기가 다르고 그 형태도 다양하다. 크기로 치면 인간이 2m를 넘기 힘드니 돌기둥 중에는 인간이 아닌 난쟁이족, 거인 족도 포함이 되어 있을 것이다. 형태로 보면 길쭉한 인간 형태도 있지만 바다사자, 코끼리 심지어 이빨이 날카로운 악마의 형상도 있으니, 이 금단의 지역에 인간 외에도 동물과 전설 속 존재들이 들어왔다가 돌이 되어 버린 것이다.


화난 악마, 포효하는 바다 사자,

그렇게 다양한 형태의 돌기둥을 관찰하며 상상의 나래를 폈다. 특이한 돌기둥 앞에서는 사진도 찍고 이름도 붙여 주었다. 피나클 사막을 한참 거니는데 해가 지며 햇살이 약해지자 돌기둥의 색깔이 짙은 노란색으로 변했다. 하나의 공간에서 다양한 색감이 연출되는 신기한 상황이었다. 일몰을 마칠 때까지 피나클의 색감을 관찰하고 싶었으나 퍼스로 복귀할 시간이라 버스에 올랐다. 샌드 보딩, 피나클 사막 투어 등으로 힘들었는지 퍼스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 숙면을 취했다. 다음 날, 오늘보다 먼 장거리 여행이 예정되어 있어 숙소로 돌아와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피나클에서의 여정을 마무리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