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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Hyuk Choi Feb 01. 2021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_16

살인자들의 생생한 표정을 담은 데스마스크 관람


[호주 여행 15일 차] 살벌한 살인자들의 데스마스크, 멜버른 감옥 박물관

호주 여행을 시작한 지 보름이 되었다. 오늘은 호주 여정의 마지막 도시인 퍼스(Perth)로 향하는 날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밤 비행기(오후 10시)로 예약했다. 비행기 출발 전까지 숙소 주변 박물관을 섭렵하기 위해서였다. 첫 번째 목적지는 수많은 범죄자들이 형장의 이슬로 사라진 멜버른 감옥 박물관(Old Melbourne Gaol)이었다.

멜버른 감옥 박물관(1845년 1월 ~ 1924년 7월)은 호주의 임꺽정이라고 불리는 네드 켈리(Ned Kelly)와 악명 높은 영국의 연쇄살인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로 의심받는 프레드릭 베일리 디밍(Frederick Bailey Deeming)을 비롯해 총 135명의 사형이 집행된 곳이다. 그리고 이 박물관에는 ‘특별한 전시물’이 있는데, 사형수의 얼굴을 석고로 뜬 데스마스크(Death Mask)가 그것이다. 과연 살인자들의 데스마스크는 어떤 형태일지 궁금증을 가지고 멜버른 감옥 박물관에 들어섰다. 티켓(28 AUD)을 구입하고 박물관 입구로 들어서는데 이유 모를 한기가 느껴졌다.

감옥 내부에 사형수의 데스 마스크를 전시하여 들어설 때부터 공포감이 느껴진다.

박물관은 3개 층으로 이루어진 좌우 대칭의 건물이었다. 전시실은 예전 감방을 그대로 보존하여 사용하고 있었다. 감방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멜버른 감옥에 수감되었던 대표적인 범죄자의 데스마스크와 그의 범죄 기록이 전시되어 있었다.

3개 층으로 이루어진 멜버른 감옥 박물관

첫 번째 전시실의 문을 열고 들어가 범죄자의 데스마스크를 보는 순간, 숨이 멎는 듯했다. 마치 잠들어 있는 것 같은 생생한 표정과 석고상에 붙어 있는 털(석고로 얼굴을 뜨는 과정에서 옮겨 붙은 듯하다.)이 섬뜩함을 더했다. 사형수들의 데스마스크를 만든 이유는 범죄자의 두상을 분석하여 범죄자들의 표준 두상을 설정해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이었다고 한다.

두상으로 범죄자를 선별한다는 생각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았지만 이런 연구 목적마저도 변질되어, 네드 켈리와 같은 유명 범죄자의 경우에는 여러 개의 데스마스크가 제작되어 수집가의 소장품으로 판매되기도 했다. 1층 전시관 끝자락에는 이 박물관에서 가장 유명한 네드 켈리의 데스마스크와 그의 유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유품을 관람하는데 가이드가 다가와 네드 켈리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좌상) 네드 켈리의 데스마스크 (좌하) 네드 켈리 전신 사진 (우상) 켈리갱이 입었던 철갑옷 샘플 (우하) 네드 켈리의 권총

네드 켈리와 그의 가족은 경찰들과 사사건건 마찰을 일으킨다. 그러던 중 네드 켈리의 여동생 이경찰에게 강간을 당하게 되고 이에 격분한 그는 경찰을 폭행하게 된다. 그런데 경찰은 오히려 이 사건을 네드 켈리의 살인미수라는 누명을 씌운다. 억울한 상황에 놓인 네드와 그의 동생 그리고 친구들(총 4명)은 1879년 갱단을 조직해서 경찰에 맞설 계획을 세운다. 그리고 역사에 회자되는 철가면과 갑옷(무게 36kg)을 직접 제작해서 경찰들과 총격전을 벌이게 되고 그 결과 3명의 경찰을 사살하게 된다. 범행을 저지른 이들은 도피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은행 강도를 저지르게 되는데, 이 과정에서 그들은 은행에 보관된 농부들의 담보 채권을 불태워서 ‘가난한 자’들의 편에 서는 의적으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1880년 6월까지 도주를 이어가던 네드 일당은 글렌로완 여관에서 인질 70명을 잡고 경찰과 대치하기에 이른다. 치열한 총격전 끝에 다리에 총상을 입은 네드만 살아남고 나머지 갱단 멤버들은 현장에서 목숨을 잃는다. 그리고 법정에선 네드는 여러 차례 법정에서 마주했던 레드몬드 배리 (Redmond Barry) 판사와 조우하게 된다. 배리 판사는 판결문을 읽고 나서 "하나님이 당신의 영혼에 자비를 베푸시기를(May God have mercy on your soul)"이라고 말했고, 이에 네드는 "난 할 말이 좀 더 남았는데. 거기 가서 보지."라고 답했다고 한다.

섬뜩한 사실은 네드가 11월 11일에 멜버른 감옥에서 교수형을 당하고 12일 후, 배리 판사도 생을 마감한다. (1880년 11월 23일) 네드가 그를 저승 길동무로 데리고 간 건 아닐까?

네드 켈리가 교수형을 당하고 12일 후, 판결을 내린 레드몬드 베리 판사도 숨을 거둔다.

네드 켈리의 유품을 관람하고 전시장의 끝 쪽에 가보니 실제로 형을 집행했던 교수대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곳에서는 할아버지 가이드가 교수형 당시 상황을 생동감 있게 설명해 주고 있었다. 가이드의 설명에 따르면 교수형 집행은 주말에 이루어지는 경우가 많았는데,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몰렸다고 한다. 한 마디로 주말 나들이 코스로 ‘교수형 관람’이 유행했다고 하니 당시 시대 상황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예측할 수 있었다.

수 많은 죄수들이 교수형을 당했던 교수대에서 가이드가 당시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감옥 투어를 마치고 박물관 밖으로 나왔다. 어두 컴컴한 감옥에서 벗어나니 자유를 억압받다 풀려난 느낌이었다. 이후 칼튼 정원(Carlton Garden)의 거대한 거목 사이를 뚫고 10분쯤 걸어서 두 번째 목적지인 멜버른 박물관(Melbourne Museum)에 도착했다.

멜버른 박물관은 매년 100만 명 이상이 찾는 관광 명소로 자연사 박물관(공룡 화석, 동물 표본 등)과 호주 역사관(호주, 특히 멜버른 지역의 역사, 원주민 문화, 과학, 환경 등 다양한 주제를 전시)을 겸하고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16년 전 어학원 친구들과 함께 찾았던 추억이 떠올랐다. 멕시코 친구 로라, 베네수엘라 친구 알렉스, 일본 친구 토모꼬. 20대 초, 중반이던 우리는 박물관 관람을 마치고 학교 근처인 번두라 파크(Bundoora Park)로 이동해 BBQ 파티를 즐겼던 기억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참고로 호주의 공원에는 BBQ 시설이 갖춰져 있어서 식재료를 구입해 손쉽게 BBQ를 해 먹을 수 있다. 어학연수 시절 가난했던 우리는 10~20불씩 돈을 모아 BBQ 파티를 가졌었는데, 당시 필자는 거의 매주 BBQ 파티를 열어 학교 내에서 유명세를 떨쳤다.

잠시나마 옛 추억을 소환하고 나서 전시장 안을 살피기 시작했다. 가장 먼저 도착한 공룡 전시장은 박진감 넘쳤다. 마치 거대 공룡들이 행진을 하고 있는 것 같이 연출하였는데, 그중에서도 압권은 선두에 서서 2층에 기어오르는 마멘치 사우르스(Mamenchisaurus) 화석이었다. 이 화석은 1층과 2층에서 나누어 봐야만 전체를 볼 수 있을 정도로 거대했다.

2층으로 기어오르는듯한 마멘치 사우르스 화석
행진하듯 전시된 다양한 공룡 화석들

공룡들의 행진을 보고 호주에서 서식하는 동물들의 표본이 전시된 생태관에 들렀다. 계단 형태로 만들어진 전시대에 다양한 동물 표본이 자리하고 있었는데, 호주라는 대륙에 얼마나 다양한 동물이 살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호주 대륙에 서식하는 동물들을 모아 놓은 표본 층계

이후에 호주의 전설적인 경주마, 파랩(Phar Lap)의 박제품도 보고 박물관을 나섰다. 점심으로 박물관 주변에 위치한 한국관에서 짬뽕을 먹었다. 오랜만에 맛보는 얼큰한 국물이 여정의 피로를 날려주었다.

호주 여정의 힐링 음식이었던 짬뽕

그리고 추억이 깃든 또 하나의 장소를 찾아갔다. 유학 시절 약속 장소로 자주 찾았던 멜버른 센트럴(Melbourne Central)이 바로 그곳이었다. 멜버른 센트럴은 1888년 건립된 쿱스 샷 타워(Coop’s Shot Tower)가 내부에 위치한 쇼핑몰로 일본 자본이 투자해서 만들어졌다. 2001년 유학 시절에는 유일한 대형몰이어서 많은 사람들에게 이 곳은 ‘만남의 광장’으로 활용되었다.

쇼핑몰 내부는 2001년 당시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명물인 대형 시계도 그대로였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17년 전 멜버른 센트럴에 와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마치 옛 친구들이 나를 만나기 위해 어디선가 나타날 것 같았다. 감회에 젖어 멜버른 센트럴을 돌아보았다.

멜번 센트롤의 돔구조 천장
2001년 '만남의 광장'이었던 대형 시계 조형물

비행기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 멜버른 마켓을 다시 찾았다. 야시장이 열리지 않을 때에는 매장이 빽빽하게 들어서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고 있었다. 마켓에서 가족과 친구들에게 줄 기념품을 추가로 구입하고 공항으로 향했다. 참고로 마켓의 기념품 가격은 쇼핑센터의 반값 정도다.  

방문 첫날 야시장이었던 멜번 마켓은 다시 시장 형태로 운영되고 있었다.

밤 10시 호주 여행의 마지막 여행지인 퍼스행 비행기에 올랐다. 창 밖을 보며 언젠가 다시 멜버른을 찾아오겠다는 다짐을 했다. 다음에는 가족들과 함께 와야지...


“So long Melbour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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