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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Hyuk Choi Dec 22. 2020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_15

퍼핑 빌리 증기 기관차 투어와 필립 아일랜드 펭귄 퍼레이드 감상

[호주 여행 14일 차] 시간을 거슬러 과거를 여행하다

호주 여행 14일째, 오늘은 증기 기관차로 멜버른 주변을 둘러보는 ‘퍼핑 빌리(Puffing Billy)’와 세계에서 가장 작은 펭귄의 행진을 관찰하는 ‘필립 아일랜드 투어(Phillip Island)’를 진행하는 날이다. (두 가지 주요 일정 중간에 사사프라스와 단데농 마운튼을 거칠 예정이다.)

아침 9시에 투어 차량에 올라 일행들과 인사를 나누고 퍼핑 빌리의 출발점인 벨그레이브 역(Belgrave Station)으로 향했다.

퍼핑 빌리 노선도 (출처, 퍼핑 빌리 홈페이지)

역에 도착해 티켓을 구입하고 증기 기관차에 올랐다. 퍼핑 빌리의 좌석은 지금까지 타본 보통 열차와는 다른 형태였다. 기차 내부에 좌석이 있는 게 아니라 창가에 걸터앉는 형태였는데, 이는 열차 운행 중 창 밖 풍경을 잘 볼 수 있게 설계한 것이었다.

퍼핑 빌리 열차의 앞모습
창밖에 걸터 앉는 좌석

퍼핑 빌리는 단데농 마운튼(Mount Dandenong)의 골드 러시가 한창이던 1900년 광무의 수송을 목적으로 운행을 시작했고 1954년 문을 닫았다. 그리고 8년 후인 1962년 수송이 아닌 관광을 목적으로 다시 오픈하여 오늘날에 이르게 되었다. 퍼핑 빌리 투어는 벨그레이브 역에서 출발해 종착역인 젬 브룩 역(Gembrook Station) 중간에 정차역이 4군데 있다. 우리는 필립 아일랜드로 떠나기 전 몇 군데의 관광지를 들릴 예정이라 첫 정차역인 멘지스 크리크 역(Menzies Creek Station)에서 내리기로 했다.

열차가 출발하기 직전 퍼핑 빌리 직원들은 1900년대 초반의 복장으로 승객들의 표를 검사하고 사진 촬영도 함께 하며 분위기를 돋워 주었다. 한참 직원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증기 기관차의 우렁찬 기적 소리가 울리고 증기가 사방에서 뿜어져 나왔다. 마치 엄청난 사운드의 콘서트장에서 안개 효과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관광객들은 너나없이 환호했다.

증기를 내뿜고 있는 출발 직전의 퍼핑 빌리

기차는 고음의 기적 소리를 내며 숲 속 철로로 달려 나갔다. 어린 시절 배웠던 노래 가사처럼 ‘칙칙폭폭’ 소리를 내는 모습이 신기했고, 잊을 만하면 울려 퍼지는 기적 소리는 탑승객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퍼핑 빌리가 지나갈 때 철로 주변에 사는 주민들은 기차 소음에 싫은 내색을 보이기는커녕 손을 흔들고 인사를 하는 등 투어의 일원인 것처럼 관광객들을 반겨 주었다. 숲 속의 맑은 공기와 시원한 바람을 만끽하고 목적지인 멘지스 크리크 역에 도착했다. 30분가량의 짧은 여정이 아쉬웠지만 다음 투어를 위해 직원분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고 역에서 나왔다.

기차길 주변 주민들은 관광객들을 기분 좋게 맞이해 주었다.
숲속을 누비는 퍼핑 빌리
일행이 내린 첫 번째 종착역인 멘지스 크리크역
우리에게 작별 인사를 건낸 퍼핑 빌리의 승무원
퍼핑 빌리를 유명 캐릭터인 토마스와 친구들로 캐릭터화한 투어도 선보이고 있다.

동화 속 마을 사사프라스(Sassafras)와 쥐라기 공원 단데농 마운튼(Mount Dandenong)

퍼핑빌리 투어를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동화 마을 사사프라스(Sassafras)로 향했다. 1893년에 설립된 ‘사사프라스’는 주변에 많은 녹나무(사사프라스)에서 지명이 유래됐다. 이 마을은 아기자기한 부티크 상점이 많아서 멜버른을 찾은 관광객들에게 당일치기 여행지로 유명한 곳이다.

투어 차량을 타고 마을 입구에 들어서자 동화 속에 나올듯한 건물들이 눈에 들어왔다. 한 시간 가량 자유 시간이 있어서 서둘러 차에서 내려 주변 가게를 돌아보았다.

제일 먼저 찾은 곳은 추리 소설가 아가사 크리스티(Agatha Christie)의 소설 속 주인공인 미스 마플(Miss Marple)을 콘셉트로 지어진 찻집(Miss Marple’s Tea room)이었다. 마치 동화 속 건물처럼 아담한 사이즈에 고풍스러운 건축 디자인은 아기자기한 마을 분위기와 잘 어울렸다. 가게 내부는 1900년대 초반의 소품들과 소설 속 캐릭터들을 소개한 액자로 꾸며져 있었다. 마치 아가사 크리스티 소설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것 같았다. 이 가게는 다양한 차와 먹거리로 유명한데 자리를 잡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 기다려야 해서 내부를 둘러보는 것으로 만족했다.(투어 여행이 아쉬운 건 일정 때문에 꼭 경험하고 싶은 일들을 지나쳐야 할 때가 있다는 건데, 바로 그런 상황이었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 소 주인공의 집을 컨셉으로 만들어진 찻집 'Miss Marple’s Tea room'.
Miss Marple’s Tea room

사사프라스에는 이외에도 재미있는 상점이 많았다. 다양한 캐릭터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복화술 인형 가게, 동서양의 신기한 물품들을 판매하는 앤틱 가게, 형형색색의 사탕을 판매하는 사탕 가게, 전 세계 다기를 볼 수 있는 다기 가게 등 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매장들이 마을 안에 자리하고 있었다. 다기 가계에서 와이프에게 선물할 푸우와 피글렛 양념통을 구입하고 사사프라스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무리했다.

복화술용 인형 가게
차와 관련된 다양한 제품을 판매하는 상점 'tea leaves'
캐릭터를 활용해 만든 후추, 소금 용기. 가운데 푸우와 피글렛 용기를 기념품으로 구입했다.
다양한 디자인의 차주전자 세트
사사프라스에서 사먹은 수제 캔디. 우리나로 치면 울릉도엿 정도 될듯...

사사프라스에서 다음 목적지인 단데농 마운튼(Mount Dandenong)으로 향했다. 단데농은 멜버른 도심에서 약 30km 떨어진 곳으로 1837년 목재 산업이 발전하면서 만들어졌다. 목재 산업의 규모가 축소된 근래 들어서는 원시 우림 속에서 트레킹을 즐기는 산책로로 관광객들에게 인기를 끌고 있다. 점심 때라 공원 입구의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이 날 점심 메뉴 역시 블랙 앵거스 햄버거였다. 호주에 머무는 동안 블랙 앵거스 버거를 최대한 많이 먹어보고 그중에서 제일 맛있는 식당을 선정하려는 뜬금없는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1일 1 앵거스 버거 시식 중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5억 년 전부터 대형 고사리 군락이 존재했다는 산책길에 들어섰다. 수십 미터에 달하는 유칼립투스 나무들 사이로 들어가자 성인 키의 두 배 정도 되는 대형 고사리들이 우뚝 서 있었다. 지금까지 나물로 먹었던 작고 연약한(?) 고사리만 보다가 거대한 고사리를 보니 뭔가 생경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면서도 먼 옛날 이 곳을 호령했을 공룡들에게는 대형 고사리가 어울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진 왼쪽 하단에 보이는 나무가 고사리류 나무다.
쥬라기 공원에 있을법한 고사리 나무

트레킹을 마치고 야생 조류에게 모이를 주는 곳이 있어 들어가 보니 반가운 친구들이 눈에 띄었다. 바로 피츠로이 아일랜드에서 마주쳤던 황볏 앵무새(Sulphur crested white cockatoo) 무리였다. 반가운 마음에 황볏 앵무새에게 다가갔는데 순간 후회하고 말았다. 앵무새 녀석들은 관광객들의 머리, 어깨, 등을 딛고 서서 모이를 약탈(?)하고 있었고, 나 역시 모이통을 들고 다가서자마자 ‘털리기’ 시작했다. 여러 마리의 황볏 앵무새들이 내 주위를 둘러싸고 순식간에 모이통을 비웠다. 흡사 유럽 여행 중 집시 소매치기단에게 걸려서 지갑은 물론 영혼까지 털리는 느낌이랄까…

거친 앵무새들과의 만남을 뒤로하고 요정 펭귄의 행진을 보기 위해 필립 아일랜드로 출발했다.

황볏 앵무새 무리를 배경으로 셀카 한장
사진에서 웃고 있지만 실상은 이랬다.

[단데농 마운튼의 관광 명소 / William Ricketts Sanctuary ]

윌리엄 리켓 조각 공원 픙경

원주민의 삶을 조각으로 승화하여 숲 속의 일부처럼 전시해 놓은 윌리엄 리켓 조각 공원(William Ricketts Sanctuary)은 우리가 산책을 즐겼던 곳에서 차로 10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리켓 조각 공원은 그가 1993년 95세를 일기로 삶을 마감하기 직전까지 작품 활동을 이어간 곳으로 1937년부터 무려 56년 동안 조성되었다.

그의 작품은 앞서 이야기 한대로 호주 원주민들을 숲의 정령으로 묘사했고, 작품을 바위, 거목에 자연스럽게 부착하여 마치 애초부터 하나인 것처럼 제작하였다. 다양한 조각품들은 생동감 넘치는 표정으로 살아 있는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리켓 조각 공원에 가고 싶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조각들이 일본 만화 ‘베르세르크’(미우라 켄타로)의 캐릭터들과 너무 닮았기 때문이다.


오랜 기다림 끝에 요정 펭귄을 만나다.

필립 아일랜드는 멜버른의 남동쪽에 위치한 작은 섬으로 멜버른 도심에서 차로 3시간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섬이지만 육지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차를 타고 진입이 가능하다. 이 섬이 유명한 이유는 매일 저녁 가족을 위해 사냥을 마친 페어리 펭귄(앞서 이야기한 쇠푸른 펭귄)들이 둥지로 돌아오는 ‘펭귄 퍼레이드’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행은 단데농 마운튼에서 2시간 정도 차를 몰아 필립 아일랜드에 도착했다. 단데농 마운튼에서 앵무새들에게 시달려서인지 차에 타자마자 곯아 떨다. 흡사 내시경 시술 전 포로포폴을 맞고 정신을 잃은 것 같았다. 순간 흠칫하고 잠에서 깼는데, 마치 공간 이동을 한 것처럼 ‘펭귄의 섬’에 도착해 있었다. 물론 시간은 어김없이 흘러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필립 아일랜드에 진입한 직후 이름 모를 언덕에서 찍은 사진

펭귄 퍼레이드를 보러 가기 전, 풍경이 아름다운 언덕에 차를 세우고 사진을 촬영했다. 한참 사진을 찍고 있는데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져 돌아보니 필립 아일랜드에 서식하는 케이프 바렌 거위(Cape Barren Goose)가 다가오고 있었다. 커다란 체구에 뒤뚱뒤뜅 걷는 모습이 익살스러웠다. 1800년대 유럽인들에게 뉴질랜드와 호주 남부지역에서 발견된 케이프 바렌 거위는 바닷물을 바로 마실 수 있는 특징을 지니고 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을 꺼려한다고 한다. 풀이 주식이라 바다에 나가 물고기를 잡을 일이 없어 다행인듯하다. (내 생각에 헤엄치며 물고기 잡고 멀리 가서 물먹기가 귀찮아서 지금의 모습으로 진화한 듯)

 

다시 차에 올라 티켓 부스로 향하는데 거친 파도를 가르며 서핑을 즐기는 사람이 눈에 띄었다. 호주에 오기 전 이 시간 즈음에는 야근이거나 혹은 퇴근길 만원 지하철 속에 있었을 나였기에, 자유롭게 파도를 타는 그의 모습이 마냥 부러워 보였다.

이 분 요즘도 파도를 타고 계실까?

티켓 부스에 도착해서 입장권을 구입했다. 입장권은 3가지 등급으로 분류가 되어있는데, 먼 거리에서 펭귄을 바라보는 제네럴 뷰잉(General Viewing/가격 AUD 25.7),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할 수 있는 펭귄 플러스(Penguin Plus/가격 AUD 50), 펭귄과 눈을 마주칠 수 있게 지하 벙커에서 관찰하는 언더그라운드 뷰잉(Underground Viewing/가격 AUD 65)이 있었다.

언더그라운드 뷰윙의 구조도

펭귄들의 행진을 보다 가까운 거리에서 관찰하고 싶어 펭귄 플러스(AUD 50)를 구입하려는데, 가이드가 극구 말리며 ‘저렴한 가격’에 좋은 위치에서 펭귄을 관찰할 수 있는 노하우를 알려줬다. 그의 ‘노하우’는 이렇다. 제네럴 뷰잉 티켓을 사서 해가 저물 때까지 기다린다. 그리고 해가 지기 시작하면(펭귄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제네럴 뷰잉과 펭귄 플러스로 나뉘는 분기점으로 간다. 이후 펭귄이 해변을 따라 퍼레이드를 시작하면 분기점에을 지키던 직원들이 자리를 비운다. 그때 펭귄 플러스 쪽으로 가서 펭귄들의 귀가(?)를 지켜보면 된다.

가이드의 말에 따라 제네럴 뷰잉 좌석에서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내다 해가 지기 시작할 때 분기점으로 나아갔다. 가이드의 말처럼 담당 직원이 자리를 비워서 좋은 위치를 잡을 수 있었다.

그리고 약속 장소에서 연인을 기다리듯 설레는 마음으로 ‘요정 펭귄’을 기다렸다.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갑자기 수풀이 들썩였다. 관람객들은 펭귄에 수풀을 비집고 나오는 줄 알고 일제히 시선을 돌렸는데, 기대와 다르게 왈라비 한 마리가 튀어나왔다. 사람들은 왈라비의 갑작스러운 출현에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웃음이 채 가시기도 전에 요정 펭귄들이 해변을 통해 퍼레이드를 시작했다. 30~35cm 크기의 앙증맞은 녀석들이 뒤뚱거리며 해변을 가득 채운 모습은 ‘세상에서 가장 귀여운 행진’이었다.

가족이 보고 싶은지 빠르게 내달려 들어오는 녀석,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녀석, 넘어진 친구를 부축해 주는 동료애가 남다른 녀석 등 수많은 펭귄들은 각자의 개성을 뽐내듯이 퍼레이드를 펼쳤다. 마치 패션쇼에서 모델들이 각자의 개성을 뽐내며 런웨이를 걷는 듯한 모습이었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동물 보호 차원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어 요정 펭귄의 모습을 사진기에 담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런 아름다운 풍경을 후대에도 계속 보여주기 위해 취해야 하는 최소한의 행동이기에 상황에 대해 이해할 수 있었다.

동물원에서 찍은 요정 팽귄 사진

펭귄들이 모두 귀가(?)할 때까지 지켜보다가 기념품 샵에 들러 캐릭터 상품을 사서 멜버른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새로운 목적지인 퍼스(Perth)로 떠나야 하기에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필립 아일랜드에서 구입한 기념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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