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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Hyuk Choi Aug 12. 2020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_14

12사도와의 만남

[호주 여행 13일 차]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달리다.                                                                                             

호주 여정 13일째, 오늘은 아름다운 해안 도로로 유명한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를 여행하는 날이다. 16년 전, 유학 시절 빠듯한 경제 상황으로 가보지 못했던 곳, 그래서 언젠가 꼭 가보겠다고 다짐했던 곳이기에 출발 직전 감회가 남달랐다.

아침 7시에 출발하는 투어 참여를 위해 집결지인 차이나 타운 입구에 들어섰다. 16년 전, 약속 장소로 자주 들렀던 곳이라 주변 건물들이 낯익었다.  거리를 거닐자 옛 추억들이 떠올랐다. 추억을 곱씹으며 제시간에 집결지에 도착할 수 있었다.

투어 출발지는 차이나 타운이었다. 입구에 들어서자 16년 전, 추억이 새록새록 살아났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는 동쪽 토르퀘이(Torquay)에서 시작해서 서쪽 앨런 스포드(Allansford)까지 총 243Km의 길이로 오스트레일리아 남동부 해안가를 따라 이어져 있다. 그리고 해변 도로 중간에는 Bells Beach, Loch Ard Gorge, The Grotto, London Arch(런던 브릿지라고도 불림), The Twelve Apostles(12 사도) 등 절경이 즐비하여 호주 멜버른을 찾은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 중 하나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루트

멜버른에서 오늘의 최종 목적지인 12 사도(Apostles)까지 약 3시간 거리인 228km 떨어져 있어 이른 아침(7 시)부터 투어를 시작했다. 투어 차량은 오전 10시쯤 그레이트 오션 로드 아치(Great Ocean Road Memorial Arch)에 도착했다. 이 장소에 도착하자 가이드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의 건설 이유에 대해 설명해 주었다.

1차 세계 대전(1914~1918)에 참전했던 호주 병사 3,000여 명은 귀국 후 마땅히 할 일이 없었다. 이를 지켜본 호주 정부는 이들의 사회 적응을 돕기 위해 아이디어를 내는데, 그것이 바로 참전 군인들의 노동력을 활용해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조성하는 것이었다. 이에 참전 병사들은 1919년부터 1922년까지 약 4년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해변 도로’를 건설하게 된다.

가이드의 설명을 들은 후, 일행은 공사가 시작되었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 아치 앞에서 기념 촬영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로 향했다.

관광객들이 기념 촬영을 하는 그레이트 오션 로드 입구

그레이트 오션 로드로 진입해 창 밖 풍경을 감상하던 중, 우리가 탄 차량은 케네트 리버(Kennett River)라는 곳에 도착했다. 가이드는 일행을 차에서 내리게 하고 새 모이를 나누어 주었다. 그리고 입구에는 ‘Kennett River Koala Walk’라는 간판이 쓰인 길을 가리키며 걸어가 보라고 말했다. 가이드의 안내대로 길을 따라 걸었다. 간판의 내용을 유추해서 ‘이 길을 따라가면 코알라를 보게 되겠구나.’라고 생각하던 찰나 갑자기 형형색색의 앵무새 무리들이 우리 쪽으로 날아와 일행의 몸에 앉았다. 순식간에 벌어진 앵무새의 습격(?)에 다들 놀랐지만 얼굴에는 웃음이 가득했다. 앵무새들은 이런 모습이 익숙했는지 도망가지도 않고 사람들의 머리, 어깨, 팔 위에 올라 먹이를 닦달했다. 그중에서도 내게 달라붙은 앵무새(King Parrot) 두 마리는 내 머리끄덩이를 잡기도 하고 부리로 쪼기도 하여 주위 사람들의 웃음을 자아냈다.

손에 있는 앵무새는 먹이가 떨어지자 심통이난 표정이다.

앵무새들에게 먹이를 나눠주고(빼앗겼다는 표현이 맞을 듯하다.)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니 유칼립투스 나무에 매달려 자고 있는 코알라가 눈에 띄었다. 세상 근심 잊고 곤한 잠에 빠져 있는 모습이 귀여웠다. 동물 친구들과의 만남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아폴로 베이(Apollo Bay)로 향했다. 30여분 후, 우리는 아폴로 베이에 도착할 수 있었다. 아폴로 베이라는 지명은 1845년 라우릿(Loutit) 선장이 폭풍을 피해 정박했을 때, 자신의 함선 '아폴로호'에서 착안해 이 지역을 '아폴로 베이'라고 명명했다. 아폴로 베이에서는 점심 식사를 할 수 있도록 한 시간의 자유시간이 주어졌다. 서둘러 식사를 마치고 해변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눈 앞에 보이는 조지(George)라는 식당으로 직행했다. 그리고 피시 앤 칩스를 주문해서 먹었다. 별 기대 없이 주문했는데 맛이 있어 기분이 좋아졌다.

아폴로 베이 '조지'라는 식당에서 먹은 피시앤칩스

식사를 서둘러 마치고 해변으로 나아갔다. 도중에 거대한 닻(Anchor)이 놓여 있었는데, 이 닻은 스페큐런트(Speculant)라는 배의 것이었다. 1911년 2월 11일, 스페큐런트는 와남불(Warrnambool, 아폴로 베이에서 160km 떨어진 항구 도시)에서 목재를 싣고 뉴질랜드로 항해하던 도중 아폴로 베이 주변에서 좌초된다. 이후 1970년 해변에 닻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를 지금의 위치에 옮겨 전시하게 되었다.

스페큐런트호의 닻이 전시된 아폴로 베이 공원

스페큐런트는 이 지역에 등록된 범선 중 최대 크기였고 뉴질랜드와의 교역을 상징하는 배였기 때문에 역사적으로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거대한 닻을 지나쳐 해변으로 나갔다. 넓게 펼쳐진 백사장이 인상적인 해변이었다. 아폴로 베이는 6월~7월 사이 혹등고래(13~16m 크기에 무게가 30톤에 달하는 대형 고래)가 출몰하는 곳으로 운이 좋으면 녀석들의 점프하는 모습(Breaching)을 목격할 수 있다. 고래의 점프하는 모습을 기대하며 한참 동안 바다를 바라봤지만 고래는 나타나지 않았다.

아폴로 베이 전경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이 날 여정의 주인공인 ‘12 사도’(The Twelve Apostles)를 만나기 위해 다시 차에 올랐다. 그렇게 한 시간 반 정도 후에 일행은 12 사도가 위치한 포트 캠프벨 국립공원(Port Campbell National Park)에 도착할 수 있었다.


12 사도에 얽힌 이야기들

12 사도는 사암 절벽이 침식되어 생성된 50m 정도 크기의 바위다. 애초에 이 바위들은 아기 돼지(piglet)이라고 불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언제부터인가 ‘12 사도’라고 불리기 시작했는데, 누가, 언제부터 왜 그렇게 불렀는지는 불분명하다.

또 하나 재미있는 사실은 ‘12 사도’라는 이름과 다르게 8개의 바위만 존재하고 있다.(2005년 7월, 바위 중 하나가 무너져 내려서 9개에서 8개가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 현재 남아있는 8개도 무너져 내릴 것이다. 다만 침식이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어 먼 훗날에는 절벽에서 떨어져 나온 새로운 ‘12 사도’가 출현할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물론 수 천, 수 만년 후의 일이니 우리가 볼 수는 없겠지만 말이다.

12사도를 전망대에서 찍은 사진. 파도에 무너져 내린 바위 모습이 눈에 띈다.

전망대(12 Apostles Lookouts)로 나가 16년간 고대하던 ‘12 사도’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거친 파도에 맞서 우뚝 솟아 있는 12 사도의 모습은 온갖 시련을 무릅쓰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그의 제자들을 떠올리게 했다. 12 사도의 모습에 매료되어 넋을 잃고 바라보았다.

12 사도의 웅장한 자태를 한동한 감상하고 다음 목적지를 찾아가기 위해 차에 올랐다. 약 5분 정도 이동하니 로크 아드 협곡(Loch Ard Gorge)이 나왔다. 이 곳은 난파선 로크 아드(Loch Ard)호에서 살아남은 두 명의 생존자에 대한 이야기로 유명한 곳이다.

두명의 생존자가 파도에 휩쓸려 도착한 로크 아드 협곡
톰 피어스와 에바 카마이클의 이야기가 적힌 안내판

1878년 6월 1일 이른 아침, Loch Ard 호는 12 사도 주변에 위치한 무톤 버드 섬(Mutton Bird Island)의 암초에 좌초되어 침몰하게 된다. 이때 총 54명의 승선자들(승객 37명, 승무원 17명) 중 단 두 명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중 한 명은 수습 승무원인 18살의 톰 피어스(Tom Pearce) 나머지 한 명은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에바 카마이클(Eva Carmichael)이었다. (에바의 아버지, 어머니, 세 명의 자매, 두 명의 형제 총 7명은 목숨을 잃었다.) 당시 톰은 에바의 이야기는 호주를 넘어 전 세계적으로 알려졌고 많은 이들이 운명을 함께 한 두 사람이 결혼하기를 바랐다. (다수의 사람들이 전보를 보내 결혼을 독려했다고 한다.) 그렇지만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던 톰과 의사 아버지 슬하에서 부유하게 자란 에바는 삶을 함께 하기에는 너무 큰 ‘다름’을 지니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각자의 삶을 살아가게 된다. 두 사람의 이루어지지 못한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듣고 로크 아드 협곡의 계단을 따라 내려갔다. 협곡 아래는 톰과 에바가 파도에 휩쓸려 도착한 해변과 그들이 휴식을 취했던 동굴이 있었다. 동굴 앞에서 톰과 에바의 명복을 빌고 주변 트레킹 코스를 둘러보았다. 근처에는 바위의 생김새에서 이름을 딴 면도기 바위(Razorback), 아치섬(Island Archway)이 멋진 외양을 자랑하고 있었다. 주변 산책을 마치고 다음 목적지인 런던 브리지(London Bridge)로 향했다.


전 호주에 중계된 땡땡이 사건

런던 브리지는 12 사도와 더불어 대자연이 만들어 놓은 또 하나의 명작이다. 런던 브리지를 부르는 또 하나의 이름이 있는데, 바로 런던 아치(London Arch)다. 왜냐하면 두 개의 아치 형태로 런던 브리지를 연상하게 했던 모양새에서 아치 한 개가 붕괴되면서 다리 형태가 아닌 아치 모양으로 변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때의 붕괴 사고 현장에서 들통난 세기의 ‘땡땡이’가 있었으니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중간에 끊긴 부분이 1990년 붕괴 전까지는 육지와 이어져 있었다.
런던 브리지 붕괴 과정

1990년 1월 15일, 켈리 해리슨(Kelli Harrison)과 데이비드 달링턴(David Darrington)은 12 사도를 둘러보고 이어서 런던 브리지를 찾았다. 이때만 해도 아치가 붕괴되기 전이라 차량으로 런던 브리지를 건널 수 있었다고 한다. 차를 몰아’ 런던 브리지의 끝자락으로 향하던 두 사람은 뭔가 무너져 내리는 굉음을 듣게 된다. 차를 세우고 뒤를 돌아본 그들은 방금 전까지 자리하고 있던 런던 브리지의 일부가 바닷속으로 사라진 것을 알게 된다. 한 마디로 방금 전까지 육지였던 곳이 순식간에 섬이 되어 버린 것이다. ‘섬’에 갇힌 두 사람은 헬기의 도움으로 탈출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갑작스러운 고립 사고에 호주 방송사는 헬기를 띄워 당시 상황을 생중계를 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생하는데, 그것은 바로 이 두 사람은 원래 멜버른에서 열리는 콘퍼런스 참석 중에 있어야 할 시간에 런던 브리지에서 구조된 것이다. 한 마디로 콘퍼런스에 참석하지 않고 땡땡이를 쳤는데, 이게 전국에 생중계가 된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방학 중 진행되던 자율학습(말이 자율 학습이지 강제 학습이었지만)을 빼먹고 극장에 갔다가 대학생이던 형과 마주쳐 땡땡이가 들통났던 나의 옛 추억까지 떠올리게 했다.

런던 브리지의 슬픈 이야기(?)를 가이드에게 듣고 차에 올라 멜버른으로 돌아왔다. 하루라는 짧은 일정이었지만 오랜 시간 마음에 담아 두고 있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를 직접 달리고 살펴볼 수 있는 의미 있는 하루였다. 숙소로 복귀하여 여정 중에 구입한 빌통(남아공 육포)에 와인을 마시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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