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Sang Hyuk Choi Jul 20. 2020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_12

새로운 여정을 향해 , 시드니를 떠나 멜버른으로

호주 여행 11일째, 시드니에서 다음 여행지인 멜버른으로 떠나는 날이라 그런지 설레는 마음에 아침 일찍 잠에서 깼다. 비행기 출발(오후 1시 50분)까지 여유가 있어 숙소에서 쉬다가 공항으로 출발하려 했다. 그렇게 시드니에서의 강행군에 쉼표를 찍으려는 순간, 마음 한편에서 시드니에서의 마지막 추억을 남겨야 한다는 작은 외침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렇게 잠깐 고민하다 쉬는 것보다 밖으로 나가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로 계획을 바꿨다.

숙소 창 밖을 바라보며 '특별한 추억'을 만들기로 결심했다.

구글 지도를 열고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곳에 가기로 마음먹었다.(여행지에서 계획을 짜서 움직이는 성격이 아니다.) 지도 앱이 열리자 맥커리 부인의 의자(Mrs. Macquarie’s Chair)라는 흥미로운 지명이 눈에 들어왔다. 숙소에서 도보로 30분 거리(왕복 1시간)여서 부담도 없고 어떤 곳인지 확인하고 싶은 호기심에 목적지로 정했다.

아침 여정을 마치면 바로 공항으로 출발하기 위해 짐을 미리 싸놓고 7시 30분쯤 길을 나섰다. 다양한 여행 경험 중 계획 없이 길을 걷다가 다양한 볼거리와 마주하게 되는 경우가 많았기에 아침 여정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내심 기대가 됐다. 숙소 바로 옆에 위치한 피츠로이 공원(Fitzroy Gardens)을 거쳐 맥커리 부인의 의자를 찾아 나섰다. 늘 그렇듯 여행지의 골목을 거니는 건 색다른 재미를 선사한다. 이 날도 우연히 한 상점 앞을 지나치는데 낯익은 녀석들을 발견했다. 그것은 바로 2014년 남아공 여행에서 구입했던 미어캣 조각이었다. 내 방 장식장에도 전시되어 있는 미어캣 조각을 호주 시드니의 한 골목에서 우연히 목격하게 되니, 마치 오랜 친구를 해외여행 중에 우연히 만난 것 같았다. 녀석들과 잠깐 인사를 나누고 다시 맥커리 부인을 만나러 발걸음을 옮겼다.

남아공의 미어캣 조각을 시드니 어느 상점에서 목격헀다.

한참을 걷다 보니 내리막 길 끝에 바다가 보였다. 그리고 목적지 방향으로 나아가자 특이하게 생긴 가판 형태의 음식점이 보였다.

해리스 카페 디 휠(Harry’s Café de Wheel)이라는 미트 파이 식당인데, 크리스 헴스워스(토르), 케빈 코스트너, 브룩 쉴즈 등 세계적인 스타들이 직접 찾아온 유명 식당이었다. 1938년에 문을 연 해리스 카페는 이름에 쓰인 ‘휠(Wheel, 바퀴)’에서도 알 수 있듯 예전에는 포장마차 형태였다.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은 시의회의 조례에 따라 포장마차는 하루에 12인치(약 30cm)씩 이동해야만 했고, 그 결과 매년 그 위치가 바뀌었다고 한다.

해리스 카페의 대표 메뉴는 미트 파이 위에 완두콩을 갈아서 올리고 특제 소스를 더하는 타이거 파이(Tiger Pie)인데, 식당을 여는 시간이 아니어서 직접 맛을 볼 수는 없었다.

해리스 카페 디 휠의 전체 모습
세계적인 스타들도 이 곳을 방문헀다.

맥커리 부인의 의자를 찾기 위해 길을 걷다 보니 웨일스 갤러리(Art Gallery of New South Wales) 앞을 지나치게 되었다. 마음 같아서는 개관까지 기다렸다가 관람을 하고 싶었지만 빠듯한 시간 때문에 자리를 뜰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갤러리 정문 앞에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헨리 무어(Henry Moore)의 작품 ‘기댄 인물’(Reclining Figure: Angles, 1980)과 노천 조각들을 감상하고 여정을 이어갔다.

헨리 무어 '기댄 인물'

구글 지도의 안내에 따라 왕립 식물원(Royal Botanic Garden)에 진입해 ‘맥커리 부인의 의자’를 찾았다. 목적지에 다다른 순간 이마를 탁 치고 말았다. 정말로 ‘맥커리 부인의 특별한 의자’가 위치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 의자는 일반 의자가 아닌 자연석(사암)을 깎아 의자 형태로 만들었는데, 뉴 사우스 웨일스의 주지사(1810~1821)였던 라츨란 맥커리(Lachlan Macquarie)가 항구에 들어오는 배를 관찰하는 부인을 위해 선물한 것이라고 했다.(의자의 위쪽 부분에는 의자의 위치 정보 등이 새겨져 있다.) 실제로 맥커리 부인의 의자는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최적의 위치에 자리하고 있었다.

항구에 위치한 암석을 파서 만든 맥커리 부인의 의자

200여 년 전, 주지사 맥커리와 그의 부인이 이 곳에 나란히 앉아 시드니 항구를 바라보는 모습을 상상하니 마치 그들의 온기가 의자에 남아 있는 것 같았다.

시드니 항의 멋진 풍경을 충분히 카메라에 담고 다음 여정인 시드니로 떠나기 위해 숙소에 들러 짐을 챙기고 공항으로 향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다채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던 시드니에서의 여정은 그렇게 마무리됐다.

'맥커리 부인의 의자'에서 바라본 오페라 하우스와 하버 브리지


16년 만에 찾은 제2의 고향 멜버른에서의 불타는 밤

공항에 도착해서 점심 식사를 하고 멜버른행 비행기(오후 1시 50분)에 올랐다. 1시간 30분 정도 비행을 마치고 2001년 어학연수를 했던 멜버른에 도착할 수 있었다. 멜버른 공항에서 시내까지 가는 스카이 버스(Sky Bus)가 있어 왕복 티켓(AUD 36)을 구입해서 이용했다. 숙소인 시티 템포(City Tempo)에 도착하니 오후 5시를 넘기고 있었다. 마침 멜버른에 옛 직장 후배가 워킹 홀리데이로 머물고 있어 저녁 식사를 함께 하기로 했다. 이때 후배가 좋은 정보를 제공하는데 바로 ‘멜버른 야시장’(Melbourne Winter Night Market)에 대한 거였다.

‘멜버른 야시장’은 퀸 빅토리아 마켓(Queen Victoria Market)에서 매년 6월 5일부터 8월 28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5시부터 10시까지 열리는 행사다. 일주일에 단 한번, 그것도 수요일에 열리는데 필자는 운 좋게도 ‘수요일’에 멜버른에 도착한 것이다.

멜버른 야시장 입구

4일 후에는 다음 여행지인 퍼스(Perth)로 가야 하기에 만약 하루 늦게 멜버른에 도착을 했다면 야시장을 볼 수 없는 상황이었다. 거기다 퀸 빅토리아 마켓은 숙소와 가까워 도보로 이동이 가능했다. 여행 중 행운의 여신 티케(Tyche)는 항상 내 편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회사를 마친 후배와 7시에 퀸 빅토리아 마켓 입구에서 만나 야시장을 즐기기 시작했다. 야시장은 수많은 방문객들로 불야성을 이루고 있었다. 거대한 공간에서는 다양한 프로그램이 동시 다발적으로 진행되고 있었는데, 우선 다양한 먹거리를 파는 가게들이 눈에 띄었다. 이태리 음식, 아시아 음식, BBQ 등 다양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우리는 그중에서 통돼지 BBQ를 사서 맛보았는데 우리나라 장터에 파는 통돼지 구이와 비슷했다.

한국 야시장을 떠올리게 했던 통돼지 구이
야시장에는 다양한 먹거리가 넘쳐났다.

마켓 안에서는 음악 공연, 마술 쇼 등이 끊임없이 열렸다. 그중 눈길을 끄는 이벤트는 침묵 디스코(Silent Disco)라는 프로그램이었는데, 헤드셋을 착용한 한 무리의 방문객들이 인솔자가 틀어주는 음악과 안내에 따라 야시장 안을 누비며 춤추고 함성을 지르는 등 행사장 분위기를 흥겹게 만들었다.(헤드셋을 낀 사람들만 음악을 듣고 소통이 가능하다.)

침묵 디스코 프로그램

 야시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후배와 저녁 식사를 위해 근처 한식당 ‘만족’에 갔다. 후배가 추천한 ‘만족’은 족발 전문점이었다. 한국이 아닌 외국에서 족발의 참맛을 느낄 수 있을지 반신반의했지만 타국에서 고생하는 후배가 원하는 메뉴라 군말 없이 가장 비싼 세트 메뉴(AUD 60)와 소주(AUD 13)를 주문했다. 그리고 오래지 않아 음식이 나왔는데 비주얼은 한국의 전통 족발 식당과 견주어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였다. 중요한 건 맛, 상추에 족발을 넣고 새우젓과 쌈장 그리고 마늘과 고추를 넣어 입으로 가져갔다.  

정말 맛있게 먹은 한식당 '만족'의 족발

“캬~이거 진짜 맛있는데.” 후배와 난 누가 먼저랄 것 없이 맛에 대한 감탄사를 연발했다. 맛있는 음식과 좋은 사람 거기에 술까지 곁들이니 더할 나위 없이 행복했다. 후배와 옛 추억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 한 노부부가 우리 옆 자리에 앉았다. 그들은 한식이 익숙하지 않은 듯 메뉴 선정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그래서 식당의 메뉴에 대해 설명해 드리고, 외국인이 먹기 무난한 계란말이와 잡채를 추천해 드렸다. 족발은 우리가 주문해 놓은 걸 맛볼 수 있게 몇 점 나누어 드렸다. 뉴질랜드에서 휴가를 오셨다는 노부부는 우리의 친절에 감사를 표하며, 뉴질랜드에 놀러 오면 연락하라며 명함을 건네주었다.

후배와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다음 날 일정을 위해 숙소로 돌아왔다. 이른 아침 맥커리 부인의 의자를 찾아 떠났던 여정은 멜버른의 족발 맛집에서 마무리되었다. 한 가지 안타까운 소식은 얼마 전, ‘만족’이 폐업했다는 소식이다.

시드니에서의 마지막이자 멜버른에서의 첫날이었던 여정은 이렇게 마무리되고 있었다.


이전 11화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_11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