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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ang Hyuk Choi Jul 24. 2020

당신이 호주에 꼭 가야만 하는 이유_13

멜버른의 대표적인 박물관을 둘러 보다.

[호주 여행 12일차] 이민의 나라 호주의 역사를 배우다

호주 여행 12일째, 멜버른에서의 첫 아침을 맞이했다. 호텔 창문을 통해 바라본 멜버른의 모습에서 왠지 모를 친근감이 느껴졌다. 아마도 16년 전, 5개월 동안 어학연수를 받았던 곳이라 나름의 정이 느껴졌기 때문이리라.차 한잔을 마시며 한동안 감상에 젖어 있다가 멜버른에서의 여행 계획을 짰다. 우선 유학 시절 돈이 없어 가지 못했던 그레이트 오션 로드(Great Ocean Road) 투어와 필립섬(Phillip Island) 팽귄 투어는 꼭 가기로 마음 먹었다. 그래서 멜버른에서의 첫 날은 주변의 박물관을 둘러보고 남는 시간에 투어 예약을 진행하기로 했다.

  

여느 때와 같이 구글맵을 열어 숙소 주변 박물관 정보를 찾아 보았다. 마침 가까운 곳(도보로 17분 소요)에 호주 이민 박물관(Immigrant Museum)이 있었다. 호주의 역사가 이민의 역사와 쾌를 같이 하고 있기에 호주를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꼭 들러야 하는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민자 박물관을 향해 가고 있는데, 거대한 벽화(Wall Painting)가 발걸음을 멈추게 만들었다. 그라피티 작가 스머그(smug)에 의해 거대한 건물벽에 그려진 작품은 노년 부부(작가의 실제 조부모라고 한다.)의 쓸쓸한 모습을 묘사했는데, 섬세한 묘사가 너무 사실적이어서 실제 노부부가 나를 바라보고 있는 듯한 착각이 들게 했다.

섬세한 묘사가 인상적이었던 스머그의 그라피티 작품

인상적인 거리 미술을 감상하고 근처에 위치한 이민 박물관에 도착했다. 옛 세관 건물을 개조해 만든 이민 박물관은 플린더스 스트리트 (Flinders Street)에 위치하고 있다. 이 건물은 1835년 멜버른의 창립자 중 한 명인 존 파스코 파크너(John Pascoe Fawkner)에 의해 건축 된 도시의 첫 번째 건물 중 하나다.

1998년 문을 연 이민 박물관은 호주의 이민 역사에 대해 소개하고 있는데, 전시관 입구에 쓰여진 “호주는 1788년 이후 약 9백만명 이상이 이민을 왔다. 그리고 셀 수 없는 사람들이 이민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라는 인상적인 문구로 시작된다. 이 문구를 통해 알 수 있는 사실은 호주 인구(2017년 기준)가 2,170만명 임을 감안할 때 인구의 절반이 이민을 통해 정착했음을 알 수 있다. 한 마디로 ‘이민 역사’를 빼면 호주의 역사를 논할 수 없는 것이다. 그만큼 이 박물관은 호주 역사의 중요한 부분에 대해 다루고 있는 것이다.

호주 국민의 반이 이민을 통해 정착했다. 그만큼 호주의 역사는 이민자들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전시관은 1800년 대 이민 초기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시대별 사회상을 유물을 통해 전시, 설명하고 있었다. 초기 유물 중 눈에 띄는 건 지팡이로 위장한 크리스티(Christie) 탐정의 칼이었다. 그렇다면 당시 탐정들은 왜 칼(무기)을 소지했을까? 1910년대 영국에서 이주해 온 이민자들 중 상당수가 범죄 경력이 있는 거친 사람들이었다. (1788년 788명의 영국 죄수가 호주에 정착했다.) 그렇다 보니 이민 후에도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이 많았고, 그 결과 아이러니하게도 범죄자의 현상금을 노리는 탐정도 늘어나게 된다. 탐정들은 범죄자들을 체포하기 위해 총, 칼 등으로 무장했고, 여기에 더해 위장, 변장을 통해 범죄자를 검거했다.

지팡이로 위장한 크리스티 탐정의 칼, 당시 험악했던 시대상을 유추할 수 있다.

비슷한 시기의 전시물 중에 백호 주의(White Australia policy, WAP: 1901년부터 1973년까지 호주정부가 일관되게 유지했던 유색인 이민 제한 정책)에 대한 광고물은 1900년대 초반 인종 차별의 심각함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전시물 중에는 1910년에 발표된 ‘White Australia’(백인의 호주)라는 노래를 홍보하는 광고물이 있었는데 가사 내용이 “호주는 백인들을 위한 빛나는 땅이며 백인들의 무력(총)으로 지켜야하는 고귀한 땅이다. 앵글로 색슨족이 지배하는 영광스러운 나라 호주여 영원하라.”였다. 노골적인 백인 우월 주의와 인종차별 주의 노래가 110년 전에 아무렇지도 않게 불려졌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호주의 구성원들은 치열한 대화와 타협을 통해 인종 차별주의를 극복했으니 이 또한 놀라운 사실이었다. (물론 아직까지 유색인종에 대한 혐오 범죄가 일어나는 게 사실이다.)

백인 우월 주의를 한 눈에 알아볼 수 있는 노래 홍보물

이민 박물관에서 순탄하지만은 않았던 호주의 이민 역사에 대해 살펴보고 근처(도보로 16분 소요)에 위치한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으로 향했다.

미술관으로 가는 길에 멜버른의 명소이자 유학 시절 만남의 장소로 자주 찾았던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Flinders Street Station)을 지나쳤다. 마침 외부 공사를 진행하고 있어 옛 모습을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16년 전, 누군가를 기다리던 젊은 시절 나의 모습이 떠올라 입가에 가벼운 미소가 머금어졌다. 그 때 저 곳에서 만났던 외국 친구들은 다 잘 지내고 있겠지...

유학 시절 '만남의 광장'이었던 플린더스 스트리트 역


헨리 무어와의 두 번째 조우

시드니에서는 미술관 투어를 진행하지 못했기에 멜버른에서는 꼭 미술관에 가겠다고 마음 먹었고 이를 바로 실행에 옮겼다. 바로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National Gallery of Victoria)을 찾은 것이다.

세계 각지를 여행하면서 각 지역의 박물관과 미술관은 두루 섭렵해 오던 터라 미술관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마치 어린 학생이 소풍을 떠나는 것처럼 흥겹고 가벼웠다.

NGV로 불리는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은 1861 년에 설립된 호주에서 가장 크고 오래 된 그리고 방문객이 가장 많은 전시관이다. 이는 NGV가 1850년대 멜버른 주변 지역의 골드 러쉬로 인해 재정이 풍요롭던 시기에 만들어져 전시관 규모는 물론 소장품의 퀄리티까지 최고 수준으로 완비할 수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빅토리아 국립 미술관

NGV는 총 4층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1층(Ground Level)은 기획전시실(방문 당시에는 반 고흐전이 열리고 있었다.)과 세계에서 가장 큰 스테인드 글라스 천정으로 만들어진 그레이트 홀(Great Hall)과 실외 조각 전시장이 자리하고 있다. 2층과 3층은 중국, 일본, 이집트 외 다른 나라의 미술품 그리고 13세기부터 현대에 이르는 유럽의 미술 작품이 전시되고 있으며, 4층 특별 기획 전시실로 꾸며져 있다. 1층의 기획 전시실을 제외하고는 입장료가 무료다.

지도 출처 : NGV 공식 홈페이지 (ngv.vic.gov.au)

이날은 그간 채우지 못한 인문학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NGV에서 충분한 시간을 보내기로 마음 먹었다. 전시장을 돌아다니며 작품을 감상했다. 그러던 중 나의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명화를 만나게 된다. 그것은 바로 베르나르도 카발리노(Bernardo Cavallino, 1616-1656)의 ‘처녀 성모마리아’(The Virgin Annunciate)였다. 이렇게 한 미술 작품의 힘에 이끌려 움직이지 못하게 된 건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아들을 집어 삼키는 사티로스’를 접했을 때 이후 오랜만이었다.

프라도 미술관에서 고야의 작품을 보았을 때 얼음이 되었다.
베르나르도 카발리노(Bernardo Cavallino, 1616-1656)의 ‘처녀 성모마리아’(The Virgin Annunciate)

‘처녀 성모 마리아’는 마치 얼굴 부분에 스포트라이트 조명을 비춘 것 같은 표현이 인상적이었고 거기에 더해 애잔하면서도 복잡 미묘해 보이는 표정은 동정인 마리아가 예수 그리스도를 잉태한 순간의 감정을 그대로 옮겨 놓은 것 같았다. 그 중에서도 특히 도드라졌던 부분은 코였다. 빨갛게 달아오른 코끝은 ‘코끝이 찡하다’는 표현을 완벽하게 그림으로 재현해 놓은 듯 했다. 작은 것 하나 놓치지 않는 디테일이 주는 감동은 역시 대단했다.

한참 동안 마리아의 표정을 응시하다가 다른 작품을 감상하기 위해 전시관을 나왔다. 이어서 유럽의 명화를 감상하던 중, 파블로 피카소의 작품 ‘울고 있는 여자(Weeping Woman, 1937)’가 눈에 들어왔다. 이 그림은 피카소의 작품이라는 것 만으로도 관심의 대상이지만 더불어 역사적으로 유명한 사건을 겪으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자리잡게 된다.

도난 사고가 일어났던 피카소의 '울고 있는 여자'

1986년, ‘호주 문화 테러리스트’라고 자신을 밝힌 누군가(범인이 잡히지 않았다.)가 예술가에 대한 정부 지원이 미흡하다는 이유로 ‘울고 있는 여자’를 훔쳤고, 이 도난의 책임을 정부에게 돌렸다. 그리고 그는 호주의 젊은 예술가들을 위한 지원을 요청한다. 문화 테러리스트가 지원을 요청한지 2 주 후, 피카소의 ‘울고 있는 여자’는 철도 역사의 사물함에서 손상되지 않은 채 발견되어 NGV로 돌아오게 된다. 문화 테러리스트가 누구인지, 어떤 과정을 통해 도난 사건이 벌어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철도 역사의 사물함에 놓이게 되었는지는 그림 속의 여인 ‘울고 있는 여자’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가이드로부터 흥미진진한 역사 속 이야기를 듣고 세계 최대의 스테인드 글라스로 천정이 장식된 그레이트 홀로 향했다. 그레이트 홀 바닥에는 천정의 스테인드 글라스를 누워서 감상할 수 있게 원형의 쇼파가 여러 개 준비되어 있었다. 그 중에 하나를 차지하고 스테인드 글라스를 감상했다. 그러다 스르르 잠 들었다.

꿀같은 휴식을 취했던 쇼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미술관을 찾은 유치원생들의 왁자지껄한 소리에 잠에서 깼다. 그리고 귀여운 아이들을 따라 그레이트 홀과 연결되어 있는 미술관의 조각 공원(Grollo Equiset Gardens)으로 나아갔다.


조각 공원에도 반가운 두 개의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그 중 첫 번째 작품은 프랑스 여행에서 만났던 로댕의 작품이었다. 소설가 발자크를 추모하기 위해 만든 이 조각은 귀엽게 생긴 발자크의 외모와 달리 험상 굳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는 그의 작품에서 느껴지는 발자크에 대한 이미지를 묘사한 것이라고 한다. 아이러니 하게도 이 작품은 1891년 원형인 석고 재질로 대중에 공개되었는데, 비평에 부딪혀 철거된 후 로댕의 집에 놓였다고 한다. 이후 로댕이 사망하고 22년이 지난 후에야 청동 주조물로 만들어져 멜버른을 비롯한 10여개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로댕이 만든 발자크 전신상

두 번째 작품은 바로 시드니에서 잠깐 조우했던 핸리 무어의 작품이었다. ‘기대어 앉은 여인(Draped Reclining Woman)이라는 제목의 조각품은 헨리 무어가 1950년 이후 연작으로 만든 작품으로 시드니에서 보았던 ‘기댄 인물’(Reclining Figure: Angles, 1980)의 초창기 버전이라 할 수 있다.

한참 헨리 무어의 작품을 감상하고 있는데, 조각 공원에 함께 들어왔던 유치원생 중 한 명이 조각상에 오르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말리지도 못했다. 그런데 올라간 모습이 너무 귀여워 차마 내려오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마치 조각상이 엄마 인 것처럼 무릎 위에 앉고 목을 안고 노는 모습이 정겨워 보였다.

헨리 무어의 작품에 걸터 앉은 어린 아이

조각 공원 관람을 마치고 미술관에서 나와 바로 옆에 위치한 야라강(Yarra River)의 산책로를 걸었다. 유학 시절 주말마다 거닐었던 야라강변을 오랜 시간 후에 다시 걷게 되니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건 산책로 끝자락에 위치한 크라운 카지노(Crown Casino)에서 먹었던 ‘피쉬앤칩스’에 관한 추억이다.

돈 없고 배고팠던 유학생 시절 ‘외식’은 남의 나라에나 있는 단어였다. 그런데 어느 날, 아는 동생에게서 좋은 정보를 얻게 된다. 그것은 바로 크라운 카지노에서 피시앤칩스를 단돈 2달러(AUD 2, 약 1,600원)에 판다는 거였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카지노에 들렀는데, 실제로 양질의 피시앤칩스를 단돈 2달러에 사먹을 수 있었다. (카지노 측에서 특가로 피시앤칩스를 제공한 것은 보다 많은 관광객들을 유치하기 위한 마케팅 목적이었다.) 어찌됐건 값싼 피시앤칩스는 가난한 유학생에게 더할 나위 없는 ‘외식’ 메뉴가 된 것이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오기 직전까지 매주 주말 2달러를 챙겨 크라운 카지노에 갔던 기억이 떠올랐다.

여담이지만 크라운 카지노에는 피시앤칩스를 위해 찾아오는 유학생 보다 갬블링을 하기 위해 찾는 친구들이 더 많았다. 그들 대부분은 유학비를 탕진하고 조기 귀국했던 기억이 난다.

야라강 주변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숙소로 돌아와 앱을 통해 그레이트 오션 로드와 필립 아일랜드 투어를 예약했다. 그리고 본격적인 멜버른 여행을 위해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야라강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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