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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소보로 Nov 18. 2022

골반은 사원, 허리는 히말라야

22.11.18(금)

처음으로 5분 동안 파드마 아사나(연꽃자세)를 취했다. 결 가부좌라고도 하는데 흔히 부처님이 앉아있는 자세로 표현된다. 언뜻 보면 쉬운 자세 같지만 5분 동안 흐트러지지 않고 호흡을 유지하는 게 쉽지 않았다. 조금만 방심해도 허리가 흐트러지고, 턱이 들려버린다. 자세에 신경을 쓰다 보니 다른 생각을 할 틈이 없다. 그래서 그런 건가? 명상에 이만한 자세가 없다고 한다.


"턱은 당기고 허리는 밀어 올리고, 골반은 사원이고, 허리는 히말라야라고 생각하세요. 쓸데없이 돌아다닐 필요 없어요. 파드마 짜고 앉으면 거기가 네팔입니다."


제주 이주 초기, 가끔씩 고향 친구 녀석들이 전화해서는 부러움 섞인 한탄을 하곤 했다.

"야, 제주 사니까 좋냐? 난 어제도 야근하고 술 퍼마시고, 힘들어 죽겠는데, 넌 뭐하냐? 맨날 바다 가고 귤 따먹고 그렇게 사는 거?"

'응 그러고 살어.'라고 하고 싶었지만, 단 한 번도 그런 순간에 전화 온 적이 없다. 어딘가 말썽인 집을 수리하는 중이거나, 코를 찌르는 딱새우 쓰레기를 치우는 중이거나, 모기에 헌혈해가며 잔디를 깎는 중이었다.

"부러우면 너도 와, 우리 같이 청소도 하고, 풀도 깎자."

"어... 그래, 조만간 한 번 갈게. 띠리릭~ 뚜 뚜 뚜 뚜~~"

자기가 전화해 놓고 쫓기듯 급하게 전화를 끊는 녀석. 알고 있으면서 괜히 한 번 떠 본 것이다. 여기나 거기나 사람 사는 건 비슷하고, 죽어야 쉴 수 있다는 거. 제주 사는 친구도 힘들다는 사실에 자위하고 싶었던 것이다.

휴~~ 다 깍았다.

제주를 좋아한다. 너무나 사랑해서 1년에 한두 번은 꼭 간다. 그렇게 얘기하다 정말 제주로 와버렸지만, 다 핑계였다. 그냥 회사생활이 지긋지긋했고, 오랫동안 함께 일한 동료들과 헤어지면서 너무 외로워졌다. 어떻게든 서울을 벗어나 해를 보고 퇴근하는 삶을 살고 싶었다. 먼저 이주한 후배 녀석이 잘 사는 걸 보면 부럽고 조바심이 났다. 이렇게 한 해 한 해 보내다 딸아이가 커버리면 꼼짝없이 야근하다 과로사하는 아빠가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정말 신기하게도 제주에 이주한 첫날부터 환상은 사라졌다. 풀지 못한 짐으로 어수선한 집에 몸을 눕히니, 그냥 더 개겨 볼 걸 그랬나, 당장 어떻게 먹고살까,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함덕 해변에 발을 담가도, 절물 휴양림에서 산림욕을 해도 걱정은 사라지지 않았다.


가시리에 집을 구하고 스냅사진을 시작하면서 경제적인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되었다. 다 쓰러져가던 시골집은 사연 많은 리모델링 끝에 손님을 받을 수 있는 집이 되어 있었다. 뜻이 있으면 길이 있고 살암시민 살아진다. 그제야 제주의 아름다움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해서 1년에 한두 번 오던 시절의 제주처럼 경외 로운 것은 아니다. 아무리 맛난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리는 것처럼 그 때 만큼의 감동은 없다. 예전의 제주가 엄마 아빠가 큰맘 먹고 간 데려간 경양식 집 같다면 지금의 제주는 아무리 먹어도 질리지 않는 집밥 같다. 관광객에서 생활인으로 입장이 바뀌었고, 감동의 포인트도 달라져 버렸다.

고생끝에 완성된 우리 공간

10살 딸은 서울을 좋아한다. 최고의 경험은 캐리비안베이, 홍대 카페를 즐기고, 세련된 사람들을 보며 흥분한다. 자기는 고향이 서울이니까 서울 사람이고, 나중에 크면 한강 뷰 단독주택에 살 거라고 한다(제발 죽기전에 그 모습을 보았으면).

나와는 달리 엄마 쪽 성향이라 할 말이 없다. 나 역시 지금은 서울이 좋다. 정확히 말하면 일주일 정도는 있을 수 있을 것 같다. 그 이상이 되면 슬슬 답답증이 몰려온다. 뻥 뚫린 하늘이 그립고, 가시리의 고양이들, 시리디 시린 바다가 그리울 것이다.


서울에서는 제주가 그립고, 제주에서는 서울을 꿈꾼다. 결국 사는 건 거기서 거기, 여기서 행복하지 못하면 거기서도 힘들다는 걸 안다.

그래서 파드마 짜고 앉으면 그곳이 서울이고 제주라는 것이겠지.


근데, 저... 선생님께서는 왜 인도까지 갔다 오신 건가요? 파드마 짜고 앉으면 그곳이 인도인 것을.

우리 모두 수행이 아직 멀었구나 싶다.  


 

뼛속까지 서울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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