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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 수 있을까

차가운 심연 속으로

by 발걸음


때는 1995년 여름이었다. 나는 알프스 산 아래, 눈부시게 맑은 공기와 때 묻지 않은 햇살이 마을을 감싸던 스위스의 인터라켄(Interlaken)에서 일주일간 여행 중이었다. 어느 날, 숙소에서 알게 된 친구가 협곡에서 하는 물놀이 프로그램을 소개해주었고,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따라나섰다가 ‘캐녀닝(Canyoning)’이라는 생소한 스포츠를 처음 경험하게 되었다.


너무 오래전 일이어서 많은 순간들은 희미하게 잊혔지만, 그중 두 가지 장면은 선명하게 남아 지금도 내 안에 살아 있다. 마치 원래 내 기질이었던 듯, 그 경험들은 내 DNA에 새겨졌다.


첫 번째는 두 팔을 X자로 포개어 가슴에 붙이고, 좁은 협곡의 물살 위에 반듯하게 누운 채로 미끄러지듯 내려가는 활동이었다. 동계 올림픽의 '루지'처럼 빠르지는 않지만, 썰매나 보트도 없이 슈트만 입은 상태로 협곡을 따라 떠내려 가는 동안 크고 작은 바위들이 마치 나를 향해 주먹을 날릴 듯 위협적으로 다가왔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차가운 물은 울퉁불퉁한 바위 위를 매끄러운 담요처럼 덮었고, 나는 그 위를 미끄러지듯 흘러내렸다.


두 번째는 바위 위에서 아래로 점프했던 순간이다. 만년설이 녹아 만든 차가운 물 웅덩이 아래로, 거대한 바위 위에서 몸을 던져야 했다. 바위는 적어도 2미터는 되었고, 그 아래의 물의 깊이는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시커멓고 아득했다. ‘과연 할 수 있을까?’ 나는 겁에 질린 채 바위 끝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수면 아래로 몇 미터나 더 내려가야 바닥에 닿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망설여졌다. 그러나 이미 예닐곱 명의 팀원들과 가이드가 아래에서 나만 올려다보고 있었고, 그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는 없었다. 결국 나는 ‘여기 아니면 언제 해보겠어!’라며 마음속으로 주문을 외우고, ‘꺅!’ 하는 비명을 내지르며 몸을 던졌다.


주사위는 던져졌고, 후회할 틈도 없이 내 몸은 이미 공중에 떠 있었다. 곧이어 알프스의 얼음처럼 차가운 물이 정신이 번쩍 들 만큼 강하게 온몸을 감쌌고, 나는 그 순간의 용기를 아직도 또렷하게 기억하고 있다. 그때 협곡을 타고 울려 퍼졌던 시원한 환호성과 물의 감촉은 ‘나는 물을 사랑한다’는 내 믿음을 더욱 단단히 해주었다.


이 세상에서 내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손에 꼽을 정도다. 하지만 그중 하나, 누구보다도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는 건—나는 물을 좋아한다는 사실이다. 그 증거로, 나는 이렇게 말할 수 있다.




질문: "새로 지은 아파트만 빼곡한 신도시에 사는 장점이 뭐가…… 있나요?"

대답: "그래도 인천 바다까지 단 한 시간이면 충분해요. 꽤 멋지지 않나요?"



구봉도 앞바다나 실미해수욕장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는 아니라는 걸 안다. 그래도 차를 몰고 한 시간이면 언제든 살아 있는 물에 몸을 담글 수 있다는 건, 생각보다 꽤 괜찮은 일이다. 6월이 오고, 시간만 허락된다면 이 주에 한 번쯤은 떠날 수 있다. 만조 시간을 미리 확인해두고, 아직은 선선한 물속에 몸을 맡긴 뒤, 따뜻한 모래사장 위에서 햇살을 즐긴다.


보더콜리 맥스와 함께 간조에 드러난 물길을 따라 실미도로 건너가면, 거대한 바위와 더 한적한 바다가 기다린다. 5미터짜리 줄을 매달아 함께 물에 들어가면, 개와 인간이 함께 헤엄치는 평화로운 순간이 찾아온다. 조금 더 부지런을 떨면—혹은 새벽 3시나 4시쯤, 일찍 깨어 다시 잠들지 못하는 날이라면—짐을 챙겨 한 시간 남짓 운전해 구봉도 앞바다 주차장에 도착할 수도 있다. 시계가 5시 30분을 가리킬 무렵이면 이미 5km 바다수영을 즐기는 무시무시한 무리가 그곳에서 준비운동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요즘에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한 매력이 하나 생겼다.



다시 묻는다: "새로 지은 아파트만 가득한 신도시에 사는 장점이 뭐가…… 있나요?"

대답: "장점이고 뭐고, 이젠 어쩔 수 없죠. 서울·경기권에 다이빙 시설이 갖춰진 체육관이 손에 꼽히는데요. 그중 하나가 우리 동네에 있다니까요. 진짜 행운 아닌가요?"



기록을 보니 다이빙 강습을 처음 시작한 건 2023년 11월이었다. 그때부터 월·수·금 아침마다 3m 플랫폼에서 머리부터 입수하며 하루를 시작해온 지 오래다. 10년차 베테랑 회원들이 스프링보드 위에서 회전하며 날아오르면 경탄이 절로 나고, 나처럼 아직 자세가 어설픈 초보가 허공을 허우적대다 물에 등을 쾅 맞고 떨어지면, 피식 웃음을 터뜨리면서 억지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그렇게 한 주, 한 달이 지나고 이제 1년 하고도 7개월이 되었다. 단단히 깍지 낀 두 손이 머리보다 먼저 물을 가르며, 5미터 깊이의 물속으로 첨벙 들어가 데이비드 호크니의 그림처럼 선명한 물보라를 일으키며, 나는 매일 아침 미지의 하루로 몸을 던진다.


노자가 그랬던가. 인자는 물을 좋아한다고. 어쩌면 그건 산이었고, 사실은 노자가 아니라 장자였거나—잠깐만, 아니, 공자였나? 아무렴 어떤가. 분명한 건 나 자신은 물을 좋아하고, 물은 나를 더 괜찮은 인간으로 만들어준다는 사실이다. 진심으로 즐겁게 해준다는 것만큼은 분명하다.



오늘의 대답:
“다이빙을 못한다면 하루를 어떻게 기쁘게 시작해야 하는지도 까먹었을걸요. 내가 좋아하는 다이빙장이 여기 있고, 멋진 다이빙 친구들이 여기 있는 한—물귀신처럼 여기서 오래오래 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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