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 강습이 특별한 이유를 꼽으라면 챙겨야 할 준비물이 딱히 없다는 사실을 들 수 있다. 수영에 필수품인 수경과 수모도, 오리발도 다이빙에서는 필요 없다. 러너들처럼 고가의 카본 운동화 같은 걸 사느라 목돈 들 일도 없다. 골프 치는 사람들처럼 최신 스마트워치를 구비해 기록을 측정해야 할 필요도 없다. 우리 같은 사람들은 수영복 한 벌로 충분하다. 남자들은 손바닥 만한 걸로, 여자들은 좀 더 천이 풍부한 디자인으로, 그거 하나면 된다. 생각해 보면 올림픽 종목 중에 이 정도로 준비물을 요하지 않는 스포츠도 없는 것 같다. 대자연에서 한다면 그것마저도 필요 없을 테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간편할 것이라, 정말로 아무것도 필요 없다고 믿는다면 첫날부터 낭패일 수 있다.
수영복을 입으면서 나는 원더우먼의 슈퍼파워 망토 같은 두 번째 필수품도 함께 걸친다. 그건 바로 상상력이다. 나중에 깨닫게 된 사실이지만 2년 전 11월 다이빙 강습에 참여한 첫날, 고작 1m 플랫폼에서도 쩔쩔맸던 까닭은 수영복만큼 필수인 이것을 미처 챙기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대체 왜 상상력이 필요하냐고, 이쯤 해서는 궁금해질 것이다. 이런 뜻이다. 누구든 하루하루를 의미 있게 살아가기 위해서는 상상력이 조금은 필요하다. 동의하지 않나? 상상력의 힘에 대해 진지하게 성찰해보지 않았다 할지라도 막상 돌이켜보면 과거 어느 순간 그것을 발휘해 심심한 일상에 장미 꽃잎을 뿌리고 조금 더 견딜 만하게 기지를 발휘했다던지, 혹은 고난과 위기의 상황까지도 헤쳐간 경험이 있을 것이다. 햇살 좋은 날, 급하게 한 끼를 때울 요량으로 들른 뻔한 식당에서 가락국수 한 그릇을 먹으면서 창밖을 내다보며 도쿄에 여행 왔다고 상상한 적이 있지 않은가. 고등학교 시절 지긋지긋하게도 싫었던 선생님을 마냥 미워하는 마음으로 괴로워하는 대신 상상의 큐 사인과 함께 배우로 변신해 짝사랑에 빠진 감정을 연기하며 수업 시간을 그나마 견딜 만하게 만들었던 경험은? 또, '오늘은 제발 꿈꾸게 해 주세요!'라고 기도를 올리며 잠든 어느 날 밤 최근 홀딱 반한 라이언 고슬링과 마침내 뜨거운 시간을 보낸 적은 없나? 치과 의자에 누워, 내 입에 들어간 기계가 굉음을 내며 물이 튀고, 겁에 질려 어깨가 움츠러들 때, 다시 호흡을 늦추고 깊이 숨을 들이마시며 5월의 밤, 머리가 찌릿할 정도로 매혹적인 꽃향기를 맡고 있다고 상상했던 때. 빨강머리 앤이 자주 그런 습관으로 독자들을 미소 짓게 했듯, 누구에게나 이와 같은 순간은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이빙을 시작하면서 나는 어쩌다가가 한 번쯤이 아니라 일주일에 세 번, 의식적으로 상상력을 발휘해 공포의 감정을 다른 감각과 상태로 전환하는 훈련을 하고 있었다. 저 아래 5m 깊이의 풀을 가득 채운 물은 봄밤, 라일락 꽃향기 같은 것이기에 지금 떨어지지 않으면 만나지 못한다. 공기에, 물에 몸을 맡기면 상상의 라이언보다도 더 나를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물은 따뜻한 포옹이 꼭 필요한 순간 어김없이 그걸 선사한다. 그래서 그건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지면 곧 다시 올라오는 그네의 움직임처럼 믿음직스럽다. 또 그것은 언젠가 독일의 도시, 쾰른에서 보았던 그룹 초상화 속에서 살아 걸어 나와 나를 똑바로 응시하던 17세기 플랑드르의 화가, 피터 폴 루벤스 (1577-1640)의 시선처럼 나를 끌어당기는 매력적인 것이다. 나는 플랫폼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며 실패와 고통에 대한 두려움, 심지어 죽음에의 공포를 이런 상상으로 색칠한다.
이탈리아 만토바(Mantua)를 배경으로 루벤스와 그의 형을 포함한 여섯 명의 남성을 그린 이 그룹 초상화는 일종의 '우정 초상화'로, 신스토아주의(Neostoicism)의 이념을 따르며 지적 교류를 이어갔던 친구들과 스승 유스투스 립시우스(Justus Lipsius, 1547–1606)를 기리기 위해 제작되었다. 화면 중앙에서 어깨너머로 관객을 응시하는 인물이 바로 피터 폴 루벤스(Peter Paul Rubens, 1577–1640)이며, 그의 팔에 손을 얹고 있는 남성은 갈릴레오 갈릴레이(Galileo Galilei, 1564–1642)로 추정된다. 문헌에 따르면 이 둘은 모두 곤차가(Gonzaga) 가문의 후원을 받으며 같은 시기 만토바에 머물렀던 것으로 보인다. 화면 오른쪽 끝에서 허공을 응시하는 노년의 인물이 바로 신스토아주의를 16세기 네덜란드에 부흥시키고 이를 기독교적 철학과 연결하려 했던 스승 립시우스로 그림이 제작될 당시는 이미 저세상으로 떠난 후였다.
립시우스의 신스토아주의는 당시 스페인 가톨릭 권력과 네덜란드의 칼뱅주의자들 간의 격렬한 종교·정치적 충돌 속에서 살아가야 했던 이들에게 내면의 평정을 통한 삶의 윤리를 제시하는 철학이었다. 예측할 수 없는 죽음과 광기 어린 폭력이 일상이던 시대, 그는 이성적 훈련을 통해 고통과 죽음을 견뎌낼 수 있는 자세를 강조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저서 『평정에 대하여 De Constantia』에(1584) 잘 드러난다. 이 책에서 그는 육체적·심리적 고통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그에 대한 대응으로서 감정의 격동이 아닌 침착한 내면의 자세를 요구한다. 죽음을 공포의 대상이 아니라 이성적으로 받아들여야 할 자연의 한 과정으로 본 것이다.
2010년 한 학기 동안 루벤스의 우정 초상화 두 점을 집중적으로 조사할 기회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립시우스와 세네카의 글들을 읽게 되었다. 그때는 작품 이해를 위한 참고 문헌 정도로만 접근했기에, 철학 자체에 깊은 관심을 두진 않았던 것 같다. 아마도 루벤스와 나 사이에 있는 시대와 지역의 넓은 간극도 그렇지만 깊은 고통이 무엇인지 아직 경험해보지 못했던 내게 스토아철학은 이론 이상의 의미를 지니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한 치 앞도 알 수 없고 내 맘대로 되지 않는 '삶'이란 것 앞에서 무력감을 종종 경험하게 되면서, 불교적인 삶의 자세나 스토아적인 세계관이 내 피부 속으로 조금씩 스며들기 시작했다. 내게 그런 변화 과정이 없었다면 3m 플랫폼 위에 서서 물을 등지고 뒤로 떨어지며 몸을 회전시켜 머리부터 입수하는 다이빙을 과연 시도할 수 있었을까? 그 짧은 순간 동안 느꼈던 죽음에의 공포를 감당할 수 있었을까? 립시우스의 말처럼, 그것 역시 공포가 아니라 받아들여야 할 자연의 한 단면이라고 믿지 않았다면 어떻게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뛰어내릴 수 있었을까?
문득 궁금해진다. 다른 사람들은 두려움을 어떻게 극복했을까. 다른 다이버들이 느낀 공포는 과연 나처럼 죽음에의 공포 같은 것일까 아니면 다른 종류일까? 죽음의 공포 앞에서 평온한 호흡을 유지하기 위해 그렸던 이미지들은 다음 기회에 소개하도록 하겠다. 약간 덧붙이자면 그 이미지들은 스토아적인 세계관에 더해 영국의 전쟁과 처형 역사에 대한 자잘한 지식에서 나온 것이었고, 그건 3m 플랫폼 뒤로 입수를 평정 상태로 할 수 있도록 도운 일등 공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