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의 몸짓

빌렘 플루서의 '몸짓들'을 따라서

by 발걸음

다이빙은 보통 두 방식으로 나뉜다. 하나는 스프링보드의 탄성을 이용해 위로 도약한 뒤 낙하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플랫폼 위에서 그대로 떨어지는 방식이다. 전자는 반동을, 후자는 중력을 사용한다. 이 구분은 기술의 차이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몸이 놓이는 조건의 차이라 할 수 있다. 다이빙의 몸짓은 되돌릴 수 없고, 수행되는 즉시 사라진다.


다이빙의 몸짓은 순간적이다. 그것은 빠르게 이동하기 위해서도, 효율적으로 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도 이나다. 완벽을 향한 욕망이나 순간적인 쾌감이 동기가 될 수는 있지만, 그러한 차이가 몸짓의 구조를 바꾸는 것은 않는다. 이 몸짓은 언제나 실패의 가능성을 포함한 채, 눈 깜짝할 사이에 끝난다.


순간성은 다이빙의 몸짓의 특수한 시간성이다. 동작은 사전에 계획될 수 있지만, 실행되는 순간에는 개입할 수 없다. 플랫폼과 수면 사이의 공간은 단순한 거리로 환산되지 않는다. 그곳은 시간과 방향, 속도와 중력이 동시에 작동하는 구간이며, 몸은 찰나의 시간 안에 이미 정해진 순서를 따라 움직인다.


이 점에서 다이빙의 몸짓은 일상의 몸짓과 다르다. 우리는 걷고, 문을 열고, 컵을 집어 들면서도 그 동작을 의식하지 않는다. 눈앞의 환경에 따라 몸은 이미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한다. 이러한 움직임은 반복을 통해 형성된 습관의 회로에 가깝다. 그래서 부엌에 다녀온 뒤, 자신이 무엇을 들고 왔는지조차 잊는 일이 생긴다.


그러나 다이빙에서는 이동이 더 이상 배경이 되지 않는다. 아래를 향한 이동은 목적지를 향한 과정이 아니라, 하나의 사건이 된다. 몸은 시간과 중력, 방향과 속도가 동시에 작동하는 조건 속에 놓인다. 몸짓은 지나가 버리는 동작이 아니라, 그 자체로 구조를 가진다. 이때 의식은 몸을 지휘하는 주체라기보다, 몸이 이미 알고 있는 순서를 따르기 위해 함께 머무는 상태에 가깝다.


빌렘 플루서(Vilém Flusser)라면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다이빙의 몸짓은 주어진 조건 속에서 몸이 어떻게 낙하하도록 프로그램될 수 있는지를 드러내는 형식이다.”


나는 3미터 플랫폼 끝에 선다.

몸이 실행할 동작의 순서는 이미 정해져 있다.

숨을 들이마시는 타이밍, 무릎을 굽히는 각도, 팔을 들어 올리는 속도는 반복된 훈련 속에서 형성된 순서다. 몸은 다음 동작을 알고 있고, 의식은 그것을 지켜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각이 앞서거나 두려운 감정이 끼어드는 순간, 몸의 정렬은 흔들리고 몸은 주저한다.


나는 매번 손이 물을 가르는 장면을 보겠다고 생각한다. 그 장면을 기억하겠다고 마음먹는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 순간을 거의 떠올리지 못한다. 낙하의 짧은 시간 동안 의식은 몸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몸짓은 수행되지만, 의식은 그것을 포착하는데 실패한다.


숙련자의 몸짓은 다르다.
Y는 7.5미터 플랫폼에 오른다. 계단을 오르고, 몸의 물기를 털고, 수건을 내려놓는다. 손바닥을 플랫폼 끝에 올려놓고 지면을 단단히 지탱한다. 두 다리를 차올려 물구나무를 서는 순간, 근육은 긴장되고 균형은 유지되며 호흡은 일정하게 이어진다.


이 정지는 멈춤이 아니다.
그것은 낙하 직전, 몸이 중력과 정렬된 형식이다. 다시 숨을 들이마신 뒤 그는 떨어진다. 이 낙하는 결단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이미 형성된 몸의 순서가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이다.


낙하는 감정의 표출도 자아의 표현도 아니다. 그것은 자유를 약속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몸짓은 인간의 몸이 중력이라는 조건 속에서 얼마나 정밀한 순서를 만들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다리는 내려오고, 상체는 접히며, 팔은 무릎을 감싼다. 회전은 정해진 순간에 멈추고, 몸은 다시 수직으로 배열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적 상태가 아니라 반복이다. 몸은 생각하기 전에 먼저 맞춰지고, 선택하기 전에 이미 정렬된다. 손이 물을 가르고, 그 뒤를 몸이 따른다. 물보라는 최소한으로 남는다. 이때 낙하는 끝난다. 다이빙의 몸짓은 수행과 동시에 사라진다.


여기서 기록이 개입한다.
이 몸짓은 촬영 이후에 다른 성격을 얻는다. 영상은 사건을 보존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기준을 만들기 위한 장치가 된다. 카메라는 몸짓을 분절하고, 관찰하고 비교 가능한 형식으로 고정한다. 한 번의 낙하는 더 이상 단일한 경험이 아니라, 평가와 교정의 대상이 된다.이 몸짓은 개인의 경험을 넘어, 외부에서 관찰되고 비교될 수 있는 형식을 전제로 한다.


슬로모션은 시간을 재배치한다. 도약과 회전, 낙하의 찰나는 연장되고, 각도와 높이, 속도의 오차는 분리된다. 전후의 시간이 반대로 정렬되기도 한다. 이때 몸짓은 읽기 위한 것이 된다. 수행되기 이전에, 이미 판독 가능한 상태로 놓인다. 몸짓은 축적되고, 배열되며, 교정 가능한 형태로 남는다.


그렇다고 해서 다이빙의 몸짓이 온전히 프로그램의 실행만은 아니다. 프로그램은 가능한 형식의 범위를 제시할 뿐, 그 실행을 완전히 보장하지는 않는다. 플랫폼 위에 선 몸은 여전히 흔들릴 수 있고, 호흡은 어긋날 수 있으며, 낙하는 실패할 수 있다. 이 미세한 불일치와 불완전성 속에서, 몸은 매번 중력과의 관계를 갱신한다.

바로 이 반복적 갱신의 순간에, 플루서가 말한 몸짓이 발생한다.


keyword
목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