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안녕하세요, 게리 씨?

by 발걸음

La Rochelle, Franc



안녕하세요, 게리 씨?


당신을 게리라고 불러도 될까요?

저는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북한과 마주 보는 한국의 파주 어딘가에 사는 당신의 팬입니다. 요즘 당신의 나날은 어떤지 진심으로 궁금하답니다.


저는 몇 년 전 가디언지 기사를 통해 당신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그 이야기는 제게 큰 영감이 되었어요. 언젠가 이탈리아 폴리냐노 아 마레의 절벽 아래에서 당신을 뜨겁게 응원하는 순간이 오기를 그려봅니다.


상상도 하지 못했겠지만 저를 다이빙의 세계로 이끈 사람이 바로 당신이에요. 지금 저는 1년 7개월째, 주 3회 아침마다 다이빙을 하러 다녀요. 게다가 최근엔 다이빙을 주제로 에세이 연재도 시작했답니다. 물론 이 일이 어떻게 흘러갈지 언제까지 할 수 있을지는 몰라요. 하지만 이걸 시작하는 데는 꽤 용기가 필요했지요. 왜냐하면 그건 저 자신과 하는 약속이니까요. 누가 시켜서도, 돈이 걸려 있어서도, 영광을 위해서도 아닌 단지 저와의 약속이기 때문에 더 용기가 필요한 걸요.


제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이유는 게리 씨의 여정이 제 삶의 방향을 바꿔놓았다는 걸 말하고 싶어서예요. 브라질에 있는 나비의 날갯짓이 베이징에 폭풍을 일으킨다는 표현처럼, 영국에서 아직 젊으시던 당신의 엄마가 차에서 쪽잠을 주무시는 동안 다이빙장에서 시작되던 당신의 하루가 결국 저 멀리, 동쪽 나라 어딘가의 저를 예상치 못한 장소로 이끌었고, 그곳으로 향하는 아직은 짧은 이 길은 제 삶에 이미 신선함과 놀라움을 선사하고 있어요. 당신에게 메일을 쓰는 지금 이 순간도 마찬가지고요.


오는 7월에 파리에서 일주일 정도 머무를 예정인데 혹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작년에는 올림픽 출전 준비로 바쁘실 것 같아 연락드리지 못했고, 그 전해에는 아예 연락할 생각조차 하지 못했어요. 아마도 그땐 제가 아직 다이빙을 시작하지 않았기 때문에, 당신과 저 사이에 어떤 연결점도 없다고 느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무슨 이유에서인지 이렇게 연락을 드리는 게 아주 자연스럽게 느껴지네요.


저를 만나주신다면 정말 기쁠 거예요.

아니 감격해서 쓰러질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금은 답변이라도 올까, 문득 궁금하네요.

당신의 답장을 기다릴게요.



설레는 마음으로

파주에서 X







2023년 우연히 영국 매체인 가디언에서 게리 헌트라는 절벽 다이빙 선수에 대한 심층 보도 기사를 읽었다. 어림짐작으로 A4 용지로 10장 정도는 넘길 만큼 방대한 분량이었는데 단순히 분량만 인상적인 건 아니었다. 얼마나 공들여 오랜 시간 동안 취재했을지. 전체적인 구성이며 밀도, 생동감에 기사를 다 읽었을 때 나는 특별한 누군가의 인생을 한 번에 훑고 나온 듯한 감격을 느꼈다. 이름마저도 근사한 폴리냐노 아 마레, 중세 바닷가 마을의 절벽. 해변을 가득 매운 원색의 수영복을 입은 관중들 틈에 내가 있었다. 나는 그곳에서 게리가 27m 높이에서 뛰어내려 완벽한 트리플 쿼드를 수행하는 모습을 직접 눈앞에서 보고 있었다. 절벽 앞 공기가 군중의 함성으로 요동쳤고 팬들은 낯선 이들과 포옹하며 기쁨을 나눴다.


주인공인 영국 출신의 절벽 다이버, 게리 헌트. 어린 시절 첫 다이빙 레슨에서부터 20대 초반에 의지했던 동료 다이버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이어진 방황, 그리고 지금의 찬란한 자리까지. 나는 그에 대해서라면 다 알 것 만 같은 기분이었다. 마치 그와 오랜 친구인 듯 착각할 정도로 친밀하게 느껴졌다. 기사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건 '극도의 긴장과 걱정스러울 정도의 여유', '뛰어남과 대수롭지 않음'의 묘한 대비였다. 27미터 높이의 플랫폼에서 3초의 경기를 펼치기 전, 엄청난 압박 속에 쓸데없는 생각이 비집고 들어올 틈을 서커스단 시절 배운 저글링을 하며 다스린다. 또 대회가 끝난 후 일상으로 돌아오면 정원을 가꾸고 피아노를 연주한다. 우승 트로피 같은 건 대수롭지 않다는 듯 재떨이나 화분 받침 같은 일상적인 사물로 바꿔버린다.


내가 그린 그는 이랬다. 그는 엄청난 슬픔이 어떤 건지 잘 알지만 삶의 작은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능력을 여전히 잃지 않았다. 트로피를 아무렇게나 다른 용도로 쓰는 데는 아마도 우승이라는 상징 자체보다는 그 여정의 진정한 의미에 더 관심이 있기 때문일 거다. 나도 그게 무슨 기분인지 좀 안다. 과정에서 모든 걸 쏟아부으면 결과는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다. 트로피 같은 건 중요하지 않다.


나는 기사를 읽고 게리와 다이빙이라는 스포츠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결국 레슨 등록으로 이어졌다. 운이 좋았다. 보통 같으면 다이빙을 하고 싶다고 해서 바로 레슨 등록을 할 수 있는 게 아닐 텐데. 그런 시설이 지척에 있는 게 상당한 운이었다는 사실을 그때만 해도 알지 못했다. 그렇게 이 두 생면부지의 영국인들, 게리와 기자인 잔 라이스는 그들도 모르는 사이 내가 뜻밖의 길로 가도록 쿡쿡 찔렀다. 그리고 이야기는 단지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최초로 기사를 읽은 지 2년이 좀 넘은 어느 날 나는 게리에게 연락하고 있었으니.


사실 답장을 기대하지는 않았다. 솔직히 무슨 생각으로 그런 메시지를 보냈는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아 답변이 도착했고 나는 그저 놀랐고 벅찼다. 친구들에게 당장이라도 전화를 돌려 이 놀라운 소식을 나누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게리 헌트를 아는 친구가 있을 리 없었기에 나의 빅뉴스에는 환호성 같은 건 별로 들리지 않았다.


“7월 그때쯤이면...... 아쉽게도 인도네시아에서 전지훈련 중일 거에요. 곧이어 싱가포르로 이동 해요. 거기서 대회가 있거든요.”


“아, 저도 참! 팬이라면서 정작 그렇게 중요한 대회 일정을 확인도 못했어요. 그럼 이메일로 대화를 이어가도 괜찮을까요? 훈련에 방해되지 않는다면요. ‘다이빙’에 대해 글을 몇 편 썼는데 보내드릴게요. 읽고 흥미가 간다면… 저와 펜팔 해요. 아, 참고로 저는 미술을 좋아해서 이야기가 자꾸 그쪽으로 새곤 하는데 조금 이상하게 생각하실까 봐 미리 말씀드려요.”


나는 글 몇 편을 PDF 파일로 만들어 보냈다. ‘게리가 시시하다고 생각하면 어떡하지?’ 하는 조심스럽고 걱정스러운 마음도 없지는 않았다.


다음 날 휴대폰에서 이메일 수신 알림음이 울렸다. Re: Hello Gary!
바로 그 순간, 저 멀리 서쪽 어딘가에서 게리가 내게 답장을 쓰고 방금 Send 버튼을 눌렀다.


그 순간을 상상한다.






게리가 랩탑을 열고 받은 편지함을 확인한다. 한국에서 낯설지만 반가운 이름으로 문서 하나가 도착해 있다.

메일의 제목은 'Hello Gary'.

'오, 글이 도착했나 본데!'

그가 검지 손가락을 마우스 위에 올려놓고 'The Moment You Leap'이란 제목의 첨부 파일을 클릭한다. 업계 사람이 아닌 누군가가 글을 써서 보내온 건 처음이다. 곧 문서가 활짝 열린다. 조용한 가운데 그는 흥미를 느낀다. 문서를 스크롤 다운 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번진다. 그는 고개를 돌려 부엌에서 치즈와 와인을 준비하고 있는 20살 연상의 프랑스인 아내, 라비네에게 외친다.


“라비네, 달링! 한국에서 온 건데, 누가 다이빙에 대한 에세이를 썼어요. 내가 불어로 번역해 읽어줄게요. 한번 들어볼래요? 당신이 좋아하는 로니 혼(Roni Horn) 작품 얘기도 나와요.”


라비네는 치즈를 썰고 있는 중이라면서 있다가 곧 얼음같이 차가운 화이트 와인을 준비할 테니 같이 마시며 읽어달라고 한다. 라비네는 게리보다 20세 연상이지만 여전히 우아하고 부드럽다. 있다가 라비네의 연극 대본을 같이 연습할 예정이다.어차피 그때까지 시간 여유가 있어서인지 왠지 게리는 당장 답장을 보내고 싶다. Reply 버튼을 클릭하자 창이 열린다. 타이핑을 시작한다.


“당신의 글, 잘 읽었어요. 신선하네요. 저 같은 선수나 스포츠 기자가 아닌 당신의 시선에서 바라본 다이빙 이야기라서 더 흥미롭게 느껴졌어요. 이야기의 흐름이 예상 밖이라 놀라웠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공감되기도 했어요. 저에 대해 궁금한 점이 있다면 언제든 편하게 물어보세요.”






“게리… 정말요? 진심으로 감동이에요. 제 글을 읽으셨다고요? 신선했다고요? 지금 이 감정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말문이 막혀버렸어요.”


그날 이후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게리에게 건넬 질문을 떠올렸다.
‘내가 진짜로 게리에게 묻고 싶은 건 뭘까?’

그 질문을 찾는 일은 어쩌면 나 자신을 탐색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예를 들어, 이런 질문은 하고 싶지 않았다.
“이번 레드불 클리프 다이빙 대회에서 또 1위를 차지하셨는데, 성공의 비결은 무엇인가요?”
“뜨거운 태양으로부터 피부 건강을 유지하는 팁이 있다면요?”
잡지의 여름 특집 기사에나 어울릴 그런 질문들.


나는 진심을 원했다. 그의 무대 뒤를, 박수와 조명이 꺼진 후 온전히 홀로일 때의 그를 알고 싶었다. 화려한 도약과 비틀기와 낙하, 환호성 뒤에 가려진 조용한 일상을.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고유한 시선과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듣고 싶었다. 결국 그의 사적인 공간으로 조금씩 걸어 들어가고 싶었다. 물론 그건 시간이 오래 걸릴 일이지만 말이다.


그리고 그 후로 나는 종종 게리에게서 온 이메일을 클릭하며 조심스럽게 그의 세계 속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그 안에서 그는 이런 놀라운 말들을 속삭이곤 했다.



“내가 하는 일이란 게 아무리 긴장된다 하더라도 결국 그건 게임이더라고요.
그것도 아주 즐거운 게임 말이에요.”


“플랫폼에서 수면까지의 27미터는 나만의 캔버스예요.”



아직 주고받은 이메일이 스무 통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인연이지만 그가 자신의 내면을 기꺼이 나눠준다는 사실이 참으로 귀하고 아름답게 느껴진다.


요즘은 펜팔을 하는 사람들이 드물지만, 한때는 세상에 그렇게 서로를 향해 편지를 쓰던 이들이 많았다. 심지어 감옥에 있는 사람과 펜팔을 하다 사랑에 빠진 이도 있었고, 국경을 넘는 이들도 있었다. 마음이라는 건 가까운 사람에게 기울 것 같지만, 참으로 희한하게도 여행지에서 우연히 만난 완전히 낯선 사람, 나의 과거와 미래를 알지 못하는 백지상태의 사람에게 기우는 경우도 많다. 문득 '내가 어떻게 이런 말까지 하게 된 걸까!' 싶은 순간, 나는 내 비밀을 완전한 비밀을 더 이상 비밀이 아닌 것으로 만들어버리고 있는 거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그 낯선 이는 나에게 선입견이 없고 나는 그 앞에서 온전히 나일 수 있다. 내가 여러 정체성 사이에서 왔다 갔다 할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내가 느끼는 그 순간의 내가 되면 충분하다. 엄마로서, 선생으로서, 이웃 사람으로서, 고객으로서, 딸로서, 아내로서 혼란스러워 하거나 굳이 최상의 나의 이미지를 연출할 필요가 없다. 낯설기에 오히려 안전한 공간이다.


지난 6월, 폴리냐노 아 마레에서 열린 레드불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간 후 보낸 이메일엔 이런 문장이 있었다.




“우린 단 며칠 동안만 별처럼 반짝이는 스타였다가 곧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요.
We are stars for a couple of days and then things go back to normal.”



"게리, 저는 당신이 이 문장을 쓸 때 어떤 기분이었을까 생각해 봤어요. 높은 곳에 있다가 지상으로 갑자기 추락해 버린 천사처럼, 당신은 어김없이 땅을 밟아야 하죠. 문장을 읽으며 잠시 생각에 잠겼고, 순간 오션 브엉(Ocean Vuong)의 소설 제목이 떠올랐어요. On Earth We're Briefly Gorgeous, 지상에서 우리는 잠시 매혹적이다.


여기서 ‘잠시’라는 길이를 다시 수백, 수천 개로 쪼개면 그건 아마도 ‘찰나’에 해당하겠지요. 그리고 우리 모두는 몸에는 이미 여러 조각의 찰나가, 찰나의 아름다움이 새겨져 있어요. 그 찰나는 왔다가 가곤 했어요. 우리가 알아채지 못하는 순간에도요. 우린 그걸 붙잡지 못해요. 결코. 그러니 그 짧음과 소멸 앞에서 어찌 감정이 서리지 않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꽃이 아름다운 동시에 슬픔과 상실을 이미 예견하기에 더 애절하지요.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다 그래요. 애타는 운명을 지니고 태어났어요. 늙어버린 여배우의 사진처럼요. 엄마는 언제나 그런걸 보면 한숨을 내쉬었어요.


높은 곳에 선 당신과 그 아찔한 위를 올려다보는 지상의 관중, 거대한 대자연과 가늠할 수 없는 역사의 깊이를 배경으로, 수많은 심장이 요동치는 그 낙하의 찰나. 그 찬란한 3초가 지나가면, 당신은 더 이상 천사가 아니고 이제 다시 땅을 밟아야 하지요. 그래서 저는 진짜 아름다움은 오히려 ‘챗바퀴 같은 일상’ 속에 있어야 한다고 믿어요. 허리띠를 졸라매고 당도하는 특별한 순간이 아니라, 우리가 자주 벗어나고 싶어 하는 바로 그곳에요. 반복되는 평범함 속에서요. 지긋지긋한 그 속에요.


우리는 종종 냉소나 무심함을 멋이라 착각하고, 반대로 관심과 따뜻함과 믿음을 순진하기 때문인 걸로 치부하기도 하지만, 관심의 시선을 잃어버린다면, 믿음을 잃는다면 아름다움을 결코 발견하지 못할 거예요. 어쩌면 불교에서 말하듯 삶의 매 순간을 발견과 깨달음의 장소로 만든다면 지상에 내려와도 꽤 괜찮을 거예요.


저는 게리 씨가 어떻게 아름다움을 발견하고 따라가는지, 그 풍경에 함께 들어가 보고 싶어요. 그곳이 우리의 이야기에 무심히 흐릿하게 스쳐 지나가는 풍경이 아니라 함께 들어갈 장소가 되면 좋겠어요."


keyword
금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