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리프 다이빙계의 라이오넬 메시’의 놀라운 이야기
여름 휴가 중 연재 5회는 다음 기사를 순차적으로 번역한 내용으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잔 라이스(Xan Rice) 지음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게리는 우리 모두를 위해 자갈길 위에 아스팔트를 깔아준 사람이다,”
2009년 5월 초 프랑스 서부 해안의 라로셸(La Rochelle), 여행 가방에 스피도 수영복 몇 벌만 챙긴 남자 12명이 도착했다. 그들은 수영하러 온 것이 아니라 그들 표현대로라면 “날기 위해” 온 것이었다. 이들의 스포츠는 절벽, 건물, 다리 등에서 뛰어내리는 다이빙으로 항상 긴장감과 흥분을 동반한다. 이번에는 시합에 걸린 게 그 어느 때보다 많았다. 클리프 다이빙은 오랫동안 익스트림 스포츠 중에서도 변두리 종목에 불과했고 대개는 본업이 따로 있으면서 스릴을 추구하는 사람들이 하던 활동이었다. 그런데 에너지 음료 회사인 레드불이 “클리프 다이빙 월드 시리즈”를 본격적으로 론칭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여름 동안 총 여덟 차례의 경기가 예정되어 있었고, 수십만 명의 관중이 몰릴 예정이었다. 최고의 다이버들은 명성과 함께 적어도 소박한 생계를 보장받을 수 있는 기회였다.
전통적인 수영장 다이빙에서 최고 높이는 10미터 플랫폼이다. 이조차도 올림픽 다이빙 선수들에게 종종 부담스러운 높이다. 하지만 라로셸에서는 중세 시대에 건축된 생 니콜라 탑 외벽에 짧은 플랫폼이 설치되었고, 그 높이는 차가운 바닷물 위로 무려 26미터, 8층 건물 높이에 달했다. 다이버들은 단 3초 동안 자유 낙하하며 시속 80킬로미터 이상의 속도에 도달했다. 그 속도에서는 머리부터 입수하는 건 너무 위험하다. 발부터 물을 뚫고 들어가야 했고, 가능한 한 물보라가 적게 튀어야 점수가 좋았다.
선수들은 세 번의 시합 점프에서 정면, 배면, 또는 가장 무서운 자세인 물구나무서기 자세에서 출발할 수 있었다. 떨어지는 동안 가능한 한 많은 회전과 공중제비를 시도해야 심판에게 인상을 줄 수 있다. 콜롬비아 출신으로 이번 시리즈의 우승 유력 후보였던 올란도 두케(Orlando Duque)의 말처럼, 실수라도 하면, “전속력으로 달려 벽에 부딪히는 것과 같다.”
듀크(Duke)라 불리는 올란도 두케는 당시 34세의, 카리스마 넘치는 잘생긴 다이버였다. 그가 점프할 때마다 길게 땋은 포니테일이 바람에 흩날렸다. 그의 경쟁자들은 호주, 러시아, 미국 등지에서 온 베테랑 다이빙 선수들이었다. 그 중에는 신인 선수들도 몇 명 있었는데 그중 한 명이 바로 영국 출신의 게리 헌트였다.
당시 24세였던 헌트는 마른 체격에 피부는 창백했다. 그는 절벽 다이빙 경험이 별로 없었기에 몸에 오는 충격을 줄이기 위해 스피도를 두 벌 겹쳐 입고 있었다. 레드불 소속 사진작가는 나중에 “그 해에 헌트에게 다가가면, 그는 종종 의심 가득한 눈빛으로 옆눈질을 하다가 재빨리 자리를 피하곤 했다”고 회상했다. 헌트는 내성적인 사람이었지만 그의 조심스러운 태도에는 또 다른 이유가 있었다. 2년 전 친구의 죽음 이후 정신적으로 망가진 상태에서 겨우 회복하고 있었던 때문이다.
헌트는 라로셸 대회에서 3위를 차지했다. 2009년 시즌이 진행될수록 타고난 선수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최고의 다이버들이 그렇듯 그는 공중에서 자신의 위치를 인지하는 감각이 탁월해 아무리 회전하고 공중제비를 돌더라도 항상 자신의 위치를 정확히 알고 있었다. 아무리 복잡한 루틴을 선보여도 그는 안전하게 물속에 진입했다. 하지만 헌트에게는 그 외에도 특별한 자질이 있었다. 바로 비범한 침착함과 상상력이었다.
클리프 다이빙이 경쟁 스포츠로서 갖는 가장 큰 어려움은 실제 높이에서 사전에 훈련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점이다. 헌트가 첫 시즌을 시작할 당시에는 높은 플랫폼을 갖춘 훈련 시설이 전무했다. (현재는 오스트리아, 미국, 중국에 단 세 곳만 있다.)
이 때문에 그 당시에 하이 다이빙 루틴은 모두 수영장의 10미터 플랫폼에서도 수행 가능한 동작들로 제한되어 있었다. 하지만 헌트는 보다 야심 있었다. 그는 그 엄청난 높이를 제대로 활용할 만한 전례 없는 기술을 시도해보고 싶었다. 그는 이를 실현하는 방법은 단 하나뿐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건 새로운 기술을 부분별로 나눠 연습한 뒤 대회 당일에 처음으로 전체 동작을 이어서 수행하는 것이었다.
투어의 네 번째 경기인 터키 안탈리아(Antalya)대회에서 헌트는 마침내 도전할 준비가 된 것 같았다. 대회가 시작되기 전 선수들이 심판에게 어떤 다이빙을 선보일 것인지 미리 공지하는 시간에 그는 과거에 어떤 다이빙 경기에서도 시도된 적 없는 완전히 새로운 루틴을 제시했다. 삼회전과 사회전을 결합한 다이빙, 이른바 트리플 쿼드였다. 두케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것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다이빙”이었다.
하지만 모든 이들이 새로운 시도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다이빙 점수는 심판들의 수행 점수에 ‘난이도 계수’를 곱해 계산되는데, 라이벌 중 한 명은 헌트가 난이도만으로 이기려 한다며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그게 “올바른 방식이 아니다”라는 것이 그 이유였다. 다른 다이버들은 그가 부상을 입을까 걱정했다.
“우리 다들 그랬어요. ‘야, 좀 천천히 해. 무리하지 마. 위험한 거잖아,’”라고 헌트의 친구이자 경쟁자인 스티브 블랙은 회상했다. 블랙은 사실 그런 말을 할 자격이 있었다. 왜냐하면 그는 이전에 스턴트쇼에서 일하면서 자신의 몸에 불을 지르고 물탱크로 뛰어드는 묘기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헌트는 그 모든 비판과 충고를 무시했다. 그는 안탈리아 대회에서 트리플 쿼드로 우승하진 못했지만, 그 다음 대회에서는 결국 우승했다. 그리고 시즌 마지막 대회에서도 또 다른 새로운 다이빙을 선보이며 다시 우승했다. 전체 시즌을 통틀어 헌트는 ‘듀크’와 승점에서 동점을 기록했다. 다만 두케가 더 많은 대회에서 우승한 덕분에 최종 챔피언 타이틀은 그에게 돌아갔다.
헌트는 만족스러웠다. 그는 어느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우승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잠재력을 탐험하기 위해 시합에 나왔어요.”
다음주 금요일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