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장 옆에서 아침 몸풀기를 마친 후 사람들은 각자 자신의 방식으로 물을 만난다. S는 조심스레 시작한다. 수영장 모서리에 살짝 걸터앉아 발끝부터 물에 적신 뒤, 천천히 전신을 담그고는 곧장 시야에서 사라진다. 이렇게 물에 들어가는 데는 이유가 있다. 아무런 준비 없이 수미터 높이의 플랫폼에서 뛰어내리면, 물의 압력이 귓속을 울리고 머리가 멍해지기 때문이다. 다이빙을 시작하기 전에 물에 들어가는 순서, 깊이를 가늠하는 시간, 그리하여 몸이 적응할 틈을 주는 일은 S에게 하나의 의식이다.
물 밖으로 얼굴을 내민 S를 보다가 어느 날, 문득 로니 혼(Roni Horn)의 사진 연작 <너는 날씨다 You are the Weather>가 떠올랐다. 아이슬란드의 온천에서 촬영된 이 연작 속 젊은 여자의 얼굴은 물에 젖은 채 정면을 응시한다. 표정은 거의 변하지 않지만, 물결의 일렁임과 빛의 각도, 눈의 깊이 같은 미묘한 차이가 매 컷마다 다르게 느껴진다. 흐르는 물이 본성은 유지하면서도 매순간 형태를 바꾸듯이 말이다. 각각의 사진에서 차이를 가늠하는 탐정 같은 시선은 어린 시절 잡지 뒤편에 실리던 '다른 그림 찾기'를 뒤지던 그것과 비슷하다. 하지만 사진에서 발견하는 차이는 유치하고 노골적인 삽화와는 달리 은밀하고 감정적이다. 그것은 사춘기 소녀의 이유 모를 뾰로통함처럼, 껍질을 두른 듯한 불투명한 감정처럼, 정확히 명명되지 않은 채로 카메라 앞에 머문다.
오늘은 모델의 얼굴 대신 실내 수영장에서 수면 위로 표정을 드러내는 S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의 표정이 오늘 나의 날씨를 알려줄 것임을 안다.
가면을 벗고 물 밖으로 나온 S의 얼굴을 보며 나는, 인간의 표정이 얼마나 날씨를 닮아 있는지 생각한다. 우리의 감정 상태를 묘사할 때 날씨의 언어를 얼마나 자주 빌려오는지도 말이다. 맑은 하루하루가 연속되는 이 계절에, 잠에서 일찍 깬 날 새벽 5시에 산책을 나가면 내 마음은 곧 대낮처럼 환하고 상쾌해진다. 반대로 황사가 도는 오후 쌀쌀한 바람이 먼지를 몰고 다니는 날엔, ‘스산한’, ‘막막한’, ‘불안한’이라는 단어들이 날씨뿐 아니라 나의 상태도 묘사한다. 날씨에 대해 말한다는 건 실은 자기 자신에 대한 설명이자 해석인 것이다.
물론 ‘좋은 날씨’라는 개념은 지극히 상대적이다. 어떤 이에게는 뼛속까지 스며드는 한기가 개운한 투지를 불러일으키지만, 다른 누군가에겐 견뎌내야 할 고통일 수 있다. 비 오는 오후를 ‘우중충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분위기 있다’고 느끼며 기꺼이 그 안에 머무는 이도 있다. 결국 주어진 날씨가 문제가 아니라, 그것을 받아들이는 감각과 내면의 상태의 차이일 뿐이다.
하지만 규모를 키우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단지 개인의 감각 차이를 넘어, ‘나쁜 날씨’라 불리는 어떤 절대적인 개념이 존재한다. 한겨울에도 미적지근한 기온, 끝이 보이지 않는 가뭄, 통제 불가능한 산불—이 모든 이상기후는 더 이상 나의 감정이나 분위기를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나 바깥에서 인간을 위협하는 ‘타자’가 된다. 감시되고, 예측되고, 통제되어야 할 대상으로 전환된다. 날씨는 이제 하나의 위기 신호로 소비된다. 슬픔과 무기력, 우울이 사회 전반을 뒤덮고 자살률이 치솟을 때, 정부가 ‘공중보건 국가 비상사태’를 선언하듯 폭우로 물에 잠긴 도심에서, 비를 뚫고 헤엄쳐 귀가하는 직장인의 영상이 밈처럼 소비되는 순간, 날씨는 재난이 된다. 이제 날씨는 감정의 은유가 아니라, 정치적이고 상업적인 것이 된다.
물론 날씨는 늘 변덕스럽다. 그것의 변덕스러움은 이미 전설 아닌가? 무시무시한 힘으로 홍수를 쏟아붓고, 또 어느 순간 해를 틔워 세상을 백지에서 다시 시작하게 만들었던 그 변덕. 하루에도 좋음과 나쁨, 그 사이 미세한 스펙트럼을 오가는 우리의 마음처럼. 인천 앞바다의 섬들은 자욱한 안갯속에 가끔 형체를 드러냈다가 이내 다시 감춘다. 하늘은 결코 예상대로이기를, 한결같기를 허락하지 않는다. 섬에 발이 묶인 여행객들은 애가 탄다.
그러나 매번 플랫폼에서 아래로 뛰어내려 5m 깊이의 수영장 속에 잠겼다가 다시 수면 위로 얼굴을 드러내는 S의 표정은 예의 그 변덕스러운 날씨가 아니라 공신력 있고 믿음직한 일기예보이다. 그건 어젯밤 어떤 일이 있었든, 오늘 아침 내 앞에 어떤 하루가 기다리고 있든, 지금 이 순간만큼은 투명하리만큼 쾌청하다고 속삭인다. 그것은 지금 여기의 확신이다. 실패의 순간에도, 미약한 성공 후에도 언제나.
S의 일기 예보. 오늘은 맑음. 지금은 확실히 맑음. '이곳의 날씨는 매일 맑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