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신 마사지가 끝난 뒤, 일산에서 자유로를 타고 파주로 향한다. 스피커에서는 레이디오헤드의 흐느적거리는 노래가 흘러나온다. ‘I’m a creep‘이라는 가사가 지나가고, 곧 조니 그린우드가 허리를 구부린 채, 손으로 전자기타 줄을 긁어 찢어 내는 소리가 승용차 내부를 채운다. 그 소리에, 온몸에서 무언가가 끓어오른다. 자유로를 따라 펼쳐진 한강 너머 서쪽 하늘의 석양이 오늘따라 유난히 근사하다. 갑자기 LED 가로등이 일제히 켜진다. 여왕의 행차를 알리듯, 혹은 군대의 열병식처럼. 번쩍.
시계를 보니 오후 5시 25분. 하늘은 벌써 어둑어둑해지고 있다. 가로등이 동시에 켜지는 순간이 이렇게까지 아름다웠던가. ‘…want you to notice, When I'm not around, You're so fucking special…’ 가사가 끝나기도 전에 일산을 지나 파주 경계로 진입했고, 이쪽에는 아직 불이 켜지지 않았다.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시계를 보니 곧 5시 30분. 자유로의 가로등이 시야 시작에서 끝까지, 북한을 마주 보는 저 멀리까지, 하나의 리듬을 이루며 탁, 탁, 탁 하고 무리 지어 차례로 불을 밝힌다.
도로 왼쪽, 오묘한 분홍빛이 하늘에 장막을 드리운다. 오른쪽에는 나지막한 심학산을 배경으로 가지 앙상한 나무들이 몬드리안의 그것처럼, 반짝이는 불빛 옆에서 생명을 품은 채 웅크린 자태를 드러낸다. 이산포 IC를 지나며 마주치는 오른편의 송전탑은, 늘 흉물스럽게만 보였지만 오늘따라 앤서니 카로의 철로 된 조각처럼, 구조를 드러낸 채 우뚝 솟아 시선을 붙든다.
아, 20년을 운전해 오가던 자유로가 이토록 반짝이는 모습이었다니. 그 풍경 사이를 시속 90km로 달리며 나는 이 장면을 꼭 글로 써야겠다고 생각했다. 그저 지나칠 수만은 없어서. 그 변신이 경이로워서. 내 감정을 붙들고 싶어서.
오전에 다이빙 훈련장의 문을 밀고 들어갔다. TV에서는 뉴스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앵커가 금값의 수직 상승과 코스피 지수를 읊는 동안, 코치 선생님이 불쑥 말했다.
“배우 안성기가 죽었대요.”
최근의 나쁜 뉴스들이 유튜브 자동 재생 영상처럼 떠올랐다. 하나가 끝나기도 전에 다음 영상이 시작되는 식으로. JFK의 손녀딸 타티아나가 얼마 전 세상을 떠났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쿠팡의 어느 직원은 새벽 근무 중 사망했다. 미국 정부는 국회의사당 난입 사건을 ‘손질’하려 들고, 마거릿 애트우드의 『시녀 이야기』는 더 이상 소설이 아니라 현실을 따라잡기 위해 다시 펼쳐보게 되는 텍스트가 되었다. 베네수엘라 대통령 부부는 한밤중에 납치되었고, 진보 지식인의 정신적 지주로 여겨졌던 노엄 촘스키가 제프리 엡스틴과 끈끈한 이메일을 주고받았다는 소식 앞에서는, 실망조차 새삼스러울 게 없다.
그런 와중에도 나는 크리스마스와 새해 첫날을 제외하고는 근 2주 넘게 훈련장에 나갔다. 한 번 갈 때마다 평균 세 시간. 나 자신이 붙박이처럼 느껴질 무렵엔 결국 근육이 뭉치고 통증이 생겼다. 어깨가 아프다는 말을 듣고 어느새 K가 다가왔다.
“침 한 번 맞아볼래요?”
그가 침도 놓을 줄 안다는 사실에 놀라는 사이, 옆에서 코치 선생님이 거들었다.
“K, 침 잘 놔. 한 번 맞아봐요.”
어느새 그는 대바늘 포장을 뜯고 내 어깨와 등에 침을 찌르고 있었다. 길고 가는 침들이 티셔츠를 통과해 근육 사이 깊숙이 들어간다.
“아… 아…”
신음하는 나를 두고 K는 15분쯤 그대로 있으라 말한 뒤 다시 스프링보드로 올라갔다. 꼼짝없이 앉아 있는 동안, 스프링보드가 튕기는 규칙적인 박자에 졸음이 슬며시 밀려왔다. 내 꼴이 우습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은 종종 재활병동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내게 침을 놓아준 K는 정작 한쪽 어깨 부상 탓에 시범을 보일 때 한 팔만 쓰고, C는 얼마 전 허리를 삐끗해 훈련장에서 놀며 시간을 보내더니, 어떤 날은 가슴 한쪽을 부여잡고 등장했다. 갈비뼈에 실금에 간 것 같다고 한다.
“아픈데 쉬지 왜 왔어요.”
“놀려고 들렀어.”
그가 웃는다.
“다 늙어서 이런 걸 하려니 여기저기 아픈 거지. 20대가 할 걸 우린 지금 하고 있잖아.”
꼭 그렇게 말해야 하나 싶어 속으로만 웃는다.
W도 있다. W는등유 난로 앞, 매트 위에 자리를 잡고, 마치 전장에 나가는 레스보스 섬의 여전사처럼 몸통 보호대와 무릎 보호대를 단단히 장착한다. 그리고는 내가 구워간 옥수수빵을 야금야금 씹어 삼키며 말한다.
“난로 속으로 그냥 쏙 들어가고 싶다.”
나는 W 옆에 바짝 붙어 앉아 묻는다.
“언니도 베이징 올림픽, 아니, 올림픽이 아니지, 피나(Fina) 대회 나가요?”
W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한다.
“그럼, 여기 있는 사람들 다 갈걸. 넌?”
“난 가더라도 응원만 갈 거예요.”
내 말에 W가 입꼬리를 슬쩍 올린다.
“에이, C가 가만두겠어? 대회 나가자고 계속 꼬드길 거야. 가서 기초 동작만 해도 돼.”
“기초만 할 거면, 뭐 하러…”
말을 흐리자 W가 이번엔 나를 똑바로 본다. 농담만은 아닌 얼굴이다.
“4년이나 남았잖아. C가 동작 하나씩 다 만들어 줄 거야. 넌 걱정할 일 없어.”
그 말이 농담인가 예언인가 싶어 나는 괜히 웃는다.
“난 진짜 응원만 갈 건데요.”
코치 선생님은 우리가 줄에 매달려 공중에서 빙글빙글 도는 동안, 줄을 당겼다 놓았다 하느라 어깨 연골이 다 닳아버렸다고 한다. W가 농담처럼 말한다.
“우린 여기 와서 맨날 먹으니 점점 무거워지고, 코치 선생님은 줄 당기느라 힘들어서 점점 말라가네요. 완전 거꾸로야.”
코치 선생님은 아령으로 팔을 단련하며 혼잣말한다.
“에이, 10kg가 딱 좋은데, 당근에 안 나오네.”
통증이 생기면 침을 맞고, 근육을 어루만지고, 잠시 멈춘다. 갑작스럽게 혹사당한 근육은 천천히 풀린다. 그렇게 몸은 다시 회복된다.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하기에 나는 아직은 젊은가 보다. 몸이 다시 깨어나는 개운한 느낌이 오랜만이다.
뉴스는 여전히 세상의 어두운 면만을 집요하게 비춘다. 금값은 오르고, 국경은 긴장 속에 있으며, 죽음과 전쟁은 늘 어디선가 진행 중이다. 하지만 해 질 녘의 자유로는 세상 소식과 무관하게 정해진 시간에 빛을 밝히고, 조니 그린우드의 손가락이 전자기타 줄을 마찰하며 만드는, 진니기는 그 소리는 언제나 나를 뒤흔든다. 그리고 내 몸은 그 반짝임을 통과해 다시 움직일 준비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