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 지상 훈련장의 새해 풍경
최근에 처음 만난 낯선 사람과 ‘죽음’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눌 기회가 있었다. 그는 3년 전 가톨릭으로 개종했고, 호기심에 near-death experience에 관한 책들을 읽으며 사후 세계가 존재한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고 했다. 신앙이 있기에 천국을 믿고, 그렇기 때문에 미래에 사랑하는 사람이 죽는다 하더라도 슬프겠지만 삶이 무너질 정도는 아닐 것이며, 자기 자신의 죽음 또한 두렵지 않다고 했다. 죽음이라는 주제뿐 아니라 삶의 많은 것들에 대해서도 그는 또렷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 세계는 요새처럼 견고했다.
한편, 누군가 내게 이 세상에서 그토록 확신하는 것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내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 그래서 숨을 한 번 들이쉬고 내뱉을 때마다 평생 할 호흡의 총량이 조금씩 줄어든다는 사실 외에는 별로 없다고 대답할 것 같다. 사랑은 피어오르는 순간만큼은 영원할 것처럼 보이지만 이내 변덕스러워지고, 어떤 대상이나 사안에 대한 의견과 감정 역시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처럼 이리 왔다가 저 멀리 사라지곤 했다. 내가 보이지 않으면 울던 아이는 이제 더 이상 손길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 같다.
또 근 40년 동안 매달 의지와는 무관하게 꼬박 반복되던 출혈은 불규칙해지더니, 새로 출시된 생리컵을 사자마자 파업을 선언한 듯 두 달 넘도록 종적을 감추고 있다. 나는 완경이라는 단어가 어쩐지 못마땅하다. 그 말은 인정하지 않기 위한 완곡어처럼 들린다. 차라리 폐경이 더 진실되다. 내 몸은 이렇게 급진적으로 변하고 있다. 그것이 진화인지 퇴화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몸과는 달리 마음은 여전히 어릴 적 그대로인 것만 같지만, 그 또한 착각일 것이다. 어느 하나 정지된 것은 없다. 나의 세계는 확신에 가득 찬 그의 세계와는 달리, 계속해서 진동한다.
지난해 여름 베티와 나는 프랑스 보르도 인근에 위치한 불교 공동체인 플럼 빌리지에서 일주일간의 시간을 꼭 붙어 지냈다. 이후 우리는 함께 베를린에 있는 베티의 집으로 이동해 열흘을 동거하며 일상에서 수행을 지속했다. 우린 정체된 부부간의 섹스에서부터 동성에게 끌렸던 경험, 직업적인 고민에서부터 아이스크림 레시피에 이르기까지, 어느덧 세상 온갖 얘기를 다 나누는 사이가 되었다. 그랬기에 대화는 플럼빌리지에서 만난 사람들에 대한 뒷말로 이어지기도 했다.
베티가 먼저 입을 열었다.
“OO 말이야. 말할 때 표정이나 제스처가, 뭐라 해야 할까, 진짜 좀 과하잖아. 너도 느꼈지? 난 첫인상부터 불편하더라.”
나는 눈을 굴리며 장난스럽게 되물었다.
“Are you sure? 난 그냥 성격이 밝은 사람 같던데. 표정이랑 몸짓만 몇 번 보고 판단하기엔 좀 잔인하지 않아?”
“내가 배우라서 그런 제스처가 더 거북한 걸지도. 근데 넌 어땠어? 우리 그룹 사람들 말이야.”
나는 잠시 뜸을 들이다가 말했다.
“영국에서 온 중국인 번역가 있잖아. 처음 봤을 때부터 시선이 확 갔어. 외모 때문은 아닌데,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니고. 말투나 표정 때문인가 싶기도 하고. 특히 저번에 둘이 얘기하다가, 그 여자가 울었거든. 부모님 사이에 있었던 일 얘기하다가. 그 순간엔, 진짜 껴안아주고 싶더라. 그게 좀 컸어. 요 며칠은 법문 들으러 가서도 어디 있나 괜히 둘러보게 되고. 그냥 호감이라고 넘기기엔, 내가 너무 신경 쓰고 있더라.”
“Are you sure?”
베티가 웃으며 받아쳤다.
“그 여자 남편이랑 사이 엄청 좋아 보이던데. 섹스도 자주 하는 것 같고.”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닌가? 내가 절에서 너무 금욕하다 보니 혼자 소설을 쓰는 건지도.”
농담 같은 말을 주고받으며 우린 연신 10대 소녀들처럼 낄낄거리며 웃었다. 하지만 늘 장난스러운 것만은 아니었다. 어쩌다, 내가 성급한 확신에 빠지는 순간을 알아챌 때마다, 목소리도 근사한 데다가 매번 첼로 연주로 우리를 감동시키는 팝린(Phap Linh) 스님의 말씀처럼 ‘확실한가?’라 되묻는 게 최근 일상에서의 수련 방식이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강한 견해에서 점점 멀어지는 걸 느낀다.
삶이 그렇기에 내가 죽음을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 ‘메멘토 모리’는 삶 속에서 거의 유일하게 확신할 수 있는 것일 테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그 확신은 언제 닥칠지 모른다는 또 다른 불확실성을 품고 있다. 때문에 삶은 자칫하면 고도를 기다리는 도도와 디디의 시간처럼 무자비할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아니 어쩌면 바로 그렇기 때문에 뜻밖의 것들을 기꺼이 맞아들이며 이 시간을 더 생생하게, 더 반짝이는 것으로 깨어있게 하고 싶다.
나는 인생이 진행 중인 프로젝트 같다. 죽음이라는 최종 목적지를 향해 활짝 열려있는 모험 같다. 얼마나 차가운지 얼마나 깊은지 아직은 알지 못하는, 하지만 곧 그 안으로 뛰어들 호수 같다. 길을 잘못 들어 엉뚱한 방향으로 갔을 때 마주치는 뜻밖의 풍경 같다. 탐험가의 시선으로 만나는 세상은 그래서 놀라운 것들로 가득 차 있나 보다. 많은 게 ‘아직은 모름’ 일 테니. 데이비드 애튼버러 할아버지가 화면 속으로 얼굴을 바짝 들이밀며 우리에게 보여주는, 믿기 힘들 만큼 경이로운 동물들의 세계처럼.
나에게 다이빙은 그렇게 뜻밖에 만난 인연이었다. 다이빙 강습을 등록한 이유는 무언가를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단지 미지의 것에 대한 호기심 때문이었다. 우연히 영국 가디언지에 개제 된 절벽 다이빙 선수에 대한 몇 페이지에 걸친 기사를 읽고, 도나우강에서 앞돌기를 하여 물로 뛰어드는 아이들의 모습을 보며, 그것이 불러일으키는 어린아이 같은 순수한 즐거움에 끌렸던 것 같다. 그로부터 어느새 아침 50분의 다이빙 강습은 하루를 여는 중요한 일과가 되었다. 늘 반에서 가장 초보 신세였지만, 새로운 회원들이 들어오며 그들이 실패하거나 두려움에 사로잡힐 때 적어도 격려만큼은 해주는, 이젠 제법 괜찮은 위치에 서게 되었다.
그렇게 다이빙에 입문한 약 2년 동안 나는 꽤 인상적인 곳에서 몸을 던지기도 했다. 그중에는 나치 통치기에 건설된, 영화 이퀼리브리엄의 도시처럼 위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베를린 올림픽 스타디움도 있다. 나는 야외에 있는 올림픽 수영장의 7.5미터의 플랫폼에서, 연료비 상승으로 인해 데우지 못한 차갑디 차가운 푸른 물 속으로 용감하게 뛰어내렸다. 5미터에서는 어설프게 전문 용어로 101B라 불리는 프런트 다이브 파이크(Front Dive Pike) 동작을 겨우 시도했지만, 나올 때는 스타라도 된 것처럼 빨간 티셔츠를 입은 안전요원들의 박수 세례를 받았다. 그건 순전히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제외하면 담력 테스트 삼아 뛰어내리는 이들이었기 때문이었다. 8월, 베를린의 서늘한 아침 공기, 정신이 번쩍 들만큼 차가운 물, 그건 놀랍게도 여전히 내 피부에 남아 있다.
최근 2주 간 나는 다이빙 지상 훈련장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매트에서 다리를 풀면서 소니 XM5 해드폰을 끼고 평소에 듣지 못했던 음악에 여유롭게 몰두하는 그 순간이 귀하게 느껴진다. 그때만큼은 음악이 배경에 머무르지 않는다. 트리스탄과 이졸데가 ‘사랑의 밤(Liebesnacht)’을 신들린 듯 열창하는 동안 나는 다리 찢기의 고통을 은근히 즐기며 눈을 지그시 감는다. 음악이 얼추 끝나면 이제 트램펄린으로 이동한다. 내 몸이 하늘로 둥실 날아오른다. 머리카락이 사방으로 뻗친다. 곧 호흡이 가빠지고 땀이 난다. 머릿속 잡음이 사라지고 거친 숨소리만 남는다.
어느 날 옆에서 공중제비를 돌던 Y가, 스프링보드 위에서 어정쩡하기만 한 내 자세를 보다 못했는지 처음으로 내게 말을 건넨다.
“점프하다 보면 보드와 내가 하나가 되는 순간이 올 거예요. 자, 이렇게, 잘 봐요!”
그 말이 내 마음에 와닿았다. 하나가 되는 순간. 서퍼가 파도와 하나 되어 흐름을 타듯, 나도 언젠가, 언젠가는 스프링보드라는 사물과 하나 되어 춤을 추겠지.
어쩐지, 몸풀기, 점프하기, 앞뒤로 돌기, 물론 그 사이사이 끼어드는 약간의 수다와 함께 흘러가는 이곳에서의 시간, 하고 나면 어깨와 날개뼈가 욱신거리는 이 시간은 아이러니하게도 내게 휴식처럼 느껴진다. 그것도 꽤 사치스러운.
곁에서 내 자세를 잡아주던 K가 슬쩍 말을 던진다.
“근데 왜 이렇게 열심히 해요? 나보다 더한 것 같아.”
하지만 나는 그냥 하고 있는 거다. 성과를 향해 내달리지 않아도 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들인 시간에 비해 실력은 더디지만 특별한 목표 없이, 단지 즐겁다는 이유로 이곳에 머무는 게 좋다. 어렸을 때 친구들과 고무줄놀이를 하던 때처럼, 그저 재미있기에 하던 그 느낌이 참으로 오랜만에 내게 돌아왔다. 그냥 있는 것, 그냥 하는 것, 이건 생각해 보면 꽤 괜찮은 작업이다. 참, 오션 브엉(Ocean Vuong)이 NPR 팟캐스트에서 말했던가, ‘괜찮다’는 상태가 요즘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그의 말을 곱씹다 보면, 내가 말하는 ‘괜찮다’는 상태가 생각보다 훨씬 아름다운 쪽에 가 닿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러니 이 작업은, 나로서는 더 보탤 게 없다.
뛰다 지친 나는 거친 숨을 내뱉으며 아래로 내려온다. 지난번엔 W가 닭 모이로 쓰라며 씨보리 두 통을 가져와 건넸다. 겨우내 통통하게 살찌워서 어쩔 작정이신지!, 혼자 웃음이 난다. W는 1월의 첫 토요일인 오늘은, 커다란 포댓자루 한 장을 내민다.
“닭장 청소 좀 해서 모아줘 알았지!, 조만간 땅 사면 그걸로...”
언젠가 우리 닭들이 만든 비료로 자랑스러운 호박이 주렁주렁 맺을 W의 밭을 그려본다.
저쪽에서는 스프링보드에서 점프해 등으로 떨어지는 착지를 연마하던 J의 휴대폰이 갑자기 전자음을 울리며 몸체를 떤다.
“배달 주문 왔어. 빨리 가서 피자 만들어야 돼.”
J는 마법의 옷장 문을 열고 현실계로 사라진다.
곧이어 C와 다른 회원 한 명이 요가 학원에서 처분하던 매트를 대여섯 장 들고 입장했다. 훈련장이 분주한 에너지로 가득하다.
“요가 선생님 오셨네. 좀 가르쳐줘!”
W가 반 농담 식으로 요청하자 곧 즉석 요가 레슨이 시작된다. 우리는 진지하게 수리야 나마스카라 동작을 따라 한다. 서로 호흡을 맞추며 몸을 접고 펼친다. 곧 일흔이 되는 S가 난이도 있는 동작을 따라 하느라 용을 쓴다. 나와 30cm 간격으로 마주한 그녀의 얼굴을 보니 웃음이 터진다.
“언니, 힘들어요? 힘들면 이렇게, 이렇게 미소 지어봐요!”
밑에서 몇이 요가에 몰두한 사이 저 위 트램펄린에서는 농담이 둥실둥실 오고 간다.
요가를 하면서 문득 플럼 빌리지의 거대한 고목 아래서 즉흥 움직임을 했던 순간이 떠올랐다. 우리는 아무 계획도 없이 모여 움직였고, 사람들이 하나둘 합류하자 그 움직임은 어느새 춤이 되었다. 춤을 추는 동안은 모두가 어떤 힘에 의해 하나로 연결된 것 같았다.
나는 그곳에서 만난 스님들과 어른들의 어린아이 같은 가벼운 태도가 무엇보다 좋았다. 잘 해내려 애쓰지 않아도, 그저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 충분했던 시간이 좋았다. 지난해 11월 말 처음 발을 들인 다이빙 지상 훈련장이 요즘의 나에게는 어쩐지 그 기억과 닮았다. 때가 되면 함께 밥을 나누고, 스프링보드 위에서 뛰는 동안 명상할 때처럼 머릿속이 고요해진다. 실없는 농담이 오가고, 몸은 점점 가벼워진다. 우리는 각자의 방식으로 머물다 흩어지고 다시 만난다.
올해는 또 어떤 반짝이는 것들을 만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