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 훈련장의 점심 풍경
1층 작업실 문을 살짝 열었다. 줌으로 싱가포르의 동료와 회의 중인 남편에게 손짓하며 속삭였다.
“나, 오늘도 점심 먹고 올게!”
최근 며칠간 매일, 남편에게 건네는 아침 인사였다. 화면 속 사람과 일하는 그의 뒷모습을 향해 말을 건넬 때면, 어쩐지 유켈레스(Mierle Laderman Ukeles)라면 '유지보수예술 선언문'에서 이렇게. 표현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스친다.
"엄마가 바깥 일로 바쁘면, 가정에서 돌봄과 유지 관리 업무는 누가 할 것인가!
그 일도 역시 엄마가 있기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속된다."
오전 10시. 다이빙 지상 훈련장 앞에는 코치 선생님의 지프만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었다. 또 내가 일등이다. 난롯가에서 몸을 대충 풀고 트램펄린 쪽으로 옮기며 시계를 보니 어느새 10시 45분. 오늘은 K가 오지 않으려나 보다 싶었다.
문득 지난번 그가 외치던 순간이 떠올랐다.
“코치님, 저도 이제 제 인생 살래요!”
그는 이곳에서 설비도 보고, 회원들도 지도하고, 밥도 하고, 내 어깨에 침도 놓았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닌데 항상 모두를 돌보는 사람이었다. 그래서인지 그가 오지 않자, 이 공간은 어쩐지 소리가 달라진 기계 같은 느낌이었다. 며칠 전까지만 해도 그는 연일 시장에서 장을 봐 왔고, 우리는 찹쌀 섞인 흰쌀밥을 나눠 먹었는데. “나쁘지 않아. 그거야!”라던 쩌렁쩌렁하던 그의 외침 대신,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의미 없는 웅성거림만 공기를 채웠다.
난롯가에 앉아 몸을 풀고 있던 W에게 말을 건넸다.
“K, 이제 여기 좀 덜 오려나 봐요.”
“에이, 말만 그런 거야. 저번에도 똑같이 말하고는 맨날 왔잖아. K는 말이야, 돈 벌면 다이빙에 쓰고, 시간 생기면 다이빙에 쓰는 그런 사람이야.”
시계를 보니 벌써 12시였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점심은 누가 하지?’
언제부턴가 이곳에서는 어쩐지 점심을 중심으로 모든 게 돌아가는 느낌이었다. 오전 운동을 하다 보면 어느새 부엌도 없는 그곳에서 누가 요술이라도 부린 것처럼 제때 밥이 차려졌다. 그것이 누구의 일인지 굳이 묻지 않아도 되었다. 하지만 오늘은 달랐다.
순간 샌드위치 패널 문이 덜컹거리며 열렸다. 곧 양손에 하나씩 커다란 일회용 포장 용기를 든 덩치 큰 Q가 모습을 드러냈다.
“와, 점심이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모두의 얼굴이 환해졌다. W가 웃으며 농담을 던졌다.
“다음부턴 오기 전에 미리 알려줘요. 그래야 내가 와 있지.”
오늘의 점심은 매운 토마토소스에 버무린 새우튀김 대자, 삶은 달걀이 들어 있는 밀떡볶이.
코치 선생님이 말했다.
“오늘 점심은 이걸로 하면 되겠지? 햇반 하나 데울까요?”
“에이, 이거면 밥 없어도 충분하죠.”
W가 대답했다.
나는 쫄깃한 떡볶이를 입에 넣어 오물거리며 Q를 바라봤다. 그는 늘 훈련보다는 매트에 앉아 휴대폰을 보며 구경하는 쪽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오늘은 운동할 거죠?”
그가 머쓱하게 웃었다.
“지난번엔 땀 좀 흘렸거든요. 오늘은 그냥 보려고요. 보는 것도 도움 많이 된다니까요.”
훈련하러 온 게 아니라, 훈련하는 우리를 먹일 생각으로 오다니. 이곳의 우렁각시는 사라진 줄 알았는데, 오늘은 이렇게 다른 몸으로 나타났다.
내일 메뉴는 뭘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