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렁 각시의 귀환

다 잘 먹고 잘 살자고 하는 일

by 발걸음

덩치 큰 Q가 이틀 연속으로 점심때쯤 다이빙 훈련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도 양손에 묵직하게 먹을 것을 들고서였다. 훈련이 아니라 급식 담당처럼.


첫째 날은 이랬다.
매일 이 공간을 지키다시피 하던 K가 보이지 않자, 나는 괜히 서운해졌다. 점심은 또 어쩌나, 불길한 예감이 고개를 들던 바로 그 순간 Q가 나타났다. 양손 가득 점심거리를 들고서. 기가 막힌 타이밍이었다.


둘째 날도 비슷했다.
K는 훈련장에 돌아왔지만, 밥을 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였다. 오늘 점심은 또 어떻게 하나, 걱정이 막 시작되려던 찰나 Q가 다시 나타났다, 어제와 같은 모양새로. 다만 이번에는 메뉴가 더 묵직해진 채로. 역시나 점심시간 직전. 이틀 연속, 완벽한 타이밍.


Q는 이틀 내내 연습이 아니라 배달하러 온 듯했다. 그에게는 그저 우리에게 맛있는 것을 먹이고 싶은 아름다운 마음뿐인가.


셋째 날에는 K와 W, 나, 그리고 코치 선생님까지 네 명이 오전 훈련장을 지켰다. 전날도 밥 지을 생각이 없던 K는 그날도 여전히 조용했다. 오늘은 그냥 빵으로 때우려나 싶던 참에, 철가방이 등장했다. 중국집 배달이었다. 회원들 점심까지 챙기시는 선생님. 괜히 민망해지며 자장면의 랩을 벗기고 있는데, 그때 K가 외쳤다.


“코치님, 탕수육은 왜 안 시켰어요. 탕수육이 있어야죠!”


밥상 위로 하하하 웃음이 흘렀다.


다음 날 집을 나서며 문득 생각했다. 점심에 보탤 것을 뭐라도 챙겨가야 하지 않을까. 냉장고에서 한살림 백조기 어묵을 꺼내고, 물만 부으면 되는 국물용 소스가 있는지도 확인했다. 파와 무를 챙기고, 귤도 몇 주먹 가방에 넣었다. 전날 배달 온 고구마 한 박스는 주황색 트위지의 콩알만 한 뒷자리에 겨우 실었다. 담요로 몸을 감싸고 얼굴로 찬바람을 맞으며, 덜커덩덜커덩 그렇게 출판단지를 가로질러 산남동으로 향했다.


도착하니 코치 선생님과 먼저 와 있던 K가 등유 난로 앞에 마주 앉아 육개장 사발면을 후루룩 먹고 있었다. 코치 선생님이 물었다.


“사발면 같이 드실래요?”


“선생님, 아침부터 처량하게 사발면을 드시고요.”


어묵 거리라도 챙겨 오지 않았으면 점심도 사발면이 되었겠군 싶은 생각이 스쳤다.

곧 K가 상을 치우며 코를 찡긋하고 내게 지나가듯 말했다.


“돼지 수육 삶아왔는데, 압력솥에 해서 그런지 너무 푹 익은 것 같아요.”


나는 속으로 안도의 웃음을 지었다. 오늘은 또 이런 날이구나 싶어서. K의 섬세한 조리법이 실력을 발휘하는 날.


K는 몸에 열도 올릴 겸 나와 함께 스텝을 연습했다. 우리는 스프링보드 위에 나란히 서서 구령을 외쳤다.


“준비, 시작. 하나, 둘, 세—엣.”


오른발, 왼발, 다시 오른발. 마지막으로 왼발을 조금 크게 내딛으며 뒤에 있던 팔을 끌어올려 위로 뻗고, 거의 동시에 오른쪽 무릎을 앞으로 당기며 위로 끌어올리고, 팔과 다리를 끝까지 편 채 점프한다. 그리고 스프링보드 앞 가장자리에 착지하면서 보드를 아래로 누른 뒤, 그 탄성으로 팔을 돌리며 튀어 올라 매트 위에 착지.


이것은 파워 허들. 정확한 발음은 파워 허-r:혀 꼬부라지는 소리-들.

처음 이끈 사람은 C, 우아하게 연마해 준 사람은 K. C와 K 사이 애정 어린 잔소리를 건네던 여러 자칭 코치들.


“이제 잘한다. 많이 늘었네!”


K 센세가 시원하게 말했다. 기똥찬 실력에 대한 칭찬은 아닐 것이다. 그동안 연마해 온 시간에 대한 격려였을 터다. 괜히 부끄러워진 나는 속으로 아리가또 고자이마시다를 중얼거렸다.


그 무렵 W가 새로 한 빨간 꼬불머리를 흩날리며 헐레벌떡 들어왔다.


“밥 먹자, 밥. 아이고, 배고파.”


“누나, 지금 몇 시인데 밥을 먹어요. 아직 열한 시 조금 넘었잖아요!”


“지금 밥 해야 열두 시에 먹지.”


평소에는 군고구마니 빵이니 상에 차려진 걸 야금야금 집어 먹으며 “코치님, 나 여기 먹으려고 온 거 아니에요”라던 W가 배고프다고 외치는 모습을 보니 괜히 웃음이 났다.


말이 끝나자마자 냉장고 옆 작은 모퉁이가 갑자기 분주해졌다. K는 매트 위에서 새로 장만한 스테인리스 스틸 그릇을 꺼내 행주로 싹싹 닦고 있었다.


“연마제를 다 제거해야 되거든요.”


W가 식용유 한 통을 들고 오더니 닦은 그릇에 기름을 발라 다시 닦는다.

나는 옆에서 거드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꼭 명절 앞두고 놋쇠 제기 닦는 장면 같지 않아요?”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W가 새된 소리로 외쳤다.


“OO아, 너는 왜 아직도 장가를 안 가고 그러고 있냐!”


“고모, 고모가 나한테 해준 게 뭐라고 그런 소리를 해요. 에잇.”


K는 노총각 조카가 되어 울먹이는 목소리로 하지만 앙칼지게 받아쳤다. 나는 스케치 코미디의 한 장면 안에 들어와 있었다.


이윽고 복닥복닥, 달캉달캉. 자연스레 역할이 나뉘고 곧 한 상이 차려졌다.
K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쌀밥을 퍼 담고, W는 뜨끈한 돼지 수육을 상 가운데 올렸다. 나는 양 가로 알배추와 수경 재배한 아삭한 상추를 내려놓았다.

바로 그때 Q가 문을 밀고 들어왔다. 이번에는 어쩐지 빈손으로. 하지만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서.


“앉아요. 앉자, 같이 들어요.”


“아, 방금 밥 먹고 왔는데…”


그러나 Q는 어느새 밥상 앞에 자리를 잡고 있었고, 수북이 담긴 쌀밥 한 공기를 말끔히 비워냈다. 우리는 마지막으로 남은 돼지 수육 한 점을 바라보며, 서로에게 양보하고 있었다.


“선생님 드세요.”


“아니, 난 배불러. W가 드세요.”


결국 K가 푹 삶아온 마지막 수육 한 점은 Q의 입으로 쏙 들어갔다.


훈련장에, 우렁 각시가 돌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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