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코치 이야기
다이빙 지상 훈련장을 드나드는 다양한 사람들 가운데 K도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를 설비 담당자나 설치 기사쯤으로 이해했다.
“이게 왜 안 되지? 코치님, 여기에 연결하면 되잖아요. 이리 와보세요. 아, 이게 문제였던 거야!”
코치 선생님과 K 사이에 오가는 이런 종류의 대화는 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던 내 귀에도 또렷이 들려왔다.
그러다 어느 날, 그가 수강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을 보게 되었다.
“자, 좋아. 쪽 펴고, 위에서 정지! 정지하라고!”
“몸 쓰면 안 되는 거야. 어깨에 힘 빼고 팔을 뒤로 떨어뜨려야지!"
"그렇지, 나쁘지 않아. 그거야!”
그의 목소리는 마치 촌동네 아마추어들로 구성된 오합지졸 오케스트라를 어떻게든 경연대회 무대에 세우겠다는 일념 하나로 가득 찬, 독일 유학을 마치고 막 돌아온, 물정 모르지만 애정만큼은 드넓은 젊은 지휘자의 입에서 나온 듯했다. 자신감과 결의로 가득 찬, 시원한 목소리였다. 레이더망을 넓혀 쩌렁쩌렁한 소리로 여러 회원을 동시에 지도하는 그의 모습은 심지어 대단히 전문적으로 보이기까지 했다. 나지막한 목소리의 코치 선생님보다 더 ‘진짜’ 같은 K를 보며, 그를 엉뚱하게 설비 직원으로 오해했던 게 괜히 미안해졌다.
하지만 곧 그의 정체에 대한 또 다른 의문이 생겼다. 그는 나를 제외한 대부분의 수강생들과 지나칠 정도로 친해 보였다. 그렇다면 11월, 이곳이 문을 열기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터였다. 머지않아 K 자신의 입을 통해 그 의문이 풀렸다.
“나, 여기 직원 아니야! 나도 돈 내고 다니는 수강생이라고!”
그는 스프링보드에서 매트를 등지고 선 다음 위로 점프해 앞으로 두 바퀴 돈 후 매트 위에 양팔을 벌리고 착지했다. 요란한 박수갈채를 받으며 K가 숨을 헐떡였다.
“코치님, 저 잘하죠. 거 봐. 난 K야, K라고!"
그렇다. 그는 단지 회원일 뿐이었다. 칭찬받기를 바라는 나와 다르지 않은 수강생. 그렇다면 이곳에서 그가 맡고 있는 수많은 역할은 모두 순전히 자발성에서 비롯된 것이란 말인가.
수강생인 K의 역할은 설비와 코칭에만 그치지 않았다. 어느 순간부터 나는 그가 차려주는 점심까지 먹으며, 아침 10시부터 최소 세 시간은 훈련장에 눌러앉게 되었는데, 처음 밥을 먹던 날은 이와 같았다. K가 말했다.
“코치님, 이제 슬슬 밥 지어야겠죠?”
“그냥 햇반 먹지, 뭘.”
“아니, 햇반은 급할 때 먹는 거예요. 밥은 지어야 맛있죠.”
옆에 있던 W가 끼어들었다.
“햇반은 나중에 먹고... 인원이 이렇게 많은데 밥 하는 게 낫지!”
곧 그는 부엌도 아닌 냉장고 옆 자그마한 구석, 몇 가지 전기 조리 기구가 있는 그곳에서 따끈한 밥을 짓고 어묵탕까지 끓이고 있었다. 거기에 아침에 시장에서 공수해 온 각종 반찬까지 더해지자, 다리가 휘청거릴 만큼 상이 차려졌다. K는 다름 아닌 우렁각시였다.
김이 솔솔 나는 흰쌀밥을 밥공기에 담으며, K가 진지한 얼굴로 내게 말했다.
“집에서 찹쌀을 좀 들고 와서 섞었어요. 쫀득하라고.”
“우와!”, 감탄하면서 동시에 나는 ‘찹쌀’과 ‘쫀득한’이라는 단어 앞에서 터질 듯한 웃음을 꾹 참아야 했다. 그건 마치 할머니들이 운동을 마치고 둘러앉아 간식을 나누며 나눌 법한 요리법의 언어이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쫀득함’을 위해 집에서 ‘찹쌀’까지 챙겨 오는 그 세심함과 정성이란. 또 아침부터 시장에 들러 갓 구운 김을 사 오는 그 감각이란. 그뿐만이 아니었다. 두부조림과 땅콩을 넣은 멸치 고추장 볶음까지 직접 만들어 차린 밥상은 웬만한 백반집 저리 가라 할 정도였다. 김이 솔솔 나는 찹쌀 섞인 쌀밥이 모두의 위장을 채우는 동안 자그마한 밥상은 화기애애해졌다.
K가 중얼거렸다.
“아, 국물에 무를 넣어야 하는데, 가져온다는 게 깜빡했네.”
그러자 코치 선생님이 웃으며 말했다.
“K, 옆에 백반집 하나 차리라니까.”
“코치님, 저도 일이 있는 사람이라고요!”
오늘은 2025년 12월의 마지막 날.
조용히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맞을 계획이었던 나는, 어쩌다 보니 하루의 시작을 또 이곳에서 하고 있었다. 내가 가장 먼저 도착하자 곧 익숙한 얼굴들이 하나둘 들이닥친다. 속으로는 오늘 같은 날에도 어김없이 여기와 있는 우리가 조금은 머쓱하게 느껴졌지만, 이상하게도 납득이 되었다. 어느새 이 공간은 가장 친한 친구처럼 나를 반긴다. 우리는 매트 위에서 몸풀기를 핑계로 수다를 루틴처럼 시작한다.
“제주도가 말이야, 언어가 완전히 달라. 외국말처럼. %#@!*! 이게 무슨 말인지 함 맞춰봐!”
“......”
“이게 ‘목을 비틀어버릴까 보다’ 이런 뜻이야. 어렸을 때 욕으로 많이 썼어.”
“와, 제주도, 그것 참 살벌하네. 그런데 형님, 강원도 말도 완전 못 알아듣는 거 많아요. %$^&*@# 이건 무슨 뜻이게요?”
"......"
"에이, 이러다 오늘 운동은 하나도 못하겠다."
C가 철봉 쪽으로 사라진다.
C는 한국 마스터 최초로 405라는 동작을 시도하기 위해 스프링보드 위에 선다. K가 재빨리 달려가 마라카스를 가져온다. 그가 시원한 소리로 “악귀야 물러가라!” 외치며 마라카스를 흔드는 동안 나와 J는 환호하며 아이들처럼 방방 뛴다. 줄을 잡고 서 있는 코치 선생님이 우리의 유일한 관객이다. 연말이라는 이유로 허락된 짧은 소란, 한 해 동안 몸에 달라붙어 있던 것들을 털어내는 장난은 생각보다 금세 끝나버린다. 소란스러운 응원을 받은 C는 “자, 해보자!”라고 외치며 액션 배우처럼 몸에 줄을 단 채 스프링보드에서 점프해 트위스트로 회전한다.
박수 세례가 끝난 후, 나도 스프링보드 끝에 뒤꿈치를 걸치고 서서 팔 돌려 일어서는 동작을 연습한다. 그런 나를 보며 중앙의 스프링보드에서 연습하던 W가 말한다.
“OO아, 팔 올릴 때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잖아. 힘 빼고 툭 떨어뜨리면서 돌려봐.”
W는 자신의 동작을 연습하면서도 계속해서 내 동작을 지도한다. 그 사이 느닷없이 K가 가장 왼쪽에 있는 스프링보드 위로 올라와서는, 나를 코치하며 동시에 자신의 동작을 연습하는 W의 자세를 지도하기 시작한다. 정리하자면 그 순간 K는 W를, W는 나를 동시에 코치하고 있다는 말이다.
“누나, 이렇게 해야 되잖아. 그러지 말고, 자 같이 해봐요. 준비, 시이작!”
W와 K가 박자를 맞춰 하나 되어 점프하자, 보드 옆에 서있던 N이 “그렇지!” 하고 우렁찬 소리로 추임새를 넣는다. K는 원, 투, 쓰리, 카운트를 외치는 드러머, W는 리듬감 있는 흥을 더하는 베이스, 아직 코드가 손에 덜 익은 나는 엉성한 기타, “그렇지!” 하고 외치는 N의 목소리는 마이크 테스트를 하는 보컬이다. 우리는 대체로 삐끗하지만, 늘 한 곡 더 밀어붙이는 동네 아저씨 밴드 같다.
먹고 먹히는 바깥세상에서 샌드위치 패널로 된 마법의 옷장 문을 밀어 열고 들어가면, 돌보고 또 돌봄을 받는 사람들이 만드는 따뜻한 공간으로 순간 이동한다.
2025년이 살을 에는 추위 속에서 이렇게 저물어간다.
똑딱똑딱, 오손도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