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를 오랫동안 멈췄습니다. 돈 버는 일을 핑계로 이어가지 못했던 글쓰기를 다시 시작하려 합니다.
12월이 “휴” 하고 한숨을 쉰다.
포근했지만 희뿌연 오늘의 대기는 마치 12월의 한숨이 아직 공기 중에 머물러 있는 것같이 보인다. 돌아보면 시간은 전장을 향한 군화 소리처럼 2025년의 끝을 향해 무자비하게 돌진했다. 물론 시작은 그렇지 않았다. 느긋하고, 여유롭기 그지없었다. 12월 한 달은 나에게 주어진 휴가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게 얼마나 큰 특권인지, 귀한 시간인지 잘 안다.
12월의 시작은 친구와 이태원에서 홀짝이던 글루바인처럼 향긋하고 포근했다. 한 해의 마지막 달에 어울리는 맛이었다. 그 한 달 동안 무슨 일들이 있었나. 맞다. 어느 날에는 멀리서 택시를 타고, 기차를 타고, 다시 택시를 타 예술의 전당까지 온 절친 S와 오페라, '트리스탄과 이졸데'를 보았다. R석 좌석을 나란히 구하지 못해 몇 칸 떨어져 앉아 관람했지만, 두 번의 인터미션마다 우리는 밖으로 달려 나가, 갑자기 찾아온 맹추위에 벌벌 떨면서도 얼음처럼 차가운 화이트와인을 병째로 입에 부어 넣으면서 10대처럼 낄낄거렸다. 거기에 더해 불량학생처럼 흡연 부스 바깥의 구석에서 12월에만 허락된 담배를 천천히 뻐끔뻐끔 피워댔다. S는 내년부터 전자담배로 갈아 탈 계획이었고, 나는 12월 한 달만은 나에게 옛 취미를 허락했다. ‘인생 별 거 있나, 우정이 최고지 ‘ 속삭이며.
다섯 시간 반짜리 오페라가 끝나고 밤이 깊자 우리는 남산 언덕 위의 JJ로 향했다. 추억을 위로하러 갔지만 디제이의 선곡도, 라이브 밴드도 어딘가 심심했다. 무게 있는 음악회 복장을 한 때문인지 괜히 몸을 움츠리게 되기도 했다. 하지만 스파클링 와인 몇 모금에 이내 내 집 앞마당에라도 있는 것처럼 편안해졌다. 다음에는 좀 더 헐벗고, 더 큰 무리로 오자고 다짐하면서 리듬을 탔다.
서울의 화려한 밤놀이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 급기야 한라산에까지 올랐다. 새벽 다섯 시, 프랑스 남부 시골, 텐트 위 밤하늘을 수놓았던 별들처럼, 신비롭게 반짝이는 별들이 새까만 제주도 하늘에 촘촘히 박혀 있었다. 어둠을 유난히 무서워하는 동생과 나란히 그 아래에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새벽 사이 얼어붙은 진흙에 아이젠을 박아 디디며, 언제 도달할지 알 수 없는 정상을 향한 오르막길에 서서히 굴복하고 있었다. 날이 밝아오고 몇 겹 껴입었던 옷을 하나 둘 벗으며 그렇게 한참을 올라 정상에 도달했을 때 시야는 기적처럼 열려 있었다. 저 멀리 성산 일출봉까지 막힘없이 드러났고, 바로 눈앞에는 가운데가 움푹 꺼진 거대한 백록담이 손에 닿을 듯 자리했다. 그 놀라운 지형을 마주하자 제주도의 옛 신화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다. 몸집이 거대한 쭈글탱이 할망이 거친 손으로 한라산 정상을 움켜쥐어 퍼내, 저 멀리 남서쪽 바다로 힘껏 던져버리는 장면 말이다. 장난이었을까, 아니면 그날따라 몹시 화가 나는 일이 있었던 걸까.
신성한 마음으로 한참 동안 백록담을 바라보다 나는 별다른 생각 없이 휴대폰을 꺼내 유튜브에서 '라인의 황금 서곡'을 검색했다. 이곳에서는 그 음악이 정답이라 익히 생각해 왔던 사람처럼. 소니 XM5 해드폰을 꺼내 귀에 딱 맞게 착용하고 노이즈캔슬링 버튼을 누르자, 주변 등산객들의 웅성거림이 한순간에 사라지고 정상에는 고요히 나만 홀로 있었다. 곧 낮고 어두운 베이스 음이 분화구에서 스며 나오듯 미세하게 땅을 흔들었다. E♭의 베이스의 저음부터 시작해 서서히 목관에 이어 금관과 현이 켜켜이 중첩되며 에너지를 모았고, 태초의 에너지가 폭발하면서 땅이 흔들리자 그 사이로 한라산이 우뚝 솟아났다. '라인의 황금 서곡'은 무대 위에 단둘이 있는 나와 백록담을 그렇게 에워싸서 바그너만의 비전으로 흠뻑 적시고 있었다. 그건 처음처럼 낯설고 신비로웠으며, 인간이 만든 음악이라기보다 태초부터 있었던 어떤 원초적인 진동에 가까웠다. 자연과 음악, 그리고 나라는 보잘것없는 존재가 E♭에서 이렇게까지 완벽하게 하나가 될 수 있을까.
경의로움을 뒤로하고 산을 내려와, 나는 어디를 가든 여름에 기어올라 뛰어내릴 만한 바위가 있는 깊고 아담한 물 웅덩이를 찾느라 두리번거렸다. 눈에 띄는 곳이 있으면 부지런히 지도에 표시해 두었다. 이렇게 남북을 가로지르는 동안, 월수금 아침 일곱 시, 하루를 여는 가장 중요한 의식이었던 다이빙 레슨은 한 달 동안 과감히 중단했고, 그 탓에 수영복 차림으로도 12월 제주 성산의 포구에서 뛰어내릴 만큼 ‘첨벙’ 하고 물에 몸을 던지던 감각이 몹시 그리웠다. 그렇다. 아침마다 나를 부드럽게 안아주던 물이, 물의 감각적인 포옹이 그토록.
물론 두말할 나위 없이, 다이빙을 포기하고서라도 반복되는 일과와 가족과 개와 닭을 돌보는 책임, 일의 압박으로부터 해방된 시간은 달콤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다. 익숙한 활동을 모두 멈춘 12월에, 그 빈자리를 대신하는 또 다른 일과가 생기고 말았으니. 게다가 그건 꽤 묵직한 것이었다. 여행과 여행 사이, 연말의 다소 분주한 일정 사이, 나는 어떻게든 오전을 통째로 비워 파주출판도시를 지나 심학산 아래 산남동으로 향하고 있었으니. 심지어 크리스마스이브에조차 말이다. 해마다 의례처럼 반복되는 크리스마스이브 파티 준비로 정신없이 분주해야 할 와중에도, 나는 마치 영화 <애프터 양>에 등장하는 형제자매 주식회사의 안드로이드처럼, 자동으로 프로그램된 하루의 경로를 따르듯 산남동으로 향하고 있었다.
거기에 뭐가 있냐고 묻는다면...... 숨겨둔 남자친구 같은 건 아니다.
그곳에는 올해 11월 문을 연 다이빙 지상 훈련장이 있다. 대형 트램펄린 두 대와 스프링보드 세 대, 층고 높은 공간에 비해 턱없이 자그마한 등유 온풍기를 갖춘 곳. 이름만 그렇지 국가대표 선수 대신 30-60대에 걸친 연령대의 취미생들이 있는 곳. 나는 지난달 말, 현직 국가대표 다이빙 선수가 초빙 강사로 온다는 소식에 작은 호기심으로 첫 발을 들였고, 어쩐지 곧바로 1년 치 회비를 송금하고 있었다. 늘 그렇듯, 그 결정이 어디로 나를 데려갈지는 그때는 아직 알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