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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도 에이전트도 자만심도 없다: 게리 헌트 이야기 4

by 발걸음

여름 휴가 중 연재 5회는 다음 기사를 순차적으로 번역한 내용으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코치도, 에이전트도, 자만심도 없다:

‘클리프 다이빙계의 라이오넬 메시’의 놀라운 이야기


게리 헌트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는 현대 운동선수의 강도로 훈련하지만, 옛 시대 스포츠맨처럼 휴식을 즐긴다. 그는 치열한 경쟁심을 갖고 있지만, 믿기 힘들 만큼 느긋하다. 그는 어떻게 역대 최고의 클리프 다이버가 되었을까?


잔 라이스(Xan Rice) 지음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23/feb/16/no-coach-no-agent-no-ego-lionel-messi-of-cliff-diving-gary-hunt





브라운은 헌트보다 더 외향적인 성격이어서 종종 혼자 클럽에 놀러 갔다가 헌트에게 전화를 걸어 데리러 와달라고 부탁하곤 했다.
2007년 4월 28일 새벽, 브라운은 외출 중 헌트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헌트는 그 전화를 받지 못했다. 아침에 다시 전화가 울렸고 전화를 받은 헌트는 브라운이 뺑소니 교통사고를 당해 긴급 수술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날 오후 브라운은 결국 세상을 떠났다. (가해자는 무면허·무보험 상태였던 농장 노동자로, 사고 후 차량을 버리고 조국인 폴란드로 도망쳤다. 그는 2년 뒤 체포되어 영국으로 송환되었고 징역 5년형을 선고받았다.)

그 후 몇 달 동안 헌트는 정신적으로 완전히 무너졌다.


“브라운이 죽었다는 걸 믿을 수가 없었어요,” 헌트는 말했다.
“그가 죽지 않았다고 상상하기 시작했어요. 어떤 임무를 완수하면 그와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죠.”

그의 머릿속에는 사우스햄턴에서 바스(Bath)까지 80킬로미터를 걸어가라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도중에 길을 잃었고 해가 지자 헛간에서 밤을 보내게 되었는데 그를 고속도로에서 봤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이 그를 발견했다.


잊기 위해, 헌트는 마리화나를 피우고 약물도 복용했지만 절망감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그해 후반 브라이턴에서 열린 총각파티에 초대받았을 때 그는 결국 해변에 혼자 남아 바다를 향해 울부짖으며 눈물을 흘렸다. 브라운이 세상을 떠난 지 1년이 지난 2008년 헌트는 영국 국가대표로 로마에서 열린 10미터 플랫폼 경기 출전을 위해 여행을 떠났지만 정작 다이빙을 해야 할 시간에 그는 거리에서 셰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읽으며 걷고 있었다.


“그가 말하는 게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았어요,” 당시 영국 대표팀 코치였던 아드리안 힌치리프(Adrian Hinchliffe)는 말했다. “게리의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지금 당장 그를 집으로 데려가겠다고 말했죠.”


2009년 레드불 다이빙 시리즈에 처음 출전했을 무렵 헌트의 정신 상태는 다소 나아졌지만, 슬픔은 여전히 날것 그대로였다. 그는 투어 중 사람들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다. “다시는 좋은 친구를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그냥 혼자 살게 될 운명이라고 받아들였죠,” 그는 말했다. 하지만 그 슬픔은 동시에 원동력이기도 했다.


“우리가 하이 다이빙에 대해 함께 이야기했던 모든 것들… 그는 이제 할 수 없게 됐으니까요. 그래서 스스로에게 말했어요. 내가 해내겠다고,” 헌트는 회상했다.
“우리가 함께 꾸던 꿈들을 내가 책임지고 이루어야 한다고 느꼈어요.”


개빈 브라운


헌트의 친구들 사이에서는 지금도 브라운의 죽음이 그를 움직이는 힘이라는 인식이 있다.
“개빈의 죽음은 게리 이야기에서 아주 큰 부분이고 그 슬픔은 절대 그를 떠난 적이 없어요,” 힌치리프는 말했다.


첫 투어 해였던 2009년 헌트는 프랑스 북부의 메츠 근처에 있는 왈리가토(Walygator) 놀이공원에서 일했다.
그는 ‘자신이 타잔이라고 믿는 하이 다이빙 캐릭터’를 연기했다. ‘제인’ 역할은 사빈 라비네(Sabine Ravinet)라는 프랑스 배우가 맡았는데, 그녀는 교도소나 위기 아동을 위한 연극 워크숍도 운영하던 사람이었다. 라비네는 헌트보다 20살 이상 나이가 많았고 영어는 거의 못했다. 헌트 역시 프랑스어가 서툴렀지만, 둘은 몸짓과 인내로 서로를 알아갔다.


“처음 받았던 인상은 그가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는 거였어요,” 라비네는 회상하며 말했다.
“이야기를 들을 때 완전히 집중하는 모습, 아주 부드러운 태도, 그리고 감춰진 어떤 신비로움이 느껴졌어요.”


두 사람은 2010년 파리에서 함께 살기 시작했고, 그 후로 3년간 매년 여름마다 왈리가토에서 계속 일하면서도 헌트는 이스터섬에서 멕시코까지 클리프 다이빙 투어를 위해 세계 각지를 날아다녔다. 그는 점점 놀이공원 생활을 사랑하게 되었다. 다이버들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온 광대, 무용수, 인형극 배우들과 함께 지냈다. 하루의 공연이 끝난 뒤엔 이들은 한 명의 방갈로에 모여 바비큐를 해 먹고 맥주를 마시며 서로에게 기술을 가르쳐주곤 했다. 그렇게 헌트는 저글링을 배웠다. 그는 치유되고 있었다.


“개빈이 더 이상 여기에 없다는 사실이, 내가 프랑스로 이주하고 이런 삶을 살 수 있는 자유를 준 거라는 걸 깨달았어요,” 헌트는 말했다.


2013년 이전 세 시즌 동안 레드불 시리즈를 연속 우승했던 헌트는 그 해 마지막 경기였던 태국 대회에서 우승을 놓쳤다.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기 위해서는 놀이공원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대회에 집중해야 한다고 결심했다. 그해 바르셀로나에서 열린 세계수영선수권 대회에 하이 다이빙 종목이 처음으로 정식 포함되었고, 헌트는 영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참가했다. 하지만 하이 다이빙은 올림픽 종목이 아니었기 때문에 영국 수영협회에서는 헌트에게 아무런 국가대표 유니폼도 제공하지 않았다. 그는 단순한 흰색 티셔츠에 “GBR”이라고 손글씨로 쓴 것을 입고 출전했고, 대회를 은메달로 마무리했다. 그 대회에서 영국팀이 거둔 단 두 개의 메달 중 하나였다. 그리고 2015년, 2019년 세계선수권에서는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그 무렵 브렉시트가 임박하면서, 헌트가 프랑스에서 자유롭게 거주하고 일할 수 있는 권리는 더 이상 보장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는 프랑스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데다 문화적으로도 충분히 통합되어 있었기 때문에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었다. 그는 유창한 프랑스어를 구사했고, 심지어 영어로 된 책을 읽는 것도 멈추고 알렉상드르 뒤마의 『삼총사』와 『몽테크리스토 백작』 같은 프랑스 고전 문학을 읽는 것을 더 즐기게 되었다.


2020년 초 프랑스 시민권을 받은 헌트는 향후 하이 다이빙 대회와 2024년 파리 올림픽의 수영 종목(10미터 플랫폼)에서 프랑스를 대표해 출전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그는 수많은 성공을 거뒀지만, 올림픽에 출전하겠다는 어린 시절의 꿈만큼은 결코 내려놓지 못했다. 프랑스 다이빙 팀은 하이 다이버로서의 헌트를 환영했지만 10미터 플랫폼 종목은 상황이 달랐다. 이 종목은 상대적으로 젊은 선수들에게 유리하며, 게다가 헌트는 10년 넘게 경기에서 머리부터 입수하는 다이빙을 하지 않았다.



게리 헌트와 자드 지예가 2022년 헝가리 부다페스트에서 열린 Fina 세계 선수권 대회 혼성 10m 싱크로 결승전에서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의 도전이 실패로 끝날 듯 보였다. 하지만 2021년 말, 클레망스 모네리(Clémence Monnery)가 프랑스 대표팀의 수석 코치로 부임했다. 훈련 중인 헌트를 지켜본 뒤 모네리는 헌트를 올림픽 팀에 포함시키고 싶다는 결정을 내렸다.


“게리는 ‘à part’예요,” 그녀는 말했다. 즉, 남들과는 다른 특별한 존재라는 뜻이다. “다이버들이 대부분 10미터 높이에서 두려움을 느끼는데 27미터의 제왕이 무서울 리 없죠!” 그리고 그녀에 따르면, 헌트는훈련 중에 새로운 기술을 한 번 성공시키면 대회에서도 그걸 곧장 시도하는 자신감을 가졌다. 같은 동작을 반복해 연습할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올림픽 출전은 여전히 쉽지 않은 목표다. 헌트의 친구들과 경쟁자들조차 그가 이 도전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고 있다.

2009년 레드불 시리즈 우승자였고 현재는 레드불 클리프 다이빙의 스포츠 디렉터로 활동 중인 올란도 두케는 말했다.

“완전 미친 짓이에요! 마흔에 올림픽에 출전한다면 그건 엄청난 성취가 될 거예요.”


어린 시절부터 헌트를 지도했던 힌치리프는 말했다. 그는 현재 호주 다이빙 대표팀에서 활동 중이다.

“도전 자체만으로도 큰 영감을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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