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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도 에이전트도 자만심도 없다: 게리 헌트 이야기 5

‘클리프 다이빙계의 리오넬 메시’라는 놀라운 이야기

by 발걸음

여름 휴가 중 연재 5회는 다음 기사를 순차적으로 번역한 내용으로 대체할 예정입니다.



코치도, 에이전트도, 자만심도 없다:

‘클리프 다이빙계의 라이오넬 메시’의 놀라운 이야기


게리 헌트는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다. 그는 현대 운동선수의 강도로 훈련하지만, 옛 시대 스포츠맨처럼 휴식을 즐긴다. 그는 치열한 경쟁심을 갖고 있지만, 믿기 힘들 만큼 느긋하다. 그는 어떻게 역대 최고의 클리프 다이버가 되었을까?


잔 라이스(Xan Rice) 지음
2023년 2월 16일 목요일


https://www.theguardian.com/sport/2023/feb/16/no-coach-no-agent-no-ego-lionel-messi-of-cliff-diving-gary-hunt






폴리냐노 아 마레의 7월


작년 가을 이탈리아의 폴리냐노 아 마레(Polignano a Mare)에서 열린 대회에서는 선수들이 다이빙 플랫폼에 도달하기 위해 숙소에서 구시가지를 걸어 통과하고 경비원의 승인을 받아 절벽 옆 아파트로 들어가야 했다. 그 아파트의 발코니 위에는 반짝이는 만을 향해 두 개의 플랫폼이 뻗어 있었다. 낮은 쪽 해수면에서 21미터 위에 설치된 플랫폼은 2014년 투어에 합류한 여성 선수들 용이었다. 남성 선수들은 발코니에서 사다리를 타고 6미터 더 높은 플랫폼으로 올라갔다. 27미터는 남자 다이빙 경기에서 허용된 최대 높이인데 그 이상 올라가면 하강 속도가 너무 빨라져 추가 회전 동작을 수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며 부상 위험도 크게 증가하기 때문이다.


정오 12시 30분 선수들은 테라스에서 연습 다이빙을 준비하며 스트레칭을 하고 매트 위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있었다. 다이빙 시간이 다가오자 대부분의 다이버들은 동일한 루틴을 따랐다. 먼저 플랫폼 난간 너머로 몸을 내밀어 착수 지점 해역에서 물을 걷고 있는 네 명의 안전 요원 중 한 명의 시선을 끌었다. 이어 플랫폼 위에 놓인 플립플롭 한 켤레를 안전 요원에게 던졌다. 다이빙을 마친 후 다시 절벽 옆 아파트로 돌아갈 때 자갈 해변과 돌바닥, 좁은 골목을 지나야 했기 때문이다. 그다음 손짓으로 안전 요원들에게 물을 ‘탁탁’ 치게 하는데 이는 다이버가 공중에서 바다의 파란색과 하늘을 구분하고, 물 표면이 어디인지 판단하는 데 도움을 준다.


플랫폼 위를 걷는 것만 봐도 내 심장이 두근거렸다. 어떤 선수들은 가슴에 십자가를 그리거나 허벅지를 탁탁 두드리며 마음을 북돋았다. 때때로 돌풍이나 불안감에 휩싸여 점프 직전 난간에서 한 발 물러나는 선수도 있었다. 2008년 올림픽에서 톰 데일리와 호흡을 맞춘 블레이크 올드리지(Blake Aldridge)는 2011년 프랑스 레드불 대회 데뷔 당시의 공포를 이렇게 회상했다.

“강풍이 불고 얼음장 같은 날씨였어요. 수영장 다이버들은 결코 경험해보지 못할 조건이었죠. 난간을 내다보고 그대로 플랫폼을 벗어나 내려왔어요. 할 수가 없었어요.”

결국 그는 공중제비 하나짜리 단순한 다이빙을 시도했지만, 착수 시의 충격에 엄청나게 놀랐다. 그는 트위스트를 시도할 만한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어린 시절 친구인 게리가 플랫폼에서 함께 뛰어내리자고 친절하게 도와준 덕분에 용기를 얻었다. 이후 그는 클리프 다이빙에 빠져들었다.

그는 “그 3초 동안은 깨어질 것 같지 않은, 마치 슈퍼맨이나 히어맨이 된 기분”이었다고 했다. 올드리지는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았지만 공포는 결코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그는 올림픽 선수로서 클리프 다이빙은 쉽게 해낼 줄 알았으나 곧 그것이 완전히 다른 스포츠임을 깨달았다.


“수영장 다이빙과는 다른 종목이에요.

게리는 단연코 압도적인 최고예요. 독보적인 재능이라고요.”



red-bull-cliff-jump-2017.jpg


폴리냐노의 플랫폼 위에서 헌트는 너무나 여유로웠다. 플랫폼에서 돌아갈 쪼리가 필요 없었는지 챙기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지름길을 택했다. 난간 가장자리에 앉아 다리 끝을 살랑살랑 흔들다가 일어나 낭떠러지로 뛰어들었다. 물위로 올라오자마자 제트스키 손짓을 뿌리치고 스스로 절벽 쪽으로 헤엄쳤다. 여러 번 시도 끝에 한 손으로 작은 암벽 틈을 겨우 붙잡아 몸을 끌어올렸고 마치 클라이머처럼 벼랑을 타고 올라 플랫폼에 도착했다. 경기 시작 5분 전이었다.


내가 레드불 관계자에게 “이게 정상적인 행동인가요?”라고 묻자 그는 “게리에게는 정상적인 행동이지요”라고 답했다.


레드불 시리즈의 상금은 많은 스포츠에 비해 적은 편이다. 2013년 헌트가 놀이공원 일을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경쟁 다이빙에 집중하기 시작했을 때, 시리즈의 8개 대회 남녀 우승자는 각자 약 5,000유로를 받았고, 시리즈 챔피언에게는 12,000유로의 보너스가 주어졌다. (현재는 대회 우승자에게 7,085유로, 전체 우승자에게 16,000유로가 지급된다.) 하지만 투어에서 여행 경비를 지원해주고 헌트가 자주 우승했기 때문에, 그는 상금만으로도 생활할 만큼의 수입을 벌고 있었다. 지금도 그는 대회 상금과 프랑스 수영 연맹에서 받는 소액의 주거 지원금을 주 수입원으로 삼고 있다.


화려한 스포츠에서 독보적인 선수인 헌트는 후원 계약이나 광고를 통해 훨씬 더 많은 수익을 올릴 수 있다. 경력 초반에는 한 건설 회사와 소규모 계약을 맺었지만 그 회사 로고가 박힌 모자를 항상 써야 한다는 조건이 너무 스트레스여서 그만두었다. 현재 헌트의 유일한 후원사는 호주의 수영복 회사 버지 스머글러(Budgy Smuggler)로, 대회 때 경쟁용 수영복을 입는 조건으로 연간 몇 천 파운드 정도의 후원을 받고 있다.

폴리냐노에서 나는 헌트에게 이렇게 많은 레드불 시리즈 우승 경력이 있는데도 왜 영국 출신의 젊은 도전자 에이던 헤슬롭(Aidan Heslop)이나 여성 부문 선두인 호주 다이버 리안난 이플랜드(Rhiannan Iffland)처럼 레드불 소속이 아니냐고 물었다. 헌트는 한때 지원했지만 연락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했다. 이런 푸대접은 누군가를 씁쓸한 기분이 들게 하기도 하지만 헌트에게는 ‘온화하다’라는 말조차 부족할 정도로 평온했다. (헌트의 파트너 라비네는 “우리가 함께한 12년 동안 그가 화난 모습을 본 적이 없다”고 했다.) 헌트는 “아마 저는 레드불 스타일에 잘 맞지 않을 걸요. 저를 홍보하지도 않고, 다른 익스트림 스포츠도 별로 좋아하지 않아요. 저는 피아노를 연주하지요!”라며 웃었다.


“하지만 나는 매우 행복해요.

나중에 돈을 더 벌지 못했다고 후회할 일은 없을 거라 확신해요.”




금요일에 치러진 첫 두 라운드 다이빙에서 헌트는 2위였다. 무엇보다 시리즈 타이틀을 놓고 경쟁 중인 주요 라이벌들보다 앞서 있었다. 이 시점까지는 난이도가 제한되어 있어 다이버들이 가장 어려운 기술을 시도할 수 없었다. 하지만 남은 두 번의 다이빙에서는 제한이 없었다. 헌트가 투어 초창기에 활약하던 시절 이후로 스포츠는 발전했고 이제 그는 가장 어려운 다이빙 기술 레퍼토리를 갖추지 못해 불리한 상황이었다. 난이도가 높은 기술을 잘 수행하는 다이버들이 있으면 헌트가 따라잡기 어렵게 되었다. 두 명의 선수는 특히 시즌 내내 꾸준히 고난도 기술을 선보여 왔다. 폴리냐노 대회에 참가한 헤슬롭은 전체 2위였다. 20살인 그는 유튜브로 클리프 다이빙을 보며 자란 세대로 헌트가 그의 우상이었다. 그보다 앞선 시리즈 선두는 사려 깊은 루마니아인 카탈린-페트루 프레다(Cătălin-Petru Preda)로 헌트와는 좋은 친구이자 우승에 가장 위협이 되는 선수다.





대회 이틀째 바람이 거세져 다이빙 플랫폼 아래에 놓인 요가 매트들이 흩날렸다. 헌트는 세 번째 다이빙으로 2009년에 그가 처음 선보인 유명한 ‘트리플 쿼드’를 선택했다. 그는 플랫폼을 경쾌하게 건너가 가장자리에 섰고 관중들에게 인사를 한 뒤 등을 돌려 안쪽을 바라보았다. 한 번 숨을 들이마시고 아주 작게 점프하더니 무릎을 굽히고 팔을 날개처럼 휘저으며 뒤로 돌렸다. 공중으로 솟구치며 몸을 코르크마개처럼 비틀고 뒤집었다. 왼팔은 머리 주위를 감싸고 오른팔은 가슴을 감싼 채였다. 세 번 더 비틀고 두 번 더 공중제비를 돌다가 몸을 바로 세워 거의 물보라 없이 입수했다. 마지막 라운드를 앞두고 헌트는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다음 날 일요일 점심 무렵 마을은 인산인해였다. 대회 시작 전 포카치아 한 조각을 사기 위해 사람들은 한 시간 넘게 줄을 섰다. 해변은 너무 붐벼 경비원들이 추가로 출입하는 사람들을 막았다. 거대한 스피커에서 음악이 울려 퍼졌다.


여자 선수들이 먼저 다이빙했고 이플랜드가 대회를 우승하며 통산 여섯 번째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어 남자 선수들이 역순으로 다이빙했다. 마지막 다이버로 헌트가 남아 있었고, 헤슬롭은 1위로, 프레다는 근소한 차이로 2위였다. 헌트는 플랫폼 가장자리로 걸어가 관중들에게 손을 흔들고 무릎 사이로 손을 움직이며 작은 춤을 춘 뒤 다이빙했다. 물 위로 떠오르자 물속에 있던 카메라맨과 하이파이브를 나눴다.





모든 다이버와 관중은 해변에 설치된 대형 스크린을 바라보며 배 위에서 심판들이 점수를 보여주길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환호성이 터졌다. “게리 헌트, 전설이 다시 한번!” 사회자가 외쳤다. 평균 점수 8.5점으로 헌트는 헤슬롭을 제치고 근소한 차이로 전체 시리즈 선두에 올랐다. 헌트는 TV 카메라와 관중을 향해 샴페인을 뿌린 뒤 다른 선수들이 모두 떠난 후에도 해변에 남아 팬들과 사진을 찍으며 시간을 보냈다.


그날 저녁 우리는 투어 중 가장 가까운 친구들 몇 명과 함께 저녁을 먹으러 갔다. 러시아 출신인 아르템 실첸코와 니키타 페도토프, 그리고 우크라이나 출신 올렉시 프리고로프였다. 헌트는 러시아어를 할 줄 아는데 러시아어를 배우게 된 이유가 바로 투어에 참가한 러시아어권 선수들과 대화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러시아를 여러 번 방문했고 종종 실첸코와 시간을 보냈다. 남자들은 와인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농담을 주고받았다. 누가 가장 좋은 돌고래 소리를 낼 수 있는지 겨루기도 했다. 헌트는 그날 두 번째 대회도 우승했다. 대체로 그는 조용했고 만족스러워 보였다. 이후 그룹은 마을 중앙 광장에서 열린 애프터파티에 합류했다. 자정 직전에 그를 떠났을 때 헌트는 모자를 옆으로 쓴 채 흐느적거리는 발걸음으로 걸었다. 다음날 아침 깨어났을 때는 호텔로 어떻게 돌아왔는지 전혀 기억하지 못했다.


4주 후 헌트는 시리즈 마지막 경기가 열린 시드니 항구에 제시간에 도착했다. 그는 4년 연속 시리즈 우승 그리고 통산 10번째 우승을 확실히 하기 위해 또 한 번의 승리가 필요했다. 이 위업은 아마도 다시는 깨지지 않을 기록일 것이다. 역시 마지막 다이빙이 승부를 가를 순간이었다. 대회 2위이자 전체 순위 2위였던 헤슬롭은 헌트가 플랫폼 가장자리에 서 있는 모습을 차마 보기 어려웠다. 헌트가 물에 뛰어들자 헤슬롭은 무릎을 꿇고 머리를 감싸 쥐며, 또 다시 ‘제왕’이 해냈다는 사실을 알았다. 온 얼굴에 미소를 띠고 물에서 나온 헌트는 보안 울타리를 넘고는 라비네를 끌어안았다. 내가 축하 문자를 보냈을 때,그는 최근 타이틀보다도 다가오는 호주 휴가를 더 기대하는 듯했다.


“후후,” 그가 썼다. “je suis en vacances!!!” (나 휴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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