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빙 지상 훈련장의 C 코치

by 발걸음

정해진 시간표의 구속 없이, 아무 때나 다이빙 지상 훈련을 하면 참 좋겠다는 순간적인 기분에 11월 말, 1년 치 회비를 송금했다. 그 결정은 12월의 마지막 날에 접어든 지금, 나를 어디로 데려다 놓았을까.


의무로부터 해방되어, 한없이 자유롭게 여행을 다니고 책도 마음껏 읽고 싶었던 12월은 반드시 그렇게만은 흘러가지 않았다. 화려하고 분주했던 서울의 각종 행사를 뒤로하고 남쪽으로, 더 남쪽으로 내려갔다가 다시 파주로 돌아오는 사이, 12월은 이미 떠날 채비를 하고 있었다. 모든 반복되는 일과를 잠시 멈추고자 의도한 시간이었음에도 아이러니하게 내게는 새로운 루틴이 또 하나 생겼다. 앞선 글에서도 언급했듯, 마치 자동 프로그래밍된 ‘형제자매 주식회사’의 안드로이드처럼, 파주에 있는 동안 나는 틈만 나면 심학산 자락 산남동에 자리한 훈련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나도 모르게, 마치 애초에 짜여 있었던 것처럼.


처음 이곳을 찾았을 때의 기억을 더듬어보면, 11월 말 회원 등록을 하고 처음, 아니 두 번째 방문이었나 보다. 모든 것이 아직 낯설던 그날, 샌드위치 패널로 된 문을 열고 훈련장 안으로 들어서며 코치 선생님을 찾아 두리번거렸지만 그는 보이지 않았고, 대신 몇몇 회원들만이 분주하면서도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훈련을 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선생님은 부상 치료로 병원에 가 계셨다.


나는 열기라고는 전혀 느껴지지 않는 냉랭한 난로 앞, 두툼한 매트 위에서 몸을 풀고 있었다. 그때 회원들 중 이미 안면이 있던 C가 다가왔다. 준비운동을 함께 해보자고 했다. 내가 보기에도 그에게 맡긴다면 믿을 만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C는 이곳을 드나드는 회원들 가운데 기술로 보나 난이도로 보나 손에 꼽히는 실력을 갖춘 데다가 다이빙에 쏟는 시간과 열정만큼은 누구와 견주어도 뒤지지 않아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트 위에 나란히 앉았던가, 아니면 마주 보고 앉았던가. 정확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앉아서 몸을 풀기 시작했다. 그는 마치 내가 운동이라는 것을 처음 접한 사람이라도 되는 양, 동작 하나하나를 차분히 설명하며 직접 시범을 보였다. 다운 독 자세를 취하며 그는 말했다.


“오, 꽤 잘하는데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웬만하면 건너뛰고 싶은 복근 강화 운동이 남았다.


“OO 씨, 이건 ‘코르셋 복근’ 만드는 데 디기 좋아요. 이렇게 한 번 해봐요.”


"코르셋 복근요!"


나는 임박한 고통을 예감하고 속으로 외쳤다.


‘난 말이에요, 코르셋 같은 건 필요 없는데!’


그런데도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C와 나란히 엎드려 왼쪽으로, 다시 오른쪽으로 무릎을 가슴팍까지 끌어올리며 허리를 감싸는 근육들을 성실하게 쥐어짜고 있었다. 필요 없다고 속으로 말하던 바로 그 ‘코르셋 복근’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그 사이 또 다른 회원이 매트 옆 등유 난로가 있는 곳으로 다가와 너스레를 떨었다.


“특별 연회원이 오셨으니 특별히 난로는 켜줘야지. 우린 세 명씩이나 있어도 평소엔 이런 거 안 켠다고!”


여기서 말하는 ‘특별 연회원’이란 다름 아닌 나였다. 나중에야 알았지만, 정작 그들은 연회원이 아니라 무려 3년 회비를 한 번에 입금한 VVVIP 들이었다.


어쨌든 나는 C의 아름다운 친절에 화답하기 위한 작은 제스처로, 근력 강화 운동이며 스트레칭이며 모든 것을 전부 처음 시도해 보는 사람인 양 즐겁게, 심지어 엄살까지 피워가며 열심히 따랐다. 그중에는 철봉에 매달려 빠른 속도로 무릎을 들어 올리는 동작도 있었다. 이 루틴은 각종 다이빙 동작을 수행할 때 꽤 유용해 보였다. 팔을 위로 길게 뻗어 체중과 중력을 이용해 몸 전체를 늘리면서 동시에 복근까지 단련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무릎을 가슴팍까지 잡아당기는 동작은 웬만하면 피하고 싶었지만.


C는 철봉을 잡을 때 손아귀 힘이 약하거나 손목이 약한 사람들이 쓰는 보조 장갑을 내 손에 정성스럽게 끼워주며 말했다.


“내가 손가락에 고장이 나서 이걸 쓰기 시작했는데, 손아귀 힘 하나도 안 들어가도 철봉 잡는 게 디기 쉬워요. 이게 제대로 사용하려면 연습이 좀 필요하긴 한데, 먼저 손바닥을 여기에 댄 다음 이걸 이렇게 돌려 고정해 봐요.”


그는 보조 장갑을 제대로 착용하려면 연습이 필요하다는 점을 여러 번 강조했다. 나는 괜히 장단을 맞춰주고 싶은 마음에 생각보다 어렵다고 조금 호들갑을 떨며 장갑을 끼고 철봉에 매달렸다.


“그렇게 하는 게 맞아. 어때요, 디기 편하죠?”


그의 설명대로 보조 기구를 착용하니, 내 손 크기에 비해 지나치게 굵었던 철봉에 매달리는 일은 한결 수월해졌다. 하지만 그다음 문제가 기다리고 있었다.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동안 어깨 통증은 점점 커졌고, 나는 마치 처형당하는 반역자가 된 기분이었다. 조금만 심심하다 싶으면 땅따먹기 전쟁이나 일삼던 옛 영국 섬나라의 야만인들이 반역자를 이런 모양새로 매달아 놓고 팔을 조금씩 찢어놓지 않았던가. 물론 가랑이도 함께. 혹은 배를 가르기도 했다. 은혜로운 즉결 처형이 아니라, 그들 자신이 고통을 느끼며 죽어가는 과정을 끝까지 스스로 지켜보게 하도록. 잘못하다가는 나 역시 내 팔이 찢겨나가는 장면을 눈앞에서 목격하게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이런 나와 달리 C는 다이빙에 대한 진심 어린 애정으로, 긴 시간 시범을 보이고 설명을 이어가면서도 끝내 웃음을 잃지 않았다. 별것 아닌 작은 발전도 즉각 알아차려 칭찬을 덧붙이는 태도만 보아도, 그가 이 운동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신체 각 부위에 대한 폭넓은 지식과, 이름조차 생소한 근육들의 명칭이 정육점 주인처럼 그의 입에서 술술 흘러나오는 것을 듣고 있자니, 존경스러운 마음이 저절로 따라왔다.


어느새 진짜 코치 선생님이 돌아왔다. 그는 C가 나를 개인 지도하는 상황을 개의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 자연스럽게 여기는 듯 보였다. 곧 나는 이곳에 진짜 코치 외에도 다양한 코치를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C 코치의 친절은 나만을 향한 것은 아니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나는 새로 가입한 회원이라면 누구나, 혹은 기술에 막혀 멈춰 서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머지않아 그의 시야에 자연스럽게 들어오게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C는 그런 이들을 놓치지 않고 함께 했다. 특별하다기보다는, 늘 그래왔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런데 몇 주가 지나자, 이 베풂 앞에서 한없이 황송하던 나는 다른 감정을 느끼게 되었다. 벤치 위에 엎드린 C가 양쪽 다리에 고무밴드를 끼고, 다리를 가운데로 모아 위로 들어 올리는 동작을 시범보이며, 새로 온 회원을 향해 고개를 돌려 예의 그 모습 그대로 차분히 설명하는 장면에 혼자 웃음을 삼키고 있었던 것이다.


“함 봐봐요. 여기 엉덩이 윗부분에 힘 들어가는 거 느껴지죠? 이 감각이 디기 중요해요. 고무밴드를 발에 끼면 운동이 더 잘 돼.”


나는 얼마 전, 그가 바로 같은 동작을 하며 설명할 때, 그 곁에 서 있던 사람이 다름 아닌 나였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아마도 오늘은 고마움에 절절매는 또 다른 신입 회원도, 시간이 흐른 뒤 어느 날 C가 다른 누군가를 같은 방식으로 세심하게 지도하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지금의 나처럼 잠시 미소를 삼키게 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오늘의 신입은 과거의 나였고, C의 친절은 누구에게나 한결같았을 테니까.


그날처럼 진짜 코치 선생님이 부재하더라도, 이곳에는 C를 비롯해 많은 ‘코치들’이 있었다. 등유 난로의 불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었지만, 훈련장은 어쩐지 참 따뜻하게 느껴졌다. 자발성만으로도 많은 것들이 굴러가는 공간이라는 인상이 들었다. ‘자칭 코치들’은 배경도, 나이도, 사는 지역도 모두 달랐다. 다만 다이빙이라는 스포츠에 대한 애정 하나로 묶여, 자신들에게도 귀한 훈련 시간을 초보 회원들을 돌보는 데 기꺼이 내어주고 있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K도 있었다. 처음에 나는 그를 설비 담당자나 설치 기사쯤으로 오해했다. 내가 갈 때마다 항상 그곳에 있었고, 그때마다 구석 어딘가에서 무언가를 설치하고,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궁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K 이야기는 이어지는 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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