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에필로그: 안녕하세요. ADHD아들 티라노 본인입니다.

by 그림크림쌤

안녕하세요, 직접 인생 스토리 풀러 온 티라노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때까지만 해도 전 공부에 성실했습니다.

제 영어 선생님은 굉장히 빡센 분이셨습니다. 저는 숙제를 꼬박 다 해가고 단어 테스트를 매번 통과하는 몇 안 되는 아이였습니다. 높은 반은 아니었지만요.


아무튼. 웃긴 건 그때도 항상 숙제를 미루다가 밤에 시작했습니다. 물론 당시에는 알 바가 아니었습니다. 어차피 다 해가니까요.

그러나, 초6 후반기부터 저는 본격적인 몰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학원 가는 날에 일정들(2주 연속 양가 부모님 칠순잔치가 있었다_덧)이 연속으로 겹쳐 제 루틴이 무너졌거든요. 저는 한순간 숙제를 가장 안 하는 아이로 꼬꾸라졌습니다. 또한, 부모님과 타협하는 과정에서 학원을 하나 둘 그만두며 공부에서 멀어져 갔습니다.


한편, 수학 쪽에선 저는 오히려 성장을 거듭했습니다.

가장 낮은 반이었던 저의 재능을 데스크 선생님과 원장님이 알아보신 것이죠. 저는 반 레벨이 떡상하여 저보다 경험이 많은 친구들과 수업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 때문이었을까요? 저는 유달리 적응을 어려워했습니다. 레벨이 떡상한 부작용으로 처음부터 심화 책으로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운이 지지리도 없는지 역대급으로 빡센 선생님이 걸려서 허우적대기 바빴습니다. 방학 특강 때 9개 단원을 일주일 치 숙제로 냈던 지금 선생님보다 훨씬 빡셌으니까요. 웃을 땐 웃어줬는데 아닐 때는 호랑이가 따로 없었죠.


근데 뒤에서는 또 어찌나 츤데레 같은 지 "아가야 많이 힘드니?"라며 저를 많이 신경 써주셨습니다. 감동도 느꼈지만 진짜 미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 적도 있었습니다.

제가 중2 때 얘기인데요. 저는 개념 설명을 개판으로 듣다가 집에서 혼자 개념을 추리해서 끼워 맞출 때가 많았습니다.


수학 1, 지금으로 치면 대수(고2 수학_덧). 그 단원을 처음 배울 때였습니다. 수학 1 수업 역시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렸습니다. 공통수학과 달리, 수학 1은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개념을 추리하는 데에 실패했습니다. 뭘 알아야 숙제를 하죠. 선생님은 늦게 제 문제집이 텅텅 빈 걸 발견하시고 저를 대차게 혼내셨습니다.


선생님은 제게 인터넷 강의를 들으라며 인강비를 결제하시고 문제집을 사주셨습니다.(못 따라가는 티라노 수준에 맞는 기본 내용을 다루는 수업이었고, 사비로 사주셨다_덧)

지금 생각하면 어찌나 센스가 넘치는지... 아무튼 저는 '이것도 안 들으면 큰일 난다'는 생각에 엄청 열심히 들었습니다.


뭐.. 다행히 잘 넘겨서 지금까지 수학은 잘하고 있습니다.

제 인생 스토리 생각보다 별거 없죠? 근데 17년 살았는데 인생이 드라마틱하면 그거대로 이상한 거 아닐까요? 여하튼 감사합니다. 티라노였습니다.




그 어떤 이야기도 좋고, 길이도 상관없으니 자유롭게 본인에 대해 써보라고 했습니다.

ADHD 아들을 키우면서 6학년 2학기, 그 오랜 루틴을 깨뜨린 연이은 칠순잔치 이후로 맘 편한 날이 하루도 없었습니다. 사춘기까지 온 ADHD 아들을 키우면서 '이보다 더 드라마틱할 수 없다'라고 생각해 온지가 벌써 4년째입니다.


그런데 티라노 본인은 정작 '내 인생이 드라마틱하지 않다'라고 말해 놀랐습니다. 그 부분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었고요. 확실히 티라노 본인보다 지켜보는 제가 더 불안하고 힘들었나 봅니다. '앞으론 더 마음의 중심을 잘 잡아야겠다' 결심하게 됩니다.




정말로 위기는 기회인가 봅니다.

지금 다니는 수학학원 최상위반에 합격할 수 있었던 게 학원 선생님이 사비로 끊어주신 수학 1 인터넷 강의와 문제집 덕분인 줄 몰랐습니다.


수학학원에서도 수업에 집중을 안 했던 것도, 그래놓고 추리로 숙제를 풀었다는 것도 안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인터넷 강의를 집에서 열심히 들을 때도 당연한 줄 알았습니다. 그래도 학원 수업은 소규모라 열심히 듣는 줄 알았거든요. 이 사실을 얼마 전 고백하길래 요새도 그런지 물었습니다. 정말인지 모르겠지만 "요샌 안 그래~"랍니다.



오늘 담임선생님 상담을 받고 왔습니다.

집은 가장 편안한 공간이라 ADHD 증상이 덜 드러납니다. 그러니 ADHD 증상이 어느 정도 개선되었는지 파악도 집에서는 힘들기도 합니다. 학교 선생님 피드백을 꼭 받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ADHD라 또래보다 전두엽 발달이 2~3살 어리며 눈치가 부족하다는 제게 자꾸만 갸우뚱하십니다.

"저는 ADHD에 대해 따로 편견이 있진 않아요. 전두엽 이런 건 모르겠지만 티라노 보면 두뇌 회전도, 눈치도 빨라약삭빨라요!"


"제가 볼 땐 그냥 공부하기 싫은 전형적인 고1 남학생이에요. 공부를 안 해서 오는 불안과 스트레스보다 귀찮고 하기 싫은 마음이 훨씬 커서 안 하는 것일 뿐이에요."


"특정 과목만 아주 잘하는 아이들이 더러 있었어요. 이런 아이들도 대학을 가긴 가요. 요새 인원이 줄어 대학입장이 힘들거든요. 어느 대학을 가느냐가 문제예요. 심지어 어떨 땐 더 잘 가기도 해요."


ADHD 아이 티라노가, 세상에 눈치가 빠르답니다. 게다가 전형적인 고1이랍니다. 이 말이 머리에 쏙 들어와 나갈 생각을 안 합니다. 약물치료 2년 반, 꼬박꼬박 약을 먹더니 전두엽이 조금 뚫리긴 했나 봅니다. 부모의 바른 지도와 이끎, 티라노가 다시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나 봅니다.




작은 것부터 시도하려 합니다.

인내심을 가지고 천천히 시도하겠습니다.

- 널브러진 옷 스스로 치우기

- 등하교 자전거로 다시 하기(발목 인대사건 이후 습관이 되어 여전히 차로 다니고 있거든요)

- 늦어도 12시 전에는 자기

- 학교에서 자지 않고 수학숙제 열심히 하기


강압적인 통제나 잔소리는 여전히 안 하려 합니다. 감당할 수 있는 수준만큼만 조금씩 올리며 논리적 설득을 거쳐 바른 방향으로 이끌어보려 합니다.


못해도 괜찮아는 계속 말해주려 합니다. 잘 해내야 한다는 말은 여전히 안 할 겁니다. 대신 이렇게 말해주려 합니다.

'못해도 괜찮아. 그냥 할 수 있는 만큼 열심히 하자. 하고픈 게 생길 그날을 위해 '나도 노력이 가능한 사람'이라는 건 깨달아야 하니까!'




글을 써야 한다는 압박감과 미루기를 이겨내고 용기 내어 글을 써 준, 자라나는 새싹 ADHD 티라노 씨에게 좋아요와 댓글 부탁드립니다.


활화산처럼 두렵다던 공부 책상에서 글을 쓰고 있는 티라노 씨.


지금까지 <사춘기 ADHD아이 학군지에 던져지다> 브런치북을 읽어주시고, 라이킷과 댓글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지금까지처럼 최선을 다하며 살겠습니다.



keyword
이전 27화위기가 불러온 나비효과와 여전한 문제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