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를 거의 시키지 않은 채 초등 저학년을 보낸 교사자녀 이야기
교사들 사이에는 '교사 자녀는 모 아니면 도'라는 말이 있다.
학교에는 엄친아나 엄친딸을 둔 선생님들의 비율이 타 집단에 비해 이상하리만치 참 높다. 공부도 아주 잘하고, 해마다 학급회장을 하거나 전교 학생회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과 사회성도 좋으며, 공부 이외로도 상도 참 잘 탄다. 자녀들이 과학고나 자사고에 다니는 선생님들은 또 어찌나 많은지...
교사 자녀가 '모'가 된 실제 사례들 중 기억나는 몇 가지만 읊어보겠다. 자녀가 셋인데 첫째와 둘째는 서울대, 막내는 과학고를 조기졸업하고 카이스트에 갔다는 선생님, 아들 둘이 전부 의대에 간 선생님, 자녀 셋이 전부 미국 명문대에 다닌다는 선생님 등 셀 수가 없다. 공부와 독서습관은 어릴 때부터 잡아주어야 함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그렇게 자녀를 키운 선생님들의 경우이다.
당연히 반대로 '교사 자녀가 도'인 경우도 의외로 꽤 많다. 공부에 전혀 관심이 없어 전 과목 성적이 반에서 하위권인데 알고 보니 부모님 중 한 분이 선생님인 경우이다. 이 중 대부분은 공부를 못하는 걸 빼면 아무 문제가 없고, 오히려 밝고 따뜻하게 자란 학생들도 많았다. 그렇지만 교사 자녀 중엔 수업을 방해하여 매 수업시간마다 지적을 받거나 심지어는 학교에서 '문제아'인 경우도 꽤 있었다.
'아이를 낳으면 공부로 스트레스 주며 키우지 말자'라고 늘 다짐했었다.
인문계고 교사였던 나는 성적이 매우 나빠 사실상 대학 진학이 어려운 데도 불구하고 성적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아 힘들어하는 학생들을 많이 보아온 터였다. 솔직히는 '공부에 소질이 없는데 공부를 저렇게 놓지 못하고 힘들어할까. 공부 말고도 분명, 좋아하고 잘할 수 있는 게 있을 텐데' 싶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인서울 대학에 갈 수 있는 10%의 학생들의 발판이 되어주는 역할뿐인, 90%에 해당하는 대부분의 공부 못하는 학생들이 너무 안쓰러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면 나머지 90% 중에서도 아주 공부를 못하던 학생들이 졸업 후 의외로 아주 잘 살고 있어 놀라움과 감동을 안겨주는 사례가 꽤 많았다. 내가 인문계고에서 본 미래의 행복은 성적순과 반드시 일치하는 것은 아니었다.
티라노씨는 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공부를 못해 '도'에 해당하는 교사 자녀였다.
공부로 스트레스 주며 아이를 키우고 싶지 않았기에 받아쓰기와 같은 중요한 최소한의 공부만 시켰다. 수학 공부를 따로 안 시키는데도 수학 단원평가 점수도 80점은 맞아오니 괜찮다고 생각하고 수학도 따로 문제집조차 시키지 않았다.
다른 아이들은 보통은 수학 단원평가에서 90점 이상을 받으며, 80점이면 반에서 하위권이라는 것을 휴직을 해서 학부모 총회에 참석할 수 있게 된 이후에야 알았다. 담임선생님께서 "저희 반에는 기초학력 미달자가 한 명도 없어요."라고 말씀하시는데 내 쪽을 쳐다보며 말씀하신 것이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나는 총회가 끝나고 자세한 상황을 여쭈어보았고, 다소 충격적인 피드백을 듣게 되었다. "티라노씨는 기초학력 진단검사에서 기준점수를 통과하기는 했지만 아슬아슬했어요."라고 말이다. 내 아이가 우리끼리 하는 말로 '도'에 해당하는 교사 자녀였다.
"어차피 꼴찌 하는 거 학군지에서 꼴찌 하면 지금보다는 낫겠지!"
전세 만기가 되어 이사를 어디로 갈지를 논의하던 중 내가 남편에게 한 말이었다. 우리가 가기로 한 동네는 유명 학군지 중 한 곳이었고, 내가 자란 동네이기도 했다. 학군지에 살았지만 학비를 내지 못해 담임선생님께 매번 불려 갈 정도로 가난해서 고통받았던 나였다. 수능을 코앞에 두고 문제집을 다 풀었지만 문제집 살 돈조차 없기에 공부도 하고 싶은 만큼 충분히 하지도 못했다. 우리 집만 빼고 내 친구들은 내 눈에는 엄청 부자였기에 내가 자란 동네에서 내 아이는 키우고 싶지 않았었다. 추억도 많지만 아픈 기억도 많은, 나에겐 애증의 동네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내 아이는 학군지에서 나처럼 가난으로 고통받으며 키우지 않을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나와 남편에게 있었다. 나와 남편은 나의 부모님이 아니었고, 티라노씨도 내 아들이지만 내가 아니었다. '내가 자란 동네에서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한 조건으로 초중고를 다니면 내 아이는 어떻게 될까?'가 갑자기 궁금해졌다. 나의 초중고 시절에서 '가난'을 전부 지우면 행복한 기억도 꽤 많았다.
그리고 내가 다닌 고등학교를 떠올려보면 반에서 중간만 해도 인서울 4년제 대학에를 갔다. 그렇다면 티라노씨가 반에서 하위권을 해도 전문대학은 가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우리의 이사는 내가 살았던 마음의 고향인 이곳으로 결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