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무기력의 늪에 빠진 중학생, 어찌하오리까.

남들과 다른 발달장애 중학생의 엄마로 산다는 것

by 그림크림쌤 Mar 21. 2025

공부를 차례차례 내려놓는 아이를 지켜보는 내 몸에사리가 나온다.

그렇게 나온 숱한 사리들이 내 몸에 석회동굴의 종유석처럼 여기저기 매달려 있다. 너무 무겁고 버겁다. 그런데 떼어낼 수가 없다. 어떨 땐 숨을 쉬기도 힘들다. 내려놓음에 끝이 없다. 끝인 줄 알았는데 끝이 아니었다. 밑바닥이 어디인지 보이지 않은 채 끝도 없이 떨어지니 너무 무섭고 불안하다. 너무 힘든데 티라노 앞에서는 최대한 밝아야 한다. 난 엄마니까. 너로 인한 내 불안을 너에겐 들켜선 안 되니까. 본인 때문에 엄마 아빠가 불안하다는 걸 알게 하는 게 최악이니까. 게다가 네게 ADHD를 물려주어 네 인생 난이도를 높여놓은 장본인이니까. 나랑 같은 너, 내가 잘 사는 모습을 보여야 티라노에게 본보기가 됨을 아니까. 그렇게 하루 종일 꾹 참다 맞이한 밤, 결국 힘든 정신을 마취시켜 줄 도구를 찾는다.


매일 밤 술을 들이켜며 숨죽여 운다.

6학년 2학기부터 시작된 아이의 방황이 벌써 3년째다. 영어학원 중단과 게임문제, 그리고 시험공부 포기까지 모든 게 엉망진창이다. 모든 게 내 탓인 것만 같아 가슴이 더 아프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모르겠다. 힘든 게 인생의 디폴트 값이 되었다. 정말 힘들 땐 하루 종일 좋아하지도 않던 슬픈 드라마를 보며 펑펑 운다. 아주 가끔은 홀로 새벽에 나가 미친 사람처럼 소리 지르고 울며 집 근처 하천을 달리기도 한다. 영하 20도, 하염없이 동네를 걷는다. 찬 바람을 거슬러 예쁜 조명이 켜진 멀리 떨어진 공원을 향해 걷는다. 공원 안 농구장, 티라노 또래의 남자아이들로 가득하다. 삼삼오오 모여 농구하는 남학생들을 보니 부럽다 못해 가슴이 시려온다. 공부 못해도 좋으니 외롭지나 않았으면 좋겠다. 공부문제와 친구문제, 둘 중 하나만 고민했으면 좋겠기도 하다. 아이가 늦게까지 친구들과 노느라 안 들어온다며 속 터진다고 하소연하는 엄마들마저 부럽다. 시기질투 나도 늘 당하기만 하는 건 아니다. 그깟 게 고민 축에나 끼냐며 시기질투도 해본다. 공원에 괜히 왔다. 후회가 밀려온다. 답답해서 왔는데 더 답답해진다. 집에 돌아가는 길,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타고 집에 가는 남학생들이라도 마주치지 않길 진심으로 기도한다.


티라노 문제를 주변에 얘기해 봤자 멀쩡한 아이를 키우는 친구들은 이해조차 불가능하니 하소연 시도조차 어렵다. 사실은 티라노가 ADHD라는 것도 주변에 거의 말하지도 못했다. 아무리 봐도 우리에게 ADHD를 물려준 듯한 나의 엄마조차도 모르니까. 그래서 남편에게 하소연을 자꾸 했더니 남편 귀에서 피가 날 지경이다. 착하디착한 남편이 나의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닫는다. 어쩌지. 정말 힘들 때 이제 누구에게 하소연할 수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는다. 남들과 무언가 다른 아이를 키운다는 것. 다수가 아닌 소수에 해당하는 아이를 키운다는 것. 그렇기에 힘들겠다며 공감해 줄 친구 하나 없는 발달장애 아이 엄마로 산다는 것. 공감 안 해줘도 좋으니 왜 그렇게 키우냐거나 애가 왜 저렇냐는 이상한 시선이라도 주지 말기를 바라며 산다는 것. 그렇기에 홀로 버텨내자고 재차 결심한다. 근데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외롭다 못해 숨이 막혀 죽을 지경이다.


언제는 내가 누구 도움받아 이 자리까지 왔나 싶다. 의지할 곳은 오로지 나뿐이다. 어디가 잘못되었는지, 아니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차분히 과거부터 되돌이켜보아야 했다. 잘못을 찾아야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공부도 더 많이 해야겠다. 그리고 기록해야겠다. 기록해 놓고 분석해야겠다. 그렇게 작년 10월 22일, 브런치스토리에 작가신청을 했다. 그리고 10월 23일 브런치스토리 작가가 되었다. 4개월 넘게 쓰다 보니 조금씩 깨닫게 되었다. 무엇이 잘못된 건지.


하천을 따라 달리다 찍은 사진. 기나긴 겨울을 버텨내며 마른 꽃.





다음 편에서는 학교 시험공부를 때려치운 상황에서 티라노씨의 중3 수학성적 변화에 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혹시 궁금하신 분들이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글을 쓰며 깨달은 내용은 다음 편에서부터 차례대로 나옵니다.

공감과 위로가 되는 글을 쓰려 노력합니다. 늘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이전 11화 중3 1학기 기말, 갑자기 공부거부를 선언했다.

브런치 로그인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