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습 무기력에 빠진 학군지 ADHD 중학생의 수학공부 이야기
오늘은 티라노씨 공부 이야기에서 빠질 수 없는, 중학교 수학학원 이야기로 돌아가보려 한다.
최하위반 수학학원 부적응 및 옮기고 싶은 학원들에 전부 떨어져서 과외만 하던 아이가 드디어 학원에 합격해서 겨우 다니게 된 게 6학년때였다. 수학학원에 들어간 지 얼마 안 된 어느 날, 월말평가가 있었다. 티라노 시험지에 답만 쓰여 있는 걸 이상하게 여긴 선생님께서 티라노에게 풀이과정이 왜 없냐고 물어본 것이었다. 이에 티라노는 "암산한 건데요"라며 풀이과정을 말로 설명했고 말이다.,
선생님께선 내게 전화를 하셔 선 레벨업이 가능하다는 말과 함께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티라노 머리가 정말 좋은 것 같아요! 풀이를 쓰지도 않고 전부 암산으로 풀었더라고요! 깜짝 놀랐어요."
그렇게 시작부터 높은 선생님께 좋게 찍혔고, 수학학원만 가면 총명하고 촉망받는 인재가 되었다. 산만하고 엉뚱해서 수업 방해를 한다는 얘기가 들리는 학교에서와 달리 말이다.
참고로 이 동네 수학학원은 2~3개월 동안 두 학기 수학 2권을 끝낸다. 현재 학기 응용서와 다음 학기 기초서를 동시에 나가기 때문에, 빠르면 1년, 늦어도 1년 반이면 중학교 수학 전체를 2권씩 푸는 시스템이었다. 레벨이 높을수록 당연히 진도가 빨랐다.
2달간 어려운 응용서로 한 학기 수학을 겨우 끝내서 드디어 다음 학기 기초서를 할 차례가 되었는데 레벨업이 또 한 번 일어났다. 레벨업 후 또 기초서를 거치지 않은 채 2-2 응용서로 시작해서 따라잡으면 레벨업이었다. 그렇게 6개월 동안 2, 3학년 수학의 대부분을 다른 아이들과 달리 응용서부터 시작하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선행학습인데 어려운 책으로 시작하니 쉬울 리가 없었다. 그 6개월간 티라노는 참 힘들어했다. 그럴 때마다 난 아이가 버티는 힘을 낼 수 있도록 이렇게 말해주곤 했다.
"많이 힘들지? 다른 아이들은 기초서를 이미 끝내고 하는 책인데 넌 2-1, 2-2, 3-1 전부 응용서로 시작했으니 얼마나 힘들겠어. 너니까 이 정도 버티고 해낼 수 있는 거야. 네가 힘든 게 당연한 거야!"
게다가 레벨이 올라가 만난 완벽주의 선생님으로 인해 수학학원의 진정한 위기가 왔다.
숙제량도 너무 많은 데다 틀렸던 문제의 오답노트 작성까지 완벽히 해오지 않으면 집에 보내주지 않으며 철저히 관리하셨다. 부모입장에선 좋으나 티라노는 당시 참 힘들어했다. 영어학원 때처럼 툭하면 그만둔다며 울고불고하곤 했다. 그때마다 진정시키려고 이렇게 말하곤 했다.
"티라노야. 너 영어도 안 하는데 수학만큼은 절대 놓으면 안 돼. 잘하는 게 하나는 있어야 무시받지 않는 거야. 근데 너의 한방이 수학이잖아. 엄마도 선생님께 도움을 요청해 볼게. 조금만 더 참아보자 응?"
그러길 몇 달, 선생님이 바뀌며 위기가 지나갔다. 그렇게 여러 차례 수학학원의 위기를 무사히 흘려보내며 중학교 3학년이 되었다. 그리고 중3 첫 중간고사 후 티라노는 수행평가는커녕 학교시험을 전부 놓아버렸다. 중3이던 작년 5월. 그렇게 공부에 대한 모든 잔소리를 멈추었다. 모든 학교 생활의 무기력이 온 아이를 잔소리로 더 궁지로 몰아넣을 순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학교공부뿐 아니라 수학숙제 잔소리까지 전부 멈추었더니 정말로 집에서는 단 1분도 공부하는 모습을 볼 수가 없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수학학원에서는 숙제를 안 해온다는 말이 없다. 수학숙제를 해가긴 하는 건지... 수학마저 놓으면 어쩌나 불안해 미치겠다. 참다 참다 눈치 보며 묻는다.
"근데 티라노야, 수학숙제 해가긴 하는 거니?"
티라노가 대답한다.
"응. 학교 쉬는 시간에 해~"
하루 쉬는 시간을 다 합쳐봤자 1시간도 채 되지 않는데 이상하다. 스마트폰 사용이 허용되는 점심시간엔 내내 게임만 하기 때문이다.
'고작 그 정도 시간 가지고 학원 숙제가 감당이 다 된다고?'
이상하다 싶다. 그렇지만 따져 묻지도 못한 채 "응. 다행이다."라고 대화를 급히 끝낸다. 그나마 유일하게 하는 수학공부마저 때려치울까 싶은 마음이 들어 채근도 무섭다.
그러던 어느 날, 티라노씨가 100% 서술형이었던 수학학원 월말평가 후 선생님께 연락이 왔다.
집에서 숙제조차 전혀 안 하고 게임만 하는 내 아이가 학원에서 1등 한 것이 믿기지 않아서 이렇게 물었다.
"티라노가요?? 시험이 쉬웠나요?"
"이번 서술형 시험 어렵게 냈어요. 채점도 봐주면서 한 게 아니고 깐깐하게 채점했어요. 티라노는 딱 한 문제에서 부분 점수를 맞아서 감점됐고, 나머진 다 맞았어요. 티라노가 풀이과정도 정말 잘 썼어요. 그냥 1등 아니고, 압도적 1등을 했어요! 심지어 글씨도 평소와 달리 또박또박했어요! 그래서 티라노 시험지 맞나 이름을 세 번이나 확인한걸요!"
선생님과 나는 동시에 웃음이 터진다.
그렇다면 혹시 학생수가 적어서 잘 본 건가 싶은 생각이 들어서 학생수를 물었다. 선생님은 중3은 50명 정도 된다고 하셨다. 이 말을 들은 나는 선생님이 학생수가 이보다 적은데 민망해서 부풀려 말한 게 틀림없다고 생각했다. 그렇지 않고서야 숙제도 잘 안 하는 티라노가 학원 전체에서 1등을 할리가 없다고 생각했다.
이때부터 수학학원에서는 최상위반은 아니었지만 최상위권을 유지하며 중학교를 졸업했다. 숙제하라는 잔소리를 아얘 멈추니 도리어 수학성적이 오른 게 너무 이상하고 이해가 되질 않아 물었다.
"너 집에서 숙제 한 번도 안 한 지 오래됐잖아. 근데 학원에서 왜 성적이 도리어 오른 거야? 이게 말이 돼? 엄마는 솔직히 이해가 안 가."
당연하다는 듯 티라노는 이렇게 대답한다.
"잘하는 애들이 많이 그만뒀어. 그래서 내가 자꾸 1등을 하는 거야! 내가 잘하는 게 아니고."
'아, 그래서 학생수도 50명이라고 부풀려 말하신 거구나.'
내 멋대로 생각해 버린다.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고등부 전문 수학학원으로 옮기기 위해 레벨테스트를 보러 다니기 전까지 이 생각은 변함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