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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1학기 기말, 갑자기 공부거부를 선언했다.

by 그림크림쌤 Mar 18. 2025

중3 첫 중간고사 후, 우리 동네 맘카페가 이번에도 난리가 났다.

수학뿐 아니라 과학마저 너무 어렵게 나와 아이들이 울고불고한다는 거였다. 특목고 못 가게 해서 선생님들이 얻는 게 뭐냐고,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내는 거냐며 울분을 토하는 댓글들이 순식간에 수십 개가 달렸다. 공부 잘하는 애들이 A를 못 받아서 과학고에 떨어져야 인근 갓반고에 들어가니까 그런 거냐는 억측까지 나왔다. 시험범위가 지구과학과 물리파트였는데, 과학교사인 내가 봐도 안 그래도 어려운 물리가 너무 어렵게 나왔다. 눈을 씻고 찾아봐도 '하' 수준은커녕 '중'수준의 문제도 찾기가 어려웠다. 물리 문제들의 난이도는 전부 '상, 상, 상... 최상, 최상'이었다.


게다가 하필 물리공부할 차례에 아이 인내력이 바닥나 문제를 많이 못 풀고 시험을 치렀다. 그러니 안그래도 어렵게 나온 물리를 잘 볼리 없었다. 풍선이 가득한 지구과학과 달리, 물리 부분 시험지는 소나기였다. 엄마랑 같이 공부했으니 못해도 80점은 맞을 거라고 호언장담했던 게 무색했다. 난 자존심 따위를 세우는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자존심이 너무 상했다. 나도 우리 학교 근처 학원가에서는 어렵게 내기로 유명했다. 내가 시험문제를 하도 어렵게 내서 인근 과학학원 원성이 내 귀에까지 들릴 때도 있었다. 근데 그건 비학군지 이야기였나보다. ㄱ,ㄴ,ㄷ로만 가득 채워져 아이들의 탄식을 자아내던 내 시험지는 정말 아무것도 아니었다.


솔직히 과학점수가 낮아도 너무 낮았다.

안 되는 집중력 최대한 부여잡으려 애쓰며 꾹 참고 했다. 같은 중3 가르치는 과학쌤인 엄마 직강까지 들으며 한 달 내내 말이다. 그런데 공부를 전혀 안 하고 본 과학시험과 점수가 20점도 채 나지 않았다. 학군지 그것도 갓반중으로 이사 온 것을 처음으로 후회했다. 난 무조건, 해도 안된다며 실망할지 모를 티라노를 달래야 했다.


"아들~ 우리 학교 시험지였으면 못해도 80점은 나왔을 거야."

"엄마도 시험문제 어렵게 내는데"라고 운을 떼며 위로한답시고 한 말이었다. 위로가 전혀 안되나보다. "엄마는 OO지역이잖아."라며 잘난 체를 한다. 그도 그럴 것이, 얼마 전 수학조차 원하는 성적이 너무 안 나오기에 자존감 높여 주려고 우리 학교 수학기출을 풀려본 적이 있었다. 나름 어려운 해를 고른답시고 코로나 직전 시험지였다. 티라노는 20분 만에 다 풀었다. 검토도 안 했단다. 근데 채점했더니 100점이다.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으며 "솔직히 엄마네 학교 시험지 수학쌤이 수업시간에 준 프린트보다도 훨씬 쉬워."란다. 우리 학교는 OO지역에선 제일 공부를 잘하는 중학교다. 어이가 없는데 할 말도 없다.


어느 날 잠자리 대화에서 난 위로하려고 이렇게 말했다.

"솔직히 너, 더 열심히 할 수 있었는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잖아. 우리 학교였음 진짜 80점은 넘었어. 근데 여긴 ㅁㅁ지역이잖아. 그리고 교과서랑 프린트만 열심히 보고 문제집 거의 못 풀었잖아. 너네 학교에서 80점 넘기려면 그 문제집은 무조건 다 풀어야 돼. 그리고 90점 넘기려면 심화서까지 추가로 야 돼."

묵묵히 듣더니 "나도 내가 열심히 안 한 거 알아."란다. "거봐 너도 알잖아. 더 열심히 해야 돼. 그러면 다음엔 더 잘 볼 수 있을 거야."로 마무리하고 잠에 들었다.


시간이 흘러 기말고사 한 달 반이 남아 시험공부를 시작할 때가 왔다.

그런데 어라? 티라노가 지금까지와는 다르게 엄청 짜증을 낸다. 공부의 '공'자도 못 꺼내게 하며 시험공부 계획을 말할 틈조차 주지 않는다. 난 어쩔 수 없이 "그래 그럼 다음 주부터 할까?"라며 타협한다. 시험이 5주 앞으로 다가왔다. 하루 공부량이 적으니 더 이상 미루면 안 된다. "아들~ 이제 시험공부 시작하는 게 어때?"라는 내 제안은 또다시 묵사발이다. 그렇게 여러 차례의 엄마표 공부 시도가 지나 시험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갑자기 티라노가 매우 단호한 표정으로 내게 폭탄선언을 한다. "나 시험공부 절대 안 할 거야." 갑자기 이러는 이유를 모르겠다. '이럴 시간이 없는데..' 초조한 건 나 뿐이다. 그렇다고 아빠보다도 더 커진 아들을 억지로 책상 앞에 앉힐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티라노는 학원을 다니는 수학을 뺀 전 과목을 단 한 글자도 공부하지 않은 채 기말고사를 치렀다.


그리고 3학년 마지막 학기도 그렇게 허망하게 흘러버렸다.

심지어 2학기에는 수학 빼곤 수업도 안 들었는지 프린트조차 전부 깨끗하다. 이를 어쩐다, 곧 있으면 고등학생인데... 모든 학교생활을 전부 포기한 것처럼 보인다. 심지어 그나마 하던 수학학원 숙제 조차 하는 모습도 볼 수가 없다. '도데체 수학학원 숙제는 해가긴 하는 거니.' 묻기도 눈치가 보인다.  갑자기 왜 저러는 건지, 어디서부터 잘못된 건지.. 아무리 생각을 하고 또 해도 알 수가 없다. '설마 이러다 학교마저 안 간다고 할라. 우리 티라노 절대 자극하면 안돼.' 끝이 어딘지 모르겠는 나와 남편서로 이런 얘기를 나눈다. 아이의 위태로운 모습이 자꾸만 내 불안을 자극하며 조여온다. 그런데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다. 묵히 기다리는 수 밖에 없다. 내 뜻대로 움직이는 어린 아이가 더 이상 아니었다.


티라노옷을 입고 책을 꺼내 읽고 있던 티라노씨. 그리운 모습.티라노옷을 입고 책을 꺼내 읽고 있던 티라노씨. 그리운 모습.





티라노씨의 중학교 3학년 공부 이야기였습니다.

다음 편에서는 무기력에 빠진 학군지 중학생 티라노와 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마음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저희의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조금이라도 공감과 위로가 되길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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