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햇볕 인테리어를 아시나요

by 주하 Mar 14.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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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집에 처음 이사 온 날을 기억한다. 

헝클어진 짐들 사이 작은 상 위에 도란도란 모여 우리 세 식구는 짜장면을 먹고 있었다.  9월이었지만 여전히 여름이 묻어나는 공기를 덜어내고자 활짝 열어둔 창문 사이로 가을이 다가오는 바람과 낯선 향이 코끝을 스쳐갔다. 가까이 다가가니 짠 물향이 더 짙어졌다. 빙긋 인사하는 너른 푸른 바다가 한눈에 가득 담겼다. 

그제야 하루의 긴장이 탁 풀어졌다. 아무 연고도 없는 줄 알았는데 바다만큼은 우리 가족을 이렇게 환하고 깊게 반기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다.

다음날 이른 아침 눈이 뜨였다. 새로운 하루를 시작하는 태양빛이 방안 가득 채우고 있었다. 부재한 커튼 덕분에 빛으로 둘러싼 공간은 오렌지색으로 물들었다. 얼마 만에 목도한 일출이었을까.

오렌지빛으로 가득 찬 공간에서 나도 따스한 오렌지가 되는 기분이었다. 건강하고 향긋한 오렌지처럼 잘 익어가는 기분이랄까. 이 날이 이 집에서 처음 갖는 햇빛 샤워였다. 보통 햇빛 샤워는 하루 30분 이상 풍부한 일조량을 몸에 쬐어주는 것을 의미한다. 내게 햇빛샤워는 꼭 하루 30분을 채우는 것은 아니다. 하루 중 잠깐잠깐씩 틈날 때마다 햇빛 앞에 선다. 



브런치 글 이미지 1

볕이 선명한 날이면 테이블 위의 책을 가지고 창가로 향한다. 잠시 읽던 책과 마시던 차를 내려두고서 바다의 윤슬을 바라본다. 따사로운 온기가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내밀하게 서서히 차오른다. 바다도 나만큼이나 햇빛을 좋아함이 틀림없다. 아니면 어찌 이렇게 아름다운 보석 같은 반짝임을 만들겠는가.라고 혼자 생각해 본다.



브런치 글 이미지 2

1년에 두 번 비밀같이 소중한 시간이 찾아온다.

차가운 겨울에서 포근한 봄이 피어오를 때.

따가운 여름에서 선연한 가을이 불어올 때.

닫혀있던 문이 열리고 테라스와 함께 새로운 세상이 다가오는 시기. 바로 테라스의 계절이다. 

3월과 4월 사이 테라스의 계절이 다가온다. 포근한 봄의 향기는 한 겨울 추위로 굳게 닫혔던 테라스의 문을 연다. 따스한 볕 위로 불어오는 선선해진 바람결은 야외 테라스에 앉아 차가운 아이스커피를 마시기에도 작은 피크닉을 즐기기에도 더없이 좋은 계절이 돼버린다. 

 "야외에서 아주 편하게 음식을 먹는 것만큼 즐거운 일도 없다"라고 서미싯 몸은 이야기한다. 

야외 같은 베란다에 식탁 매트를 깔고서 간단히 브런치를 먹었을 뿐인데 어릴 적 소풍 다녀온 날처럼 즐겁고 유쾌해진다. 돗자리 위에 앉아 엄마가 만들어줄 김밥을 먹으면서 친구들과 깔깔거리며 웃었던 때처럼 즐거운 일도 없었는데. 전날 잠도 설치면서 설레가면서. 신났던 어릴 적 소풍이 생각난다.



브런치 글 이미지 3


집에서 가장 좋아하는 햇빛 샤워 시간은 일출이다.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거나 마음을 새로 다잡고 싶을 때 서재 책상 앞에서 일출을 맞이하곤 한다.

일상 속 잊고 지내던 보편적인 진리가 새삼스레 장엄하게 다가오는 순간이다. 매일 해가 뜨고 진다. 는 클리셰는 반복되는 지루함도 있지만 매일 새로운 시작 또한 존재함을 제시하는 특별함도 있다. 여기서 과거의 후회를 털어버리고 새로운 오늘을 다지는 힘을 얻는다.



오랫동안 살았던 본가는 동향이었다. 아침 일찍 들고 일찍 사라진다는 해님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오면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아침 잠깐을 제외하고 집에는 항상 햇빛 대신 서늘한 그늘이 함께였다. 연식이 오래되서인지 벽 사이 작은 틈으로 파고드는 찬기운과 바람 때문에 집은 늘 추운 곳으로 기억에 남아있다. 

그래서일까 신혼집을 구하러 다닐 때 가장 중요시했던 기준 중 하나가 방향이었다. 

집이 좁아도 좋으니 남향이길 원했다. 그다음으로는 지어진지 얼마 되지 않아 신혼의 싱그러움과 닮은 신축을 선호했다. 하지만 집을 보러 돌아다녀보면 금세 알게 된다.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집을 찾기란 서울에서 바늘 찾는 것만큼 쉽지 않다는 것을.

막상 집을 보러 다니니 신축을 포기하지 못했다. 결국 남향 대신 서향, 북향집이 곁을 찾아왔다. 서향집은 동향에 비해 오후에 햇빛이 들어온다지만 집 앞에 건물 때문인지 오후가 되어도 구경하기 힘들었다. 북향집은 앞이 훤하게 뚫려있었어도 해님 자체가 기웃거리질 않았다. 신축이라 춥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따뜻하지도 않았다. 어두운 실내 덕분에 늘 조명을 켜고 생활해야 했고, 어딘가 한 구석에 허전함이 비집고 들어왔다.


결혼 4년 차에 마침내 원하던 신축 남향집으로 이사를 왔다. 

하루 종일 햇볕이 잘 든다는 남향은 가장 선호도가 높은 방향답게 늦은 오후까지 따스한 빛이 가득 거실과 방을 채운다. 처음에는 단지 집이 밝고 한 겨울에도 난방을 많이 하지 않아도 따뜻하다는 물리적인 환경이 좋았다. 이 집에 사는 동안 함께 이사 왔던 물건들 중 많은 것들이 곁을 떠났다. 물건에게 내주었던 공간을 다시 획득하면서 공백 또한 늘어갔다. 처음에 공백은 단지 텅 빈 공간일 뿐이었다. 시간이 갈수록 소유하는 공백이 늘어갈수록 그 의미도 변화하고 있다. 단순히 물건의 부재로 텅 빈 공간이 아닌 소유하는 환경이 되었다. 여백의 미에서 그려지는 부분과 그리지 않는 부분을 명확히 구별해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이 인테리어에서도 먼저 채우지 않고 비워두는 공간으로 자리한다. 여백을 인지하고 나서야 여백과 생활의 밸런스와의 상관관계 또한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 가족에게 필요한 여백의 적정량을 인지하고 이 수치가 줄어들면 이유 없이 갑갑하고 피로를 잘 느끼게 되는지 알게 되었다. 

하여 여백의 미처럼 비어둠의 실효성은 우리 집의 인테리어에서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여백 인테리어와 세트 같은 단짝이 있는데 바로 햇빛이다. 

여백은 집에서 슬로라이프를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필 수 인테리어 요소이다. 하지만 자칫 밑밑하거나 휑한 공허함을 제공할 수 있다. 이를 중화시키고 집에 온기를 불어넣어 주는 게 바로 햇빛 인테리어라고 할 수 있겠다. 

햇빛은 비타민 D합성에 도움을 주어 건강에도 좋고 행복의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분자 세로토닌을 분비하게 해 우울감을 사라지게 하고 행복감을 상승시킨다고 한다. 온화한 볕을 쐬고 있으면 몸이 나른해지고 마음까지 포근해지는 이유이다. 이는 사람뿐만 아니라 집이라는 공간에도 생명력을 선사한다. 대지와 자연이라는 생태계의 원동력인 태양은 집이라는 공간 또한 살아 숨 쉬게 하는 힘이 있다. 

햇볕의 따사로움에는 어떤 기계로도 채울 수 없는 안락함이 있다. 자연의 힘이고 생명의 근원일 테다. 이 태초의 에너지는 공간에도 화사함과 생기를 불러일으킨다. 고인 정체된 기운을 뒤로 하고 새로운 '오늘'이라는 에너지로 채운다. 순환되고 있다는 신선함이 볕을 따라 고요히 흐르고 있다. 


햇볕 인테리어는 물건이 가득 찬 공간에는 찾아보기 힘들다. 가득 찬 물건은 빛을 삼키고 그늘을 만든다. 반면 물건이 떠난 여백은 비로소 햇볕을 받아들이고 그곳에 새 생명을 품는다. 

햇볕인테리어는 공간이 걸치는 스웨터와 같다. 차가운 기운을 몽글몽글한 니트 조직으로 덮어 마음속까지 퐁신하게 채우는 스웨터처럼 집 가득 늘어선 명징한 볕은 배속까지 따사로움으로 부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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