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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Dec 15. 2023

가장 먼 거리에 있는 나를 만나는 여행

파리

에펠탑이 없는 파리



여행에서 가장 설레는 순간은 숙소에 도착하기 직전이다. 이제 막 시작되는 도시와 나 사이 수줍게 손을 가져가려는 순간 말이다. 그날 부푼 기대를 꾸역꾸역 눌러 담은 캐리어를 트렁크에 실은 채 숙소를 향하고 있었다.

창밖으로 들어오는 에펠탑을 보고 기사님에게 질문했다.

“이렇게 멋진 에펠탑을 매일 보신다니  좋으시겠어요?”

“그렇지도 않아요. 여기 와서 산지 십 년이 다 돼 가는데 이제는 그냥 동네 탑인걸요.”

흥분으로 반쯤 공중부양돼있던 나의 목소리는 ‘그냥 동네 O’라는 미적지근한 수식어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개이치 않았다. 창밖으로 여전히 에펠탑이 함께 달리고 있었고, 나의 마음은 파리 하늘을 떠다니고 있었으니까.      

혼자 하는 여행이라 기댈 구석이 있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로 잡았다. 공항 픽업도 숙소와 연계된 서비스였다. 기사분은 사장님의 지인이었고, 한국에서 유학 와서 파리에 지낸 지 10년이 되었다고 했다.

“즐거운 여행 하세요.”라는 말을 남기고 캐리어를 내려준 채 파리 속으로 사라졌다.


숙소로 들어가 보니 한국인이 운영하는 곳이어서 그런지 몰라도 전부 한국인이었다. 예약한 여성 4인실에 짐을 풀었다. 2층 침대가 두 개가 놓여있었고 나는 비어 있는 침대 중 1층을 사용했다. 맞은편 침대에는 친구로 보이는 비슷한 또래 두 명이 인사를 건넸다.

일상을 떠나 파리라는 새로운 울타리 안에 들어가자 모든 것이 새로웠다. 평소 같으면 처음 보는 타인에게 거리감을 느꼈을 터인데, 전혀 거리껌이 없었다. 그들에게 신경을 쓸 여지가 없었다. 나의 모든 에너지는 ‘파리’라는 두 글자에 꽂혀있었기에.

짐을 다 풀고 나니 저녁 시간이었다. 잠깐 숙소 앞 마트에 가 필요한 간단한 물건들을 사서 돌아왔다. 1층 식당으로 보이는 곳으로 가니 맛있는 냄새가 풍겼다. 파리에서 한식이라니?라고 반문 할 수도 있겠지만, 따끈한 집밥을 먹자 꼭 한국 집에 있는 것처럼 마음이 놓였다. 자리를 잡고 밥을 먹으려니 맞은편에 같은 방 친구들이 보였다. 눈인사를 하고 수저를 들고 미역국을 먹었다. 소고기 베이스에 진한 국물이 속까지 든든하게 데워주는 느낌이었다. 여기는 집밥 맛집이에요. 저희도 저녁은 꼭 숙소에 와서 먹고 다시 나갈 정도라니까요. 집에서도 잘 안 먹던 밥을 프랑스까지 와서 잘 챙겨 먹을 줄 몰랐어요.라고 이야기 해주면서 그는 밥그릇을 싹싹 비워냈다. 떠나기 전날 잠 못 드는 밤, 비행기 안에서 뒤척이면서 여행 책자에 별표 쳐놨던 파리의 맛집리스트가 떠올랐다. 혼자 파리에서 7박 9일간의 여행이기에 미식여행을 그리고 왔는데, 예상치 못한 집밥이 방해를 하게 생겼다. 고깃집에 가도 남들이 열심히 고기로 배를 채울 때 실속 없이 밥을 먼저 시켜 된장찌개에 뽀얀 쌀밥으로 배를 먼저 채워버리는 나. 갓 지은 뽀송한 밥에 김치만 있어도 한 그릇 뚝딱 먹어치우기에 집밥은 큰 변수가 되었다. 뭐 어떠랴. ‘혼자 하는 미식여행’이라는 타이틀은 그럴싸한 이 여행의 포장이었고, 실은 겉면을 에워싼 포장지 따윈 중요치 않았다. 사춘기 소녀 시절부터 꿈꿔온 여행이 바로 눈앞에 놓여 있는데, 5 스타 미슐랭에서 먹든, 맥도널드에서 해피밀세트를 먹든 아무 상관도 없었다. 내 곁에 막 사랑을 시작한 파리가 있지 않은가!

아침에는 호텔 조식같이 간단한 토스트, 소시지, 시리얼, 과일 몇 개정도가 단정하게 놓여있었다. 호텔에 가면 조식은 꼭 챙겨 먹기에, 아침을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부지런히 배를 채우고 가방을 챙겨 숙소를 나왔다. 오늘 목표는 딱 하나. 에펠탑 보고 전망대 올라가기.

제법 묵직한 가방을 메고 지하철을 타러 갔다. 여행책자에서 안내해 준 트로카데로 역에서 내려 입구로 향했다. 계속 지도를 보고 걷다가, 어느새 무리 속이었다. 우리가 같은 곳을 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낌으로 알 수 있었다. 더 이상 지도를 보지 않았다. 그들의 발걸음을 따라 걸어갈수록 에펠탑이 더 가까이 보였다. 어느 정도 걷고 이제는 도착했나? 하고 하늘을 올려다보면 여전히 가까운 탑은 손에 닿지 않았다. 이 삼 십 분쯤 지났을까 드디어 에펠탑이 있는 공원 안으로 들어섰다.

오래전부터 마음속에 수십 번도 그려본 순간이었다. 막상 눈앞에 나타난 에펠탑은 에펠탑이 아니었다. 바로 밑에서 하늘을 올려다 보아도 에펠탑이 보이질 않았다. 그저 거대한 철제의 이음들만 눈에 들어왔다. 차가운 철제 계단을 사람들이 구불구불 오르고 있었다. ‘내가 그동안 상상해온건 무엇이었지? 난 무얼 기대하고 여기까지 온 걸까?’ 같은 의문을 안은채 근처 벤치에 털썩 앉았다.  




 달아나고 싶었다.


매일밤 잠을 드는 순간 아침이 오지 않기를 바랐다.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말이 있지만, 아픈 게 너무 아팠다. 몸이 아프면 병가라도 낼 텐데, 문제는 보이지 않는 마음이었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잘해보기 위해 열심히 었다. 1년간 해외경험과 1년을 더 한국에서 공부하고서 새로운 분야로의 도전이었다. 해보지 않은 일이었고, 정식 직장에 다녀보는 것도 처음이었다. 매일 구멍이 크게 뚫린 병에 모래를 담는 기분이었다. 부어도 부어도 채워지지 않고,  여기저기 하는 일마다 큰 구멍만 돌아왔다. 나의 구멍은 다른 이에게 짐이었다. 그 짐은 다시 나의 마음의 짐이 되어 나를 따라다녔다. 그러지 않고자 일을 집까지 가져와 늦은 밤까지 컴퓨터 앞에서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었다. 일은 매일 많았고, 전부 처음 하는 일이다 보니 속도는 따라가 주지 않았다. 열심히 다한 최선이 눈앞에 모래처럼 스려 지는 기분이었다. 신입 1년 차 누구나 다 힘들어하는 시기라고 위로를 들어도 그냥 나를 통과할 뿐 받아지지 않았다. 어려움이 퇴적층처럼 밀려오자 나는 도망치고 싶었다. 많은 이가 사회생활에서 세워놓는 인내의 기준이 되는 1년이라는 시간. 그때 나에게는 1년은 우주밖의 일이었고, 당장 하루하루가 1년같이 길기만 했다. 하루에도 수십 번 출근과 사표 사이에 저울질을 했다. 드디어 반듯한 기업에 취직한 막내딸에게 만족스러워하는 엄마에게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출근을 하지 않을 온갖 방법을 떠올리다 겨우 잠이 들곤 했다. 다음날 좀비처럼 몸에 끌려가는 영혼을 구겨 넣고서 겨우 겨우 버티고 있었다. 나를 옭아매고 있는 모든 것이 견딜 수 없었다. 나는 하루하루 고통에 잠식당하고 있었다. 이대로 가만있으면 정말 어디로든 사라질 것만 같은 불안감이 휘몰던 밤, 노트북을 켜고 비행기 티켓을 예약했다. 2주 후 여름휴가에 맞춰 7박 9일간 파리행 왕복 티켓이었다.


어렸을 적 내게는 두 개의 파리가 있었다. 하나는 센강의 사진 포스터 한 장과 에펠탑모양의 열쇠고리였다. 둘 다 내 것이 아니었다. 어렸던 나는 나이차가 많이 나던 언니의 물건을 항상 동경해 왔다. 언니는 이런 나의 갈망을 눈치채고는 자신의 소유에 더 민감했다. 내가 몰래 가져올 때도 귀신같이 냄새를 맡고 나의 짧은 유희를 박탈해 갔다. 언니에게는 어린 내가 갖지 못하는 물건들이 많았다. 그것은 어른의 세계로 향하는 통로이자 신세계를 찾는 모험이었다. 이런 나에게도 기회가 찾아오는 날이 있다. 바로 언니의 서랍 정리 날이다. 쓰레기통으로 들어가기 전에 나는 손을 뻗어 나의 서랍으로 데려오곤 했다. 작은 에펠탑이 달린 열쇠고리와 에펠탑이 담긴 포스터 사진도 그중 하나였다. 건진 거 치고는 꽤 흡족한 아이들이었고, 나의 서랍과 책상 위 벽면을 오래도록 채워주었다.

빛으로 번진 에펠탑과 그 금빛을 품은 밤의 물결들. 사진 속 모습은 꼭 바다 같았다. 바다 위에 떠있는 것 같은 탑이 근사해보였다. 살고 있는 서울의 남산타워에는 없던 로망이 한 번도 가보지 못한 파리에서 자라고 있었다. 열쇠를 달고 다니면 닳기라도 할까 봐 서랍 속에 고이 넣어두고 바라만 봤다. 손안에 들어오는 작은 조각을. 언젠가는 꼭 눈앞에서 보고 마리라는 부푼 꿈을 키워가면서.


여름휴가 성수기 기간에 2주 전 구매는 미친 짓이었지만, 그때 나는 이미 반쯤 미쳐있었기에 상관없었다. 오래도록 꿈꿔온 파리라면 나를 반복되는 늪에서 해방시켜 줄 것만 같았다.

서둘러 숙소까지 예약했다. 하루하루 파리에서 여행을 떠올리며 견딜 수 있었다. 점점 잃어버렸던 홍조가 조금씩 두 돌 위에 두리워지기 시작했다. 출발전날에는 설레임에 배시시 웃음까지 흘러나왔다.




여행의 쓸모


에펠탑 전망대에 오르지 않았다. 벤치에서 헛헛한 마음을 수첩에 조금 끄적이다가 일어났다. 커피가 마시고 싶어졌다. 파리 사람들은 커피를 사랑함이 분명했다. 어디를 가든 향긋한 커피 향이 나는 곳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숙소에 돌아오는 길에 노천카페로 들어갔다.

띄엄 띄엄 벌어진 테이블 사이마다 아담한 화분에 노란 꽃이 풍성하게 피어있었다. 한국의 여름처럼 무덥지도 않은 따스한 기분 좋은 오후의 햇살이 노란 꽃과 나무들에게도, 그 옆의 나에게도 내리쬐고 있었다. 커피를 한 모금 넘기고 크지도 작지도 않은 둥근 테이블 위에 커피 잔을 내려놓고 의자가 향해 있는 시선을 따라갔다. 높지 않은 고풍스러운 건물들이 이어져 있고, 그 아래 길 위에는 초록 나무들이 천사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처럼 바람빛에 반짝거린다. 행인들이 파리의 여유로운 생의 하루를 걷고 있다.

한국에서라면 사람을 향했을 테라스 의자가 이곳에서는 외부로 시선을 돌리고 있었다. 의자가 서로 마주 한다는 것은 그곳에 행위의 목적을 제공하는 것이다.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누거나, 업무 미팅을 하거나 등등 다양한 일들이 의자 사이에서 펼쳐진다. 반면 의자가 가게에 등을 대고 있다는 것은 일상의 테두리에 관심을 두는 것이다. 그 노천카페테라스의 의자에 앉아서야 파리의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아까 에펠탑 아래서 던졌던 질문에 대한 답이 떠올랐다. 나에게 에펠탑은 하나의 목적이었던 것이다. 파리에 와서 가까이 눈앞에서 직접 눈으로 봐야 하는 목적말이다. 지난 3년간의 시간도 필름처럼 지나갔다. 호주여행으로 영어를 더 좋아하게 되었고, 2년여간 영어를 공부하면서 새로운 꿈으로 다가왔다. 처음에는 영어 실력이 쌓이고 하루하루 늘어가는 모습에 분명 즐거웠다. 하지만 어느새 목적이 되어 나를 옭아매고 있었다. 새로 들어간 직장에서 영어를 완벽히 구사하고 싶었다. 동료들이었던 원어민의 언어를 보면서 나도 그들처럼 모국어 같은 언어를 내뱉고 싶었다. 목적이 돼버린 영어는 더 이상 꿈이 아니었고, 이뤄야 할 목표가 되었다.


9000km 떨어진 나에게 질문을 건넸다. '나는 왜 그렇게 목적지향적이었을까?' '왜 완벽을 추구해 나 자신을 잠식시켜 버리는 걸까?' 커피를 마시며 생각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엔 어린 내가 있었다. 나는 받아온 성적표를 방구석에 숨겨둔 채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언제 엄마에게서 '성적표'라는 단어가 나올지 불안해하면서. 그 단어는 뜻밖의 입에서 나왔다. 오빠가 집에 오자마자 바로 엄마에게 성적표를 건네면서 "엄마, 성적표 가져왔어."라고 말했다. 나는 모르는 척 옆에 앉아 오빠의 성적표를 보고 있었다. 이번에도 전교 10등 안에 든 그의 숫자들이 나를 더 작게 만들었다. "너도 성적표 나왔을 텐데?" 나는 대답대신 방으로 숨어 들어갔다.  "너는 어떻게 된 애가 이렇게 점수가 낮아! 언니 오빠 반만이라도 닮아라!" 방으로 들어온 엄마가 나의 표를 보고 깊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성적표가 없는 날에도 그 말은 나에게 꼬리표처럼 달려있었다. 나는 항상 언니, 오빠의 반도 안 되는 부족함이었다. 집에서 나 빼고 다 뛰어났다. 따라가려고 노력해 보아도 시작부터가 달랐기에 노력할 기대조차 꺾였다. "막내로 자랐으면 듬뿍 사랑받고 자랐겠네?"라는 물음에 나는 항상 얼버무렸다. 미운오리새끼. 유년시절 나는 내가 백조이기를 바랐다. 하지만 현실은 누구에게든 미움받는 미운 아기오리였다. 너도 백조가 될 수 있어라는 작은 용기가 필요했지만 누구도 해주지 않았다.

커가면서 앞에 '미운'이라는 단어는 뺄 수 있었다. 보통오리가 되었지만 여전히 백조가 되고 싶은 오리였다. 나를 백조로 만들어주는 것은 작은 인정의 말들이었다. 나는 그 인정을 얻어 백조가 되고 싶은 마음에 무슨 일이든 성과를 내고 싶었다. 잘 해내서 좋은 결과를 내어 엄마에게 인정받고 싶었다. 그렇게 어린 나에 생긴 큰 마음의 구멍을 채우고 싶었나 보다.

그러다 보니 즐기지 못했다. 모든 일들이 목적으로 쉽게 변모했고, 나를 즐겁게 하던 것들이 결국 나를 힘들게 했다. 파리에서 눈앞에 마주한 에펠탑도, 지난 3년간 새로운 세계였던 영어라는 꿈까지.  


9000km 일상에서 떨어진 곳은 아무도 나를 아는 이 없다는 뜻이다. 태양의 빛, 낯선 습도와 공기의 내음, 사람들의 숨결, 크루아상의 부드러움 등 모든 것이 새롭다. 처음 보는 카페의 의자에 앉아 처음 마셔보는 커피를 들이킨다. 테라스에서 처음으로 목적이 아닌 풍경을 향해서. 그곳에 앉아 있는 나는 그동안 현실이라는 다람쥐통에 갇혀 보지 못했던 나를 발견한다. 내가 놓치고 있던 것, 너무 가까워 보이지 않았던 것, 깊숙이 매립되어 잡히지 않았던 것들이 만져지기 시작한다. 바로 이것이 여행의 쓸모이다.  가장 먼거리에 있는 나를 만나 내면의 시각이 아닌 외부의 시각을 갖게 되는것이다. 나를 과도하게 지배하고 있던 감정의 흠에서 빠져나와 새로운 나와 새로운 오늘을 시작하게 되는 것이다.


에펠탑을 뺀 나머지가 궁금해졌다. 그동안 파리의 단역이라고 생각해 온 배경들이 보고 싶어졌다.  수첩을 꺼내 날짜별로 적어두었던 일정들을 모두 지워냈다. 그제야 일정이주는 무게감이 느껴졌다. 꼭 그 하루동안 해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사라지자, 자유로워졌다. 빈자리에 ‘산책’  글자를 적었다. 그저 발길 닿는 데로 걷고 싶었다. 에펠탑이 보고 싶은 것이 아니라 에펠탑이 바라보고 있는 파리가 보고 싶었다. 진짜 여행이 시작되었다. 7월의 엷은 여름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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