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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주하 Jan 10. 2024

특별하지 않은 휴가

강릉




8월의 어느 날 오후. 집에서 차로 40분 거리의 연곡 솔향기 캠핑장으로 향하고 있었다. 평소에도 인기가 많지만 지금처럼 여름휴가철에는 1초 컷으로 예약이 마감된다는 곳이다. 운 좋게도 취소분을 주워 다녀올 수 있었다. 3년 만에 다시 찾은 캠핑장이었다. 3년 전에는 세명이었는데, 이제는 둘째까지 네 식구가 되어 다녀왔다. 얼마 전 다녀간 폭풍이 끝나고부터 쭉 날이 선선했다. 해가 가려진 바다는 시원했고 파도는 제법 빨랐다. 5시의 해변은 한산했고 우리들만 있는 기분이었다. 바다에 들어가지 못해 섭섭해하는 첫째를 빼고 우린 다 뜨거운 바닷가 보다 만족하는 듯 보였다. 저녁을 먹고 아이스크림 하나씩 물고서 해변을 산책했다. 연곡 솔향기 캠핑장이 인기 있는 이유 중 하나가, 솔향기를 맡으며 조금만 걷다 보면 바로 바다 향기까지 맡을 수 있다는 점이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밤이 내리고 있는 해변을 산책하는데 폭죽이 터졌다. 누군가 쏘아 올린 폭죽이었다. 아이가 탄성을 지으며 말했다. "와~폭죽이다!"

폭죽을 감탄하며 바라보는 아이의 모습에 3년 전 바다가 떠올랐다.




속초 1년 살기 여행이 1년이 채 되지 않던 날이었다. 속초로 1년 살기 여행을 하게 되면서 좋았던 점 중 하나가 자연을 품은 캠핑장들이 가까이 즐비하고 있는 것이었다. 특히 수도권에 살 때 바닷가 캠핑장은 멀어서 생각도 못했는데 속초에서는 캠핑장이 대부분 바다를 끼고 있었다. 바닷가 캠핑은 낭만적이다. 아이들은 모래와 조개껍데기와 친구가 되고 어른들은 윤슬과 파도를 안주삼아 맥주를 마시며 책을 읽는다.

모래와 조개껍데기만 있으면 몇 시간도 거뜬히 지나가버리는 마법이 생긴다. 날마다 새로운 작품을 창조하는 자신만의 상상의 나래 속에, 아이들은 바다와 더 친한 친구가 되어간다.

이 날도 아이는 사이트 주변의 솔밭에서 다양한 크기의 솔방울들을 보물처럼 모았고, 모래와 조개껍데기로 자신만의 세계를 표현했다.

처음 보는 가까이의 폭죽을 보고 두려움이 섞인 감탄이 여린 숨결에 흘러나왔고, 또 하나의 추억이 바다에 쌓여갔다.




바닷가 마을에 살기 전의 나에게 '여름휴가'란 특별한 곳을 다녀오는 행위를 의미했다. 특별한 곳은 처음 가보는 장소나 해외여행 또는 평소보다 값을 투자해서 떠나는 여행이기도 했다. 이곳에 살고부터는 서서히 그런 마음이 수그러들고 있다.

꼭 처음 가보는 곳이 아니더라도, 값을 많이 치르는 여행이 아닐지라도, 특별할 것 없는 여행일지라도 우리에게는 특별한 여행이 된다. 그곳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항상 똑같은 바다는 없으며, 볼 때마다 새로운 바다와 파도, 모래의 감촉과 아이들의 얼굴빛과 우리들의 생각들이 자라 있다.

어떤 장소에 있고, 얼마의 기회비용을 들였냐 하는 것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 내 주위에 나와 함께 있는 사람들,

이 순간 나를 미소 짓게 하는 단순한 즐거움들,

우리를 편안하게 감싸는 시원한 바람 한 줄기 같은 요소들이 더 중요하게 다가오고 있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 헤밍웨이


헤밍웨이의 말을 빌리자면 나는 어느 정도 행운이 따라주어 속초 1년 살기 여행을 이어온 지 5년 차가 되었다. 이 여행이 언제 끝날지는 모르겠지만, 그 끝에 다다르면 그리울 것이다. 어딜 가든 늘 나의 곁에 머물 바다가. 그 바다와 함께한 사소하고 특별하지 않은 풍경들로부터 사라진 것들이 그리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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